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으니 쓴다. 쓰니까 읽는다.

책 정리 어떻게 하는 게 효율적인가요? 네?

by 파파레인저

본격적인 독서의 시작은 스무 살 군 입대 시절이었다. 정훈공보병으로 복무하며 ‘보안성 검토’라는 명목하에 부대로 들어오는 모든 책을 검열하는 것이 내 일이었다. 사실 맥심 잡지 외엔 반입 금지 도서가 거의 없었기에, 나는 업무라는 핑계로 합법적인 독서 삼매경에 빠져들었다. 당시의 고민은 ‘어떻게 이 문장들을 남길 것인가’였다. 매일 사무실로 출근해 한글 파일에 책 제목을 적고 기억하고 싶은 문장들을 하나하나 타이핑했다. 하지만 정성껏 인쇄해 전역 가방에 챙겨왔던 그 뭉치들은 세월의 풍파 속에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말았다.

복학 후 독서 모임을 할 때는 인덱스 포스트잇을 활용했다. 책장에 꽂힌 책을 보다가 문득 생각나면 뽑아서 표시해 둔 곳을 다시 읽었다. 그러나 수십 권의 책 사이에서 지금 당장 나에게 필요한 문장을 골라내기란 모래사장에서 바늘 찾기였다. 결국 나는 아날로그 노트를 샀다. 문장을 직접 옮겨 적고 내 생각을 덧붙이니 훨씬 깊이 기억에 남았다. 모든 문장을 외울 순 없었지만, 그 문장들이 내 몸의 피와 살이 되는 기분이었다. 책을 읽을 때마다 나는 매번 새로운 삶을 다시 사는 듯한 희열을 느꼈다.


서른아홉, 아이를 낳고 육아일기를 쓰기 시작하며 삶의 방향이 바뀌었다. 일기는 자연스레 책 집필로 이어졌다. 책을 읽다 보니 책을 쓰고 싶어진 것이다. ‘읽으니 쓴다.’ 첫 책을 준비하는 이들의 마음이 다 이와 같을까. 하지만 막상 글을 쓰려니 내 빈약한 논리를 단단하게 받쳐줄 인용 문장들이 절실해졌다. 정작 필요할 때, 과거 내 심장에 박혔던 그 수많은 문장들은 어디에 있는지 찾을 길이 없었다. 결국 최근에는 ‘노션(Notion)’이라는 어플에 정착했다. 타이핑 속도는 빨라졌고 정리 방식은 세련되어졌지만, 여전히 ‘인용구 찾기’라는 숙제는 현재진행형이다.


이유미 작가는 저서 《문장 수집 생활》에서 이렇게 말했다. “기록하지 않은 문장은 내 것이 되지 않는다. 하지만 기록해 둔 문장은 언제든 나를 구하러 와줄 준비가 되어 있는 든든한 아군이다.” 돌이켜보면 지난 19년의 시간 동안 나의 독서법과 정리법은 상황과 마음가짐에 따라 끊임없이 변해왔다. 지금의 시행착오 또한 ‘읽는 사람’에서 ‘쓰는 사람’으로 진화하기 위한 필연적인 과정일 것이다. 공책이든, 어플이든, 메모장이든 방법은 중요치 않을지도 모른다. 결국 나만의 방식을 찾아가는 여정 그 자체가 나를 만드는 것이니까. 삶이란 게 다 그런 거니까. 이 방법, 저 방법 시도하다 보면 머지않아 나를 구하러 올 든든한 아군들을 내 곁에 가지런히 세워둘 수 있을 것이다.


노트에도 적고, 노션에도 정리하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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