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목을 키우는 법
구정을 며칠 앞둔 새해의 길목에 서서 올 한 해의 다짐을 가만히 적어봅니다. 매년 세우던 흔한 계획들 대신, 올해는 조금 다른 결심을 하나 더해보고 싶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안목'을 높이는 일입니다. 아름답고 진실되며, 시간이 흘러도 퇴색되지 않는 좋은 것들을 더 많이 보고 경험하며 내 안의 기준을 단단히 세워보겠다는 다짐입니다.
우리는 남달리 탁월한 것을 골라내는 이를 보고 흔히 "안목이 좋다"고 말합니다. 문득 이 단어를 들여다보다가 흥미로운 발견 하나를 했습니다. 안목(眼目)이라는 한자에서 눈 안(眼) 자 뒤에 붙은 글자가, 단순히 본다는 뜻의 시(視)나 견(見)이 아니라 또 하나의 눈인 목(目) 자라는 사실입니다.
물론 목(目)은 일차적으로 신체의 눈을 뜻하지만, 사정을 낱낱이 짚어보는 조목조목(條目條目)이라는 말에서 알 수 있듯 그물의 구멍이나 마디라는 뜻도 함께 품고 있습니다. 이제는 잘 쓰지 않는 망목(網目, 그물코)이라는 단어에서도 그 용례를 찾아볼 수 있지요.
저는 이 지점에서 묘한 전율을 느꼈습니다. 안목이란 단순히 대상을 포착하는 시력이 아니라, 쏟아지는 현상들 사이에서 본질을 건져 올려 낱낱의 조목으로 갈무리하는 '마음의 그물'이라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정보 과잉으로 길을 잃기 쉬운 시대, 우리에게 정작 필요한 건 더 좋은 시력이 아니라 더 정밀한 그물일지 모릅니다. 나만의 단단한 그물코를 엮는 일이야말로, 안목을 높이는 여정의 진정한 시작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정석(定石), 기준이라는 이름의 첫 번째 매듭
마음의 그물을 짤 때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기준이 되는 첫 번째 매듭을 꽉 묶는 일입니다. 저는 이 매듭을 정석이라 부르고 싶습니다. 안목을 키우고 싶어 하는 이들이 흔히 범하는 실수는 이것저것 많이 보면 눈이 높아지겠지라는 막연한 기대입니다. 하지만 기준 없는 경험은 오히려 감각을 왜곡시킵니다. 영점이 맞지 않는 저울로 수천 번 무게를 재본들, 그 기록이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가장 좋은 것을 경험하는 것은 내 마음속 저울의 영점을 잡는 작업입니다. 클래식 음악의 고전적 화성을 듣고, 시대가 변해도 결코 촌스러워지지 않는 건축의 비례를 공부하며, 오랜 세월 살아남은 문장의 호흡을 살피는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그것들은 이미 역사라는 거대한 그물에서 걸러져 증명된 원형(Archetype)이기 때문입니다.
가장 높은 수준의 아름다움에 나를 노출시킴으로써 고양되는 것, 그것이 안목 기르기의 시작이라는 생각입니다. 최고의 예술가가 구사한 색감이나 장인이 깎아낸 목재의 질감을 충분히 체득하고 나면, 우리 안에는 보이지 않는 기준선 하나가 그어집니다. 이 기준선이 생기고 나면 그다음부터는 애쓰지 않아도 됩니다. 조잡한 기교들이 그 기준선 아래에서 어색하게 겉도는 모습이 자연스럽게 눈에 들어오기 시작하기 때문입니다.
거절의 미학: 덜어냄으로 선명해지는 세계
안목의 실력이 가장 극명하게 드러나는 지점은 선택이 아니라 거절의 순간입니다. 진정한 큐레이션의 정수는 어울리지 않는 것을 단호히 솎아내는 결단에 있습니다. 안목이 높은 사람의 공간이나 글이 아름다운 까닭은 화려한 장식이 많아서가 아니라, 그 결을 방해하는 요소가 단 하나도 없기 때문입니다.
좋은 안목을 갖는다는 것은 이것도 좋고 저것도 좋아라는 무책임한 수용에서 벗어나, 이것은 내 삶의 문법에 맞지 않아라고 말할 수 있는 용기를 갖는 것입니다. 그것은 때로 가성비라는 합리적 유혹을 뿌리치는 고집이기도 하고, 대중적인 유행을 따르지 않는 고독한 선택이기도 합니다.
알고리즘의 추천에 나를 맡기는 것은 안목의 퇴화를 의미합니다. 내가 직접 고르고, 고민하고, 때로는 틀린 선택을 하며 아파하는 그 불편한 과정이야말로 우리의 그물을 가장 촘촘하게 엮어주는 가장 정교한 바느질이 됩니다. 거절의 힘이 강해질수록, 내 곁에 남는 것들은 더욱 선명한 자기 색을 띠게 됩니다. 비워진 여백이야말로 안목이라는 그물이 머무는 자리입니다.
맥락을 읽는 눈: 조목조목 살펴 높이는 해상도
안목이 한 단계 더 깊어지면 우리는 비로소 해상도의 문제로 나아갑니다. 낮은 해상도의 눈으로 세상을 보면 모든 것이 뭉툭하고 단순하게 보입니다. 하지만 안목의 해상도가 높아지면 사물은 비로소 자신의 숨은 맥락(Context)을 드러내기 시작합니다.
이때 우리에게 필요한 태도가 바로 조목조목 따져보는 마음입니다. 대상을 대충 뭉뚱그려 좋네라고 말하고 지나가는 것이 아니라, 이 사물의 어떤 선이 아름다운지, 재질은 왜 이것을 택했는지, 빛의 각도에 따라 색이 어떻게 변하는지를 조목조목 짚어보는 것입니다. 조목이라는 말의 뿌리가 그물코와 닿아 있듯, 대상을 세밀한 조목으로 나누어 볼 때 비로소 그물은 제 기능을 다하게 됩니다.
조목조목 살피는 일은 마치 흐릿한 사진의 초점을 맞추는 것과 같습니다. 사물을 따로 떼어놓고 보지 않고, 그것이 놓일 시간과 공간, 그리고 사람과의 조화를 살피는 그 세밀한 관심이 해상도를 높입니다. 픽셀이 촘촘해진 화면에서 전에는 보이지 않던 미세한 떨림이 보이듯, 사물의 가치를 조목조목 헤아릴 수 있을 때 우리의 일상은 전보다 훨씬 풍부한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맥락을 읽는다는 것은 결국 조목조목한 시선 끝에 발견하는 관계의 조화입니다.
축적의 시간: 감각에서 지성으로, 다시 삶으로
안목은 정보가 아니라 축적입니다. 좋아하는 것을 반복해서 경험하고, 그 감동의 정체를 나만의 언어로 논리적으로 정리해보는 과정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단순히 좋다라고 느끼는 감각의 단계에서 멈추지 말고, 왜 좋은지를 집요하게 추적하여 문장으로 만들어보아야 합니다.
이 과정은 파편화된 감각을 체계적인 지성으로 바꾸는 작업입니다. 처음에는 막연한 끌림이었던 것이 지식과 사유가 더해지면서 확고한 취향으로 굳어집니다. 이 확신이 쌓이면 세상의 어떤 평판에도 흔들리지 않는 내면의 중심이 생깁니다. 남들이 뭐라 해도 내가 느끼는 가치가 무엇인지 정확히 알기 때문입니다.
안목을 높이는 여정은 때로 고독합니다. 남들이 다 가는 편안한 길을 버리고, 나만의 그물을 짜기 위해 숙고의 시간을 견뎌야 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 수고로운 시간이 모여 한 사람의 격(格)이 됩니다. 조목조목 세상을 읽어낸 데이터가 쌓일수록, 우리의 삶은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독창적인 깊이를 갖게 될 것입니다.
나만의 해상도로 세상을 그린다는 것
안목을 높이는 법에 대해 길게 적었지만, 결국 그 모든 화살표는 나 자신을 향합니다. 안목은 결국 내가 무엇을 사랑하는지를 증명하는 목록이기 때문입니다. 내가 어떤 그물을 가졌느냐에 따라 내 삶에 걸려드는 것들이 달라지고, 그 걸려든 것들이 모여 결국 나라는 존재의 무늬를 만듭니다.
자신만의 눈으로 세상을 보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현란한 마케팅과 알고리즘의 추천이 우리를 대신해 선택해 주겠다고 속삭이는 세상에서, 나만의 해상도를 유지하는 것은 일종의 조용한 투쟁입니다. 조금 서툴더라도 정석이라는 매듭으로 시작해, 거절의 미학으로 군더더기를 깎아내고, 세상을 조목조목 살피는 맥락의 지혜로 삶을 엮어낼 일입니다.
그렇게 단단해진 안목으로 세상을 바라볼 때, 우리는 비로소 흐릿했던 일상 속에서 찬란하게 빛나는 본질의 조각들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그것이야말로 세상의 그 어떤 부보다도 단단하고 아름다운, 안목 있는 사람만이 누릴 수 있는 행복일 것입니다.
이제 구정의 문턱에서 새해 인사를 올립니다. 올 한 해, 여러분의 삶에도 '복(福)'이 조목조목 깃들기를 바랍니다. 깊어진 안목만큼 더욱 풍요롭고 아름다운 한 해가 되시길 진심으로 기원하며,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