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마 ... 케데헌 몰라요?

아이들의 세계관에 대하여

by 파파레인저
?src=http%3A%2F%2Fblogfiles.naver.net%2FMjAyNTEwMDRfMTQz%2FMDAxNzU5NTgwNzU5OTMw.S5_Bnu9na-8B_Ckn2pIS_8xXcc6jTj2DKQ9sWN97pdEg.s-xNAEUqX-RHm2-ENCR1jnWACu9voTvg-8fh5P08FsAg.JPEG%2F26.jpg&type=sc960_832 출처 : 넷플릭스
“선생님, 케데헌 알아요?”


수업할 때 아이들이 자주 묻는 말이다. 케데헌은 ‘케이팝 데몬 헌터스’의 줄임말이다. 나도 처음엔 무슨 말인지 몰랐다. 아이들이 말하는 모든 신조어를 따라갈 수는 없지만, 그래도 아이들이 이렇게까지 줄여 부르는 걸 보면 궁금해지긴 했다. 케데헌은 넷플릭스 콘텐츠 중 하나인데, 2025년 10월 기준 무려 4개월째 아이들의 워너비 콘텐츠로 자리 잡고 있다. 그야말로 ‘아이들 사이의 세계관’이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딸이 다니는 어린이집에서도 발레 시간에 이 케데헌의 ‘소다팝’ 춤을 배운다고 한다. 생각보다 리듬이 빠르고 동작도 어려워 보이는데, 아이들이 그걸 곧잘 따라하는 걸 보면 참 신기하다. 어느 날 딸이 물었다. “아빠, 소다팝 알아?” 나는 순간 머뭇거렸다. 엄마 아빠가 모든 최신 콘텐츠를 알 필요는 없지만, 그래도 아이가 눈을 반짝이며 하는 질문에 “그게 뭐야?”라고만 답하면 뭔가 뒤처지는 기분이 들 때가 있다.


어느 날 어린이집 알림장에 소다팝 연습 영상이 올라왔다. 발레 선생님이 아이들을 가르치며 직접 춤을 보여주는 모습도 있었는데 그 열정이 대단했다. 그런데 정작 나는 케데헌을 안 봤다. 아이들이 수십 번, 수백 번 물어볼 때까지도 안 봤다. 이상하게 ‘남들 다 볼 때 하기 싫은 마음’이 생기는 순간이 있다. 결국 어느 저녁, 소파에 앉아 넷플릭스를 켜고 케데헌을 보기 시작했다. 이미 스포일러를 수도 없이 들어서 대략적인 내용은 알고 있었지만, 막상 보니 영상미도 훌륭하고, 노래도 신나고, 아이돌 콘셉트의 애니메이션이라는 신선함도 있었다. 무엇보다 아이들이 왜 이토록 열광하는지 알 것 같았다. 보고 나니 한결 마음이 편해졌다. “아, 이제 아이들이 물어보면 이야기할 수 있겠다”라는 작은 자신감이 생겼다.


그때 깨달았다. 말하기에서 발음, 발성, 논리적 구조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면 바로 ‘시야를 넓히는 일’이라는 것. 말하기란 결국 내가 가진 세계를 꺼내는 일이다. 그런데 꺼낼 세계가 좁으면 말도 당연히 좁아진다. 시야가 넓은 사람은 많은 주제를 이야기할 수 있고, 다양한 사람과 대화를 이어갈 수 있으며, 새로운 환경에 적응도 빠르다. 반대로 시야가 좁으면 대화는 금방 막힌다. 스피치 기술을 아무리 가르쳐도 주제가 부족하면 말은 길게 흐르지 않는다.


아이들을 보면 관심사가 한정된 친구들이 많다. 특히 학년이 어릴수록 학습적인 주제(과학, 역사, 사회 등)에만 꽂혀 있는 친구들이 있다. 이 자체는 나쁜 것이 아니다. 특정 분야에 깊은 관심을 보이는 것은 대단한 강점이다. 하지만 문제는 그 관심사가 대화의 폭을 좁힌다는 것이다. 나는 곤충 이야기를 하고 싶은데 친구들은 곤충에 관심이 없다면 어떨까? 자연스럽게 대화가 단절된다. 아이는 “말이 안 통하네…”라는 감정을 느끼고 대화를 포기한다. 이때 부모들은 종종 이렇게 묻는다. “우리 아이가 문제인가요?” 결론부터 말하면, 아니다. 누가 잘못한 것도 아니다. 다만 말하는 사람과 듣는 사람의 ‘관심사 눈높이’가 다르기 때문이다. 이 간극을 메우기 위해서는 서로가 조금씩 움직여야 한다. 친구는 조금 더 들어주고, 아이는 조금 더 다른 관심사로 눈을 돌리면 된다. 하지만 이 챕터에서는 ‘말하는 사람 입장’에서 어떻게 시야를 넓힐 수 있는지를 이야기해보려 한다.


아이들의 관심사는 나이에 따라 순식간에 변한다. 딸을 키우면서, 조카를 보면서, 학원 수업을 하면서 정말 많이 느낀다. 예를 들어 1학년 조카는 7살 때까지 티니핑을 엄청 좋아했다. 생일 선물, 어린이날 선물, 크리스마스 선물도 모두 티니핑이었다. 그런데 몇 개월 사이에 1학년이 되자마자 티니핑을 정리했고, 대부분을 우리 딸에게 물려줬다. 내가 물었다. “갑자기 왜 안 좋아해?” 조카는 대답했다. “친구들이 이제 티니핑은 유치하대…” 아이들의 세계는 생각보다 복잡하다. 또래 집단의 말 한마디, 분위기 변화 하나에 관심사는 빠르게 이동한다. 좋아했던 것을 단번에 버리는 것이 아니라, 가방에 키링 정도로만 남겨두고 새로운 관심사를 확장해 나간다. 이렇게 관심사가 이동하면 할 이야기가 많아진다. 왜냐하면 새로운 세계를 경험하니까.


결국 하나의 관심사에만 몰두하는 아이들은 일상 대화에서 점점 어려움을 느끼게 된다. 자신의 세계 안에서는 전문가지만, 다른 세계에 대한 확장력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과학·역사·곤충 등 특정 분야에만 몰두하는 아이에게 ‘다른 관심사’를 만들어줄 수 있을까? 답은 당연히 ‘있다’ 이다. 여기서 중요한 개념이 바로 ‘경험의 반복 노출’이다. 아이들이 특정 분야에 꽂히는 이유는 단순히 재능 때문이 아니다. 반복된 노출 때문이다. 곤충을 좋아하는 아이의 집을 가보면 단번에 알 수 있다. 벽에는 곤충 포스터, 책장에는 곤충 백과, 선반에는 누에·장수풍뎅이·사슴벌레 키우는 통. 즉, 그 아이의 하루는 곤충이라는 자극으로 가득 차 있다. 하루에 수십 번 곤충 이야기를 한다. 그러니 당연히 곤충에 빠지고, 곤충 전문가가 된다. 하지만 이 아이에게 다른 관심사를 ‘넣어주지 않으면’ 대화는 단조로워지고 사회적 관계에서도 어려움을 느낄 수 있다.


아이의 시야를 넓히려면 ‘기존 관심사 + 새로운 자극’을 함께 제공하는 방식이 효과적이다. 예를 들어 곤충을 좋아하는 아이에게도 다른 세계로 이어지는 다리를 놓아줄 수 있다. 곤충 + 음악, 곤충 + 만화, 곤충 + 여행, 곤충 + 체험 같은 방식이다. 아이가 편안하게 접근할 수 있는 기존 관심사에 약간의 새로운 색을 섞어주는 것이다. 요즘은 다양한 체험과 놀거리가 많다. 굳이 멀리 가지 않아도 된다. 주말에 1시간 정도만 다른 자극을 경험하게 해줘도 아이의 세계는 확장된다.대화는 결국 공감으로 이어지는 활동이다. “맞아, 나도 알아!” 또는 “어? 그거 나도 봤어!”라고 말할 때 관계는 깊어진다. 공감은 대화의 첫 단추다. 반대로 공감할 수 있는 주제가 없으면 대화는 금세 끊긴다. 아이와 아이 사이의 대화도 마찬가지다. 서로 조금이라도 겹치는 주제가 있어야 이야기가 이어지고, 그 대화를 통해 가까워지고, 친구가 된다. 결국 친구 관계도, 언어 능력도, 말하기 자신감도 ‘시야의 넓이’에서 출발한다.


결국 아이들이 다양한 주제로 말하기를 하려면, 일상 속 자극을 풍부하게 만들고, 그 사소한 일상의 가치를 느끼게 해주어야 한다. 아이들은 특별한 경험을 해야만 할 이야기가 생기는 게 아니다. 오히려 평범한 하루를 특별하게 바라볼 수 있는 시각을 갖게 되면, 대화의 재료는 무궁무진해진다. 스피치 교육에서 중요한 것은 기술이 아니다. 기술보다 먼저 필요한 것은 “내가 할 말이 있다”는 마음이다. 말할 게 없다고 생각하는 아이는 말하기 수업에서도 소극적이다. 반대로 일상에서 사소한 것에서도 의미를 찾을 줄 아는 아이는 대화하고 싶은 욕구가 자연스럽게 생긴다.


아이에게 필요한 것은 특별함이 아니다. 일상 속에서 재료를 발견하는 힘, 사소함을 특별하게 보는 시각, 내 생각을 말하고 싶은 마음. 이런 마음을 깨닫도록 돕는 것이 바로 스피치 교육이다. 스피치는 단지 말 잘하는 법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세계를 넓히고 말할 재료를 풍부하게 만드는 과정이다. 그리고 그 첫걸음은 관심사 하나를 넓히는 것에서 출발한다. 아이의 일상을 풍부하게 해주고, 다양한 자극을 제공하고, 이야기를 나누고, 작은 경험도 언어로 연결해주는 것이 부모가 해줄 수 있는 가장 큰 ‘말하기 교육’이다. 아이의 관심사는 언제든 변할 수 있고, 이동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그 이동을 받아들이고, 그 이동을 활용해 시야를 더 넓히도록 돕는 것이다. 세상은 넓고, 아이의 가능성은 그보다 더 넓다. 부모가 시야를 열어주는 순간, 아이의 말은 자연스럽게 풍성해진다. 이것이 스피치를 잘하게 되는 가장 근본적인 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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