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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소토 유니온'의 단 한 번의 여정

한 장으로 완성된 세계

by papamoon

처음 피자를 먹었던 날은 기억나지 않습니다.

어느 가게였는지, 누구와 함께였는지도 흐릿합니다.

그러나 한 조각을 처음 베어 물었을 때의 감각만은 또렷합니다.

입안 가득 번지던 치즈의 뜨거운 늘어짐, 낯설지만 풍요로운 향,

익숙한 국이나 밥으로는 설명할 수 없던 전혀 다른 세계.

그 낯선 풍요로움은 저를 단번에 사로잡았고, 한입의 경험이 곧바로 기억으로 굳어졌습니다.

아소토 유니온을 처음 들었을 때도 그랬습니다.

중학생이던 어느 날, 스피커에서 흘러나온 그루브가 귀를 파고드는 순간,

몸은 저도 모르게 반응했고 눈앞에는 알 수 없는 문이 열리듯 전혀 새로운 세계가 펼쳐졌습니다.

어떤 경험들은 단순한 자극을 넘어 우리 안에 새로운 감각의 방을 만들어냅니다.

마치 집안에 전에 없던 창문이 뚫리듯, 그 음악은 제게 전혀 다른 차원의 청각적 공간을 선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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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의 건축술

앨범의 문을 여는 인트로 〈…Sound Renovates A Structure〉는 아프리카 리듬을 닮은 타악기로 음악의 뿌리를 향한 경의를 드러냅니다. 이어지는 〈We Don't Stop〉은 그 다짐을 거침없이 증명합니다. 단단한 베이스가 리듬의 척추를 세우고, 드럼은 주저하지 않고 앞으로 밀어붙이며, 트럼펫의 울림이 곡 전체를 환히 밝힙니다. 음악이 지닌 물리적 힘이란 이런 것입니다. 귀를 통해 들어온 진동이 몸 전체로 퍼져나가며, 단순한 청취를 넘어 온몸의 경험이 되는 순간입니다. 진짜 충격은 〈Think About'chu〉에서 찾아왔습니다.

그 시절 한국 음악에서는 좀처럼 들을 수 없던 정통 소울 발라드의 결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으니까요. 김반장의 보컬은 힘을 주어 끌어올리기보다, 무심히 흘러가듯 담담합니다. 키보드의 영롱한 음색은 마치 물방울이 고요한 호수면에 떨어지는 것 같았고, 단순하지만 묵직한 베이스는 가슴 깊은 곳에서 진동했습니다. 여백이 많은 드럼 비트는 침묵마저도 음악의 일부로 만들었습니다. 그 위에 실린 목소리는 사랑의 기쁨과 아픔을 과장하지 않고 조용히 반복합니다. "나는 너를 생각한다." 단순한 그 말이 그토록 큰 위로가 될 줄은 저는 그때 처음 알았습니다.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음악적 성숙함이었습니다. 크게 외치지 않고도 깊숙이 스며드는 힘, 화려한 기교보다 진실한 감정에 의존하는 용기였습니다.


젊음의 아카이브

이 앨범의 특별함은 당대 젊은 뮤지션들의 생생한 숨결이 기록되어 있다는 점입니다.

훗날 다이내믹 듀오가 될 최자와 개코가 참여한 〈Mad Funk Camp All Starz〉는 풋풋한 긴장감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랩과 밴드 사운드가 서로 부딪히며 만들어내는 마찰은 마치 "우리가 새로운 지형을 열겠다"는 젊음의 선언처럼 들립니다. T(윤미래)의 목소리가 담긴 〈Blow Ma Mind〉도 마찬가지입니다. 깊고도 자유로운 음색이 곡의 그루브에 실리며 앨범의 스펙트럼을 넓혔습니다. 서로 다른 언어를 구사하는 연주자들이 하나의 공통된 언어를 찾아가는 과정, 그 실험적 에너지가 《Sound Renovates A Structure》를 그 시절 공기를 가장 온전히 간직한 음반으로 만들었습니다.


전체성의 미학

많은 사람들이 아소토 유니온 하면 가장 먼저 떠올리는 곡은 〈Think About'chu〉일 겁니다.

그 노래는 분명 아름답고, 지금도 여전히 빛을 잃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입구에 불과합니다. 그 뒤에는 더 넓고 풍성한 방들이 기다리고 있으니까요. 각 곡은 저마다의 생명력을 지니고, 앨범 전체는 하나의 큰 호흡처럼 연결되어 있습니다.〈We Don't Stop〉의 거침없는 에너지에서 〈Make It Boogie〉의 절묘한 재즈 감각을 거쳐, 마침내 9분이 넘는 〈Asoto Union Theme〉의 자유로운 흐름에 이르는 여정. 이는 정교하게 설계된 감정의 서사입니다. 특히 앨범을 마무리하는 〈Asoto Union Theme〉에서 악기들은 서로 대화하듯 주고받으며, 중간의 정적을 지나 레게 리듬이 스며드는 순간 훗날 윈디시티로 이어질 음악적 DNA가 살짝 드러납니다. 그 9분은 단순한 시간이 아니라 하나의 음악적 여행이었고, 소리가 만들어내는 시공간의 마법을 체험하는 시간이었습니다.


짧았기에 영원한

아소토 유니온의 이야기를 극적으로 만드는 건, 단 한 장의 정규 앨범을 남기고 해체했다는 사실입니다.

음악적 견해의 차이로 밴드는 흩어졌고, 김반장과 윤갑열은 윈디시티로, 임지훈과 김문희는 펑카프릭부스터로 각자의 길을 걸었습니다. 각자의 길이 훌륭했음에도, 아소토 유니온이라는 이름으로 남은 건 이 한 장뿐입니다. 이것은 예술이 지닌 아이러니입니다. 완전한 것은 종종 완성되지 못한 채로 남을 때 더욱 완전해지곤 합니다. 오래 이어지지 못했기에 오히려 더 아름답게 남은 순간, 한 번의 충격으로 세월을 넘어 살아남은 음악이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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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만든 깊이

이 앨범이 발매된 지 20년이 넘었지만, 다시 들어도 낡았다는 느낌은 전혀 들지 않습니다.

오히려 시간이 흐른 덕분에 세밀한 결들이 더 또렷하게 들립니다. 베이스의 미묘한 긴장, 드럼의 작은 리듬 변화, 보컬이 남겨둔 여백. 그것들은 유행을 좇은 흔적이 아니라, 세월을 견디며 단단해진 질감으로 다가옵니다.

나이를 먹으며 귀는 더욱 예민해졌고, 그제서야 들리는 소리들이 있었습니다. 악기들 사이의 미세한 대화, 연주자들이 주고받는 무언의 신호, 녹음 과정에서 스며든 공기의 온도까지. 마치 오래된 와인이 시간을 품고 깊어지듯, 이 앨범도 세월과 함께 더욱 복잡하고 풍성한 맛을 드러냅니다.


잔향의 의미

《Sound Renovates A Structure》는 단순히 "명반"이라는 말로는 부족합니다.

한국에서 흑인 음악의 본질에 진지하게 다가가려 했던 시도였고, 동시에 단 한 장으로도 사람의 마음을 완전히 사로잡을 수 있음을 보여준 기적 같은 음반입니다. 그들의 음악은 큰 소리로 세상을 증명하려 하지 않았습니다. 담백한 보컬과 치밀한 연주, 악기들 사이의 호흡으로 조용히 스며들었습니다. 진정한 잔향이란 소리가 사라진 후에도 남는 여운입니다. 아소토 유니온의 음악은 바로 그런 잔향을 만들어냈습니다. 곡이 끝난 후에도, 앨범을 다 들은 후에도, 심지어 밴드가 해체된 후에도 계속해서 울려 퍼지는 메아리. 그것이 이들이 남긴 진정한 유산입니다.


마음을 여는 권유

이 글을 읽는 분께 조심스럽게 권하고 싶습니다.

어느 날, 마음을 고요히 내려놓고 이 앨범을 처음부터 끝까지 들어 보시기를요.

가능하다면 좋은 스피커나 헤드폰으로, 아무도 방해하지 않는 공간에서 말입니다.

그러면 아마 저처럼 깨닫게 되실 겁니다. 단 한 장의 음반이 얼마나 큰 기적이 될 수 있는지를.

진정한 음악이란 귀를 즐겁게 하는 것을 넘어, 우리 안에 새로운 감각의 창을 열어주는 것임을.

음악은 사라지지만 잔향은 영원합니다.

아소토 유니온이 남긴 이 47분간의 여행이, 당신에게도 잊을 수 없는 첫 감각의 기억으로 남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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