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통사고 후유증 치료가 《동의보감》과 《활인심방》으로 이어지기까지
살다 보면 '절대 일어날 것 같지 않은 일'이 예고 없이 찾아오곤 합니다. 제게는 지난 50년 세월 동안 한 번도 없었던 교통사고가 그랬습니다.
정차 중 뒤에서 쾅 하고 들이받는 소리와 함께 제 평온했던 일상은 흔들렸습니다. 다행히 상대측에서 과실 100%를 인정하며 보험 처리는 일사천리로 진행되었지만, 제 진짜 걱정은 부서진 차나 합의금이 아니었습니다.
저는 자타가 공인하는 '천하의 겁쟁이'입니다. 남들은 가볍게 맞는 독감 예방 접종조차 회사에서 매년 무료로 해 준대도 맹세코 단 한 번도 맞은 적이 없습니다. 주사가 살갗을 뚫고 들어오는 그 공포를 견디느니 차라리 독감에 걸리는 게 낫겠다는 심정이었죠.
매해 하는 건강검진은 언제나 고역입니다. 수면 내시경을 위해 팔뚝에 굵은 바늘을 꼽고 있어야 하는 그 시간은 억만금을 준대도 피하고 싶은 순간입니다. 그런 제가 교통사고 후유증 치료를 위해 병원을 다녀야 한다니, 제겐 사고 그 자체보다 병원 문턱을 넘는 일이 수만 배는 더 고통스러운 숙제였습니다.
아내의 하얀 거짓말, 그리고 첫날의 기적
치료를 끝내 망설이며 버티던 저와 달리, 함께 사고를 당한 아내는 용감했습니다.
아내가 선택한 곳은 한의원이었습니다.
"한의원이면 침을 맞을 텐데..."
주사 한 방도 못 맞는 제게 수십 대씩 침을 놓는 한의원 광경은 상상만으로도 끔찍했습니다.
주저하는 제게 먼저 진료를 받고 온 아내가 구세주 같은 소식을 전해주었습니다.
"여보, 요새 한의원은 침을 안 놓나봐요. 그냥 선생님이 손으로 만져주는 추나 치료만 받았는데 몸이 훨씬 가벼워졌어요. 당신도 걱정 말고 가봐요."
그 말은 제게 가뭄의 단비 같았습니다. '그래, 침만 안 맞는다면야...'
저는 아내의 말을 철석같이 믿고, 무거운 발걸음을 옮겨 한의원을 향했습니다.
하지만 진료실 문을 열고 마주한 한의사 선생님과의 상담은 제 예상과 전혀 다르게 흘러갔습니다. 선생님은 제 통증 부위를 짚어보시더니 너무나 자연스럽게 "자, 이제 침 치료 시작하겠습니다"라고 말씀하시는 게 아니겠습니까.
아뿔사... 이미 늦었습니다. 아내의 말은 저를 병원으로 이끌기 위한 '하얀 거짓말'이었던 거죠. 침대 위에 엎드려 공포에 질려 눈을 꽉 감고 있는데, "따끔합니다"라는 소리와 함께 무언가 제 몸을 스쳤습니다. 그런데 이상했습니다. 어라? 생각보다 아프지 않습니다?!
무엇보다 놀라운 건 첫날 진료를 마치고 일어섰을 때였습니다. 사고 직후 저를 괴롭히던 날카로운 통증이 눈에 띄게 무뎌진 것이었습니다. 이 첫날의 확실한 차도가 '천하의 겁쟁이'였던 제게 한달을 더 버텨볼 용기를 주었습니다. 매일 병원으로 향하는 발걸음이 더는 무겁지 않았고, 그렇게 한달간 꾸준히 치료를 받자 통증은 점차 잦아들었습니다.
민본(民本), 백성을 향한 400년 전의 러브레터
이 신기한 경험은 저를 강한 호기심의 세계로 이끌었습니다. '도대체 이 작은 침 하나가 어떻게 통증을 줄이고 몸을 치료하는 걸까?' 하는 호기심에 유튜브를 뒤지고 책을 찾다 보니, 결국 우리 한방의 정수인 《동의보감》에까지 닿게 되었습니다.
1613년 간행된 이 책은 단순한 의술의 기록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임진왜란과 역병으로 황폐해진 조선에서 고통받는 이들을 외면하지 않겠다는 왕의 명령이자, 지식이 권력이 되던 시대에 그 지식을 백성에게 기꺼이 돌려주려 했던 허준의 '민본(民本) 정신'이 빚어낸 결정체였습니다.
당시 조선의 왕들은 의료를 복지의 핵심으로 보았습니다. 허준 선생은 비싸고 구하기 어려운 중국산 약재인 '당재' 대신, 우리 산천에서 흔히 자라는 '향약(鄕藥)'을 깊이 연구했습니다. "조선 사람들은 잘 모르는 약재가 반이나 된다"며 안타까워했던 그의 진심은 약재 하나하나에 한글 이름을 병기하는 친절함으로 나타났습니다.
특히 치료가 까다롭다는 이유로 소외되기 쉬웠던 '부인'과 '소아'를 위한 전문적인 치료법을 별도의 편장으로 구성한 대목은, 현대 의학의 체계를 앞지른 혁신이자 가장 약한 자를 먼저 보살피는 숭고한 인술의 구현이었습니다. 400년 전 백성을 위해 우리 풀 한 포기를 약으로 정립한 그 따뜻한 온기가, 수백 년을 건너 주사 한 대에도 벌벌 떨던 저를 어루만지고 있었던 것입니다.
양생(養生), 내 삶을 경영하는 지혜의 나침반
《동의보감》의 첫머리에는 '신형장부도'라는 그림이 나옵니다. 서양의 해부도가 기계적인 신체 구조에 집중한다면, 이 그림은 우리 몸을 '정(精)·기(氣)·신(神)'이라는 세 가지 보물로 이루어진 하나의 유기적인 우주로 그려냅니다. 우리 생명력의 원천인 '정'이 배터리라면, '기'는 에너지를 실어 나르는 흐름이며, '신'은 이를 주재하는 운전기사 같은 정신의 힘입니다.
"통하지 않으면 아프다(不通則痛)"는 원리는 사고로 인해 꽉 막혀버린 제 몸의 통증을 이해하는 가장 명확한 지도가 되어주었습니다. 하지만 제가 이 고전에서 발견한 가장 큰 보물은 바로 '양생(養生)', 즉 '생명을 기르는 법'이었습니다.
102세까지 장수했던 당나라의 명의 손사막은 "양생은 단지 약을 먹는 것만이 아니다"라고 했습니다. 병이 난 뒤에 고치는 것보다, 마음을 닦고 음식을 절제하며 일상의 이치에 따라 나를 돌보는 '삶의 경영'이야말로 의학의 참된 목적임을 깨달았습니다.
수승화강(水昇火降), 퇴계가 형님에게 보낸 처방전
《동의보감》이 우리 몸을 소우주로 보는 거시적인 지도를 보여주었다면, 퇴계 이황 선생의 《활인심방》은 그 안에서 제 몸과 마음을 다스리는 구체적인 나침반을 제시해 주었습니다.
특히 조선 성리학을 완성한 대학자이자, 엄격한 자기 수양의 대명사인 퇴계 선생이 남긴 '용천혈(湧泉穴)' 이야기는 제게 신선한 충격이었습니다. 평생을 흐트러짐 없는 자세로 학문에 정진했던 그조차도, 마음의 병 앞에서는 한없이 인간적이었기 때문입니다.
퇴계 선생은 오래전부터 화병(심화, 心火)을 앓고 있는 넷째 형님에게 다음과 같은 간절한 편지를 보냅니다.
"형님, 용천혈(湧泉穴)은 족심에 있습니다. 여러 가지 맥 중에서도 신(腎)을 주재하는 중요한 경혈입니다. 무릇 열이 발작하는 것은 심화(마음의 병)가 위로 타올라가고, 신수(腎水)는 아래로 내려가기 때문입니다. 이유를 불문하고 열이 발작하면 자신의 손으로 양발의 족심을 마찰합니다. 혹은 두 발을 마주 비빕니다. 피곤함을 느낄 때는 든든한 머슴으로 하여금 마찰케 하여도 좋습니다. 반드시 수천 번 마찰하여 몸에서 두루 땀이 나와 흐를 정도가 되면 비록 들불 같은 기세의 심화라도 일시에 평온하게 됨을 느낄 정도입니다. 그러나 사람들이 이것을 굳게 믿어 써보는 이가 적습니다.
저는 몸에 적열(積熱)이 있어 매번 문득 발작하여 심하면 즉각 이 방법을 씁니다. 이 방법으로 병을 고치고 나면 드디어 그것에 회천(回天, 국면을 크게 바꿈)의 힘이 있음을 깨닫게 됩니다. 때로 사람들에게 그 효험을 말합니다만 믿지를 않는군요. 다만 제 스스로 그 묘함을 알아 그 큰 영험함을 얻습니다. (중략)
이 방법은 능히 심화를 하강시키고 신수를 위로 올라 오게 하여 물로써 불을 끄니 자연의 이치가 아주 분명합니다. 이 조화롭기란 마치 귀신이 두려워할 만합니다."
"귀신이 두려워할 만하다." 점잖은 선비의 입에서 나온 표현치고는 꽤나 파격적이고 강렬하지 않습니까? 당대 최고의 지성이자 수양의 철학자가 "직접 해보니 귀신이 놀랄 만큼 효과가 좋다"며 확신에 차서 권하는 비법입니다. 아무리 의심 많은 겁쟁이라도 이 정도 추천사라면 속는 셈 치고 한번 따라 해 보지 않을 재간이 없습니다.
형님을 걱정하던 퇴계의 마음을 빌려 권해봅니다. 거창한 마찰이 아니어도 좋습니다. 잠시 신발을 벗고 엄지손가락으로 용천혈을 3~5초간 지긋이 눌러주는 것만으로도, 위로 치솟은 화기를 내리는 '수승화강(水昇火降)'의 묘미를 느끼기엔 충분합니다.
아래는 제가 《동의보감》과 《활인심방》, 그리고 옛 문헌들을 보며 정리한 생활 속 양생법입니다.
▶ 돈 안 드는 불로초, 침 삼키기 (인진법):
입안의 침을 함부로 뱉지 마십시오. 동의보감은 침을 '정(精)의 새싹'이라 했습니다. 침을 삼키는 '인진법'은 신장의 물기운(Water)과 심장의 불기운(Fire)을 조화롭게 하여 정신을 맑게 하고, 부교감 신경을 깨워 긴장을 풀어줍니다. 배고플 때 침을 삼키면 허기를 달랠 수 있고, 오래 실천하면 단전호흡과 같은 깊은 수양의 효과도 얻을 수 있다고 합니다.
▶ 치아 부딪치기 (고치법):
아침에 일어나 위아래 치아를 가볍게 딱딱 부딪치는 습관은 오장의 기운을 기르는 최고의 보약입니다. 침 분비를 돕고 정신을 깨웁니다.
▶머리를 자주 빗어 열 내리기:
찬 성질의 대나무 참빗으로 머리를 위에서 아래로 빗는 습관은 머리의 열을 식히고 눈을 밝게 합니다. 유독 아픈 부위가 느껴진다면 순환이 안 된다는 신호이니 통증이 사라질 때까지 꾸준히 빗어주는 것이 핵심입니다.
▶ 건강을 마시다, 오미자와 생맥산:
입이 자주 마른다면 물 대신 '오미자차'를 권합니다. 잠자리 옆에 두는 '자리끼'로도 훌륭합니다. 오미자는 단순히 갈증만 없애는 게 아니라 몸속 진액을 만들어줍니다. 땀을 많이 흘려 기진맥진한 여름날에는 맥문동, 인삼, 오미자를 달인 '생맥산'이 최고의 활력수가 됩니다.
▶식후의 작은 실천:
식사 후 가볍게 걷고 손으로 배를 문지르는 사소한 행동은 위장의 기운을 돕습니다.
▶ 용천혈 지압:
퇴계 선생의 편지처럼, 잠들기 전 발바닥의 움푹 들어간 용천혈을 꾹꾹 눌러주거나 열이 날 때까지 비벼줍니다. 하루 종일 긴장으로 붕 떴던 마음이 차분히 가라앉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 옷 입기의 지혜, 자연과의 동기화:
계절에 맞춰 사는 것이 양생의 기본입니다. 옷을 입을 때는 '봄·여름엔 따뜻하게, 가을·겨울엔 서늘하게'를 기억하세요. 봄에 날씨가 조금 풀렸다고 얇게 입거나, 가을에 춥다고 두껍게 입기보다 우리 몸이 계절에 적응할 시간을 주는 것, 이것이 현대 의학에서도 말하는 '내열성과 내한성'을 기르는 비결입니다.
▶마음이 곧 몸이다:
치유의 종착점은 결국 마음입니다. "네 병을 고치려면 먼저 네 마음부터 다스려라"는 구절은 두고두고 새길만 합니다.
쉰 살 목전에 겪은 갑작스러운 사고는 반갑지 않은 손님이었지만, 동시에 제 몸과 삶을 더 잘 관리하고 아끼는 법을 가르쳐주었습니다.
건강은 한 첩의 보약으로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매일의 정성으로 차곡차곡 쌓아가는 것임을 이제는 압니다. 예방접종도 못 맞던 천하의 겁쟁이가 발견한 이 오래된 삶의 진리가, 매일이 고단한 누군가에게도 따뜻한 치유의 이정표가 되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아, 물론 아내의 '하얀 거짓말'이 때로는 최고의 처방전이 될 수 있다는 사실과 함께 말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