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파르타!!!!!!!
“내 동생 곱슬머리 개구쟁이 내 동생~이름은 하나인데, 별명은 서너 개~” 익숙한 동요 곡의 이름은 내 동생이다. 이름은 하나지만, 부르는 사람에 따라 별명이 달라진다. 이처럼 우리도 어릴 적부터 지금까지 ‘나’를 칭하는 별명이 달라짐을 느낀다. 대두, 두꺼비, 대두(?), 탄두, 두식이 등 온갖 머리에 대한 별명이 난무하다 30대가 되어 ‘원장님’, ‘선생님’이라 불리는 경우가 많아졌다. 스피치 학원을 운영한 덕이다. 벌써 학원을 운영한지 9년 차가 되어 간다. 내가 가장 오랜 시간 생활하는 곳에서는 나를 ‘원장님’이라 부른다. 처음에는 원장님이라는 칭호가 낯설었다. 오히려 선생님, 강사님이라 불리는 게 더 편했다. 사이즈보다 하나 더 큰 옷을 입고 있는 것처럼 불편하기 그지없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원장님이라는 옷이 몸에 딱 맞는 시기가 오더라. 그러다 매번 입던 원장님이란 옷을 갈아입고 싶은 순간이 왔다.
삶을 살아가다 보면 내 이름으로 살고 싶어지는 순간이 온다. 내가 그랬다. 아들 말고, 친구 말고, 원장님 말고, 선생님 말고 진짜 내 이름으로 살고 싶었다. 엄두섭. 이름 석 자로 살고 싶은 순간이 온 건 글쓰기를 시작한 순간부터다. 글을 쓴다는 행위는 나를 들어내는 일이다. 자신의 생각을 하얀 종이 위에 써 내려가는 거다. 하얀 종이를 마주할 용기가 생기는 건 이름 석 자로 살기로 결심한 것과 같다. 이것이 인간인가에서 “우리가 만일 그 이름을 그대로 간직하고 싶다면 우리는 우리 내부에서 그렇게 할 수 있는 힘을 찾아내야만 할 터였다. 그 이름 뒤에 우리의 무엇인가가, 우리였던 존재의 무엇인가가 남아 있게 할 수 있는 힘을 찾아내야만 했다.”라고 했다. 결국 나답게 살기 위해서 내가 가진 ‘힘’을 찾을 필요가 있었다.
학창 시절 책 한 권 읽지 않다가 스무 살 때부터 접한 책이 모든 걸 바꿨다. 독서를 하며, 지금 아내를 만났고, 사랑스러운 딸을 만났다. 딸을 만나고 글을 쓸 결심을 했고, 책을 쓰기 위한 초고를 썼다. 학원에서 아이들을 만나는 시간도 즐거웠지만, 글을 쓰며 나를 찾아나가는 시간도 좋았다. 처음 안 쓰던 글을 쓸 때 나를 의심하곤 했다. “이게 맞나?”라는 생각을 수백, 수천 번도 했다. 삶도 글쓰기와 참으로 닮아 있었다. 삶을 살아가면서도 “이게 맞나?”라는 생각을 누구나 한다. 나의 선택은 틀린 것 같고, 남의 선택은 옳은 것만 같은 마법 같은 일이 하루에도 수십 번 일어났다. 다람쥐 쳇바퀴 돌듯 반복되는 물음 속에서 빠져나올 수 있는 방법은 ‘나의 중심’을 찾으면 될 일이었다. 글을 쓰니 신기하게도 흔들리는 일도 줄어들었다. 짧은 육아 기록으로 시작한 글쓰기는 ‘나다운 삶’을 향한 무기가 되어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