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해봐야 큰거 한장이지라는 엄마의 말
스피치 학원을 오픈할 당시 내 나이는 서른이었다. 강사에서 팀장으로, 다시 부원장으로 현장을 누빈 뒤 나만의 학원을 차리기 위해 꼬박 1년을 준비한 끝에 내린 결정이었다. 하지만 새로운 시작은 누구에게나 그렇듯 쉽지 않았다. 아직 시작하지도 않은 일에 이미 결과라도 나온 듯 좌절하다가도, 어느새 근거 없는 기대에 부풀기도 했다. 학원 교재를 만드느라 온종일 카페에서 수많은 책과 씨름했다. 그렇게 완성한 10종류의 교재는 상담실 한쪽 벽을 알록달록하게 채웠고, 그 책들은 지금까지도 우리 학원의 가장 든든한 무기가 되어주고 있다. 2017년 12월 21일, 대망의 오픈을 일주일 앞두고 불안이 엄습했다. “혹시 원생 모집이 안 되면 어쩌지?” 매달 감당해야 할 임대료와 강사료, 유지비를 생각하니 앞이 막막했다. 잠 못 이루는 아들을 지켜보던 엄마는 툭 던지듯 말씀하셨다. “망해봐야 큰 거 한 장이다.” 살면서 구경조차 해본 적 없는 큰돈이었지만, 그 말을 듣는 순간 이상하게도 ‘망해도 어떻게든 갚을 수 있겠다’는 묘한 용기가 생겼다.
아우슈비츠의 생존 작가 프리모 레비는 저서 《이것이 인간인가》에서 이렇게 기록했다. “보통의 삶에서 한 사람이 완전히 혼자 길을 잃는 일은 드물다. 사람은 혼자가 아니기에 성공도, 추락도 곁에 있는 이들의 운명과 연결되기 때문이다.” 이 말처럼 삶은 우리에게 어느 정도 균형을 맞출 기회를 준다. 불안은 나를 움직이게 하는 원동력이 되었다. 아파트 계단을 오르내리며 전단지를 붙이고 학교 앞에서 아이들을 만났다. 그런 간절한 노력 덕분인지 원생은 매달 늘어갔다. 모든 일의 승패는 결국 마음가짐에 달려 있다. 삶의 고난은 대개 감당할 수 있는 수준으로 찾아오며, 한쪽으로 치우침 없이 균형을 이루며 일어난다. 학원 운영이 정점에 올랐을 때, 코로나19가 전 세계를 덮쳤다. 110명이던 원생은 순식간에 0명이 되었고, 모아둔 돈은 신기루처럼 사라진 채 통장에는 6천만 원의 대출금만 남았다.그럼에도 포기할 수 없었던 건, 삶에 영원한 절망도 영원한 행복도 없다는 사실을 믿었기 때문이다. 아이들이 없는 텅 빈 공간이었지만 평소보다 더 깨끗이 청소했다. 다시 만날 아이들에게 더 안전하고 즐거운 공간을 선물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이 시련을 버티게 해준 건 곁을 지켜준 가족과 친구들이었다.
지금 힘든 순간을 마주하고 있는가? 삶은 언제나 균형을 잡을 수 있는 기회를 여러 번 건넨다. 중요한 것은 현재 나의 상황을 객관적으로 직시하는 것이다. 더 균형 잡힌 삶을 위해 어떤 노력이 필요한지, 얼마나 겸손해야 하는지는 이미 내 안에 답이 있다. 이제 자신의 목소리에 집중하며 정확한 판단을 내려야 할 시간이다.코로나19로 학원이 폐업 위기까지 몰렸지만, 그 멈춤의 시간은 나에게 커다란 깨달음을 주었다. ‘영원한 것은 없다’는 진리다. 고통도 행복도 머물다 갈 뿐이다. 그러니 우리는 새로운 고통과 새로운 행복을 마주할 준비를 해야 한다. 어떤 파도가 밀려와도 흔들리지 않는 나를 만드는 힘은 스스로를 깊이 이해하는 데서 나온다. 삶은 언제나 우리에게 고난과 기회를 동시에 선물하기 때문이다.
https://www.threads.com/@paparanger_?igshid=NTc4MTIwNjQ2YQ==