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 친절한 나를 찾아서
초중고 시절부터 사회생활에 이르기까지, 나는 늘 큰 풍파 없이 흘러가는 강물 같은 사람이었다. 주변에선 나를 ‘착한 아이’라 불렀다. 하지만 나를 조금 깊게 아는 이들은 ‘계획적인 놈’이라는 별칭을 붙여주기도 했다. 악의는 없었지만 손해 보는 것은 싫어했던 성격 탓이다. 내게 양보는 무한한 베풂이 아니라, 철저히 ‘허용 가능한 범위’ 안에서 이루어지는 계산된 친절이었다. 욕심나는 것이 생기면 머리를 써서라도 쟁취해야 직성이 풀렸다. 그렇게 겉으로 보이는 나와 속마음이 어긋날수록, 스스로를 갉아먹는 피로감은 커져만 갔다.
성인이 되어서도 삶의 궤적은 비슷했다. 결혼 전엔 충실한 아들로, 결혼 후엔 아들이자 사위, 아빠이자 남편이라는 1인 다역을 수행하며 ‘좋은’이라는 수식어를 훈장처럼 달고 살았다. (물론, 아내도 그렇게 생각하는지는 확인해 봐야겠지만.) 하지만 타인에게 좋은 사람이 되려 애쓰는 동안, 정작 나는 나 자신에게 가장 ‘나쁜 사람’이 되어 있었다. 내 감정은 언제나 우선순위에서 밀려났고, 차곡차곡 쌓이기만 하던 마음의 잔해들은 어느 순간 균형을 잃고 와르르 무너져 내렸다. 별일 아닌 것에 짜증이 솟구치고, 스스로에 대한 화가 가라앉지 않을 때마다 자문했다. “정말 이렇게 살아야 하는 걸까?”
서른아홉, 불혹을 앞둔 나이가 되어서야 비로소 깨달았다. 세상에서 가장 친절하게 대접해야 할 사람은 바로 ‘나’라는 사실을. 《철학자의 걷기 수업》에서 말하듯, 자신과 어떤 관계를 맺느냐에 따라 세상과 맺는 관계의 결도 달라진다. 내면의 신호에 귀를 기울이고 안과 밖이 일치될 때, 비로소 마음엔 평온이 깃든다. 삶을 지탱하기 위해 어느 정도의 ‘가면’은 필요할지 모른다. 가면을 쓴 모습 또한 나의 일부니까. 어릴 적 ‘착한 아이’라는 말이 어색해 더 착한 척 애썼던 나도, 남모르게 계산기를 두드리던 ‘계획적인 놈’도 결국은 모두 나였다. 그때의 내가 어떤 마음이었는지 그저 따뜻하게 알아줬어야 했다.
우리는 눈을 떠서 감을 때까지 수많은 이들과 섞여 살아가지만, 죽을 때까지 동행하는 유일한 존재는 결국 나 자신이다. 그러니 내가 가장 공들여 살펴야 할 대상도, 가장 다정하게 대해줘야 할 대상도 나여야만 한다. 겨울의 끝자락, 집 뒤편의 작은 산과 눈앞의 산책로를 본다. 이제 부지런히 걷고 오르며 생각해보려 한다. 타인이 아닌 나에게, 조금 더 친절해지는 방법에 대하여.
https://www.threads.com/@paparanger_?igshid=NTc4MTIwNjQ2YQ==