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하겠습니다.

내 인생에서의 퇴사를 결심한 날

by 파파라파랑


제 좌우명은 '느긋하게 살자'입니다.

누군가가 제 좌우명을 들으면 박장대소를 터뜨리며 이렇게 말하죠.


"니 좌우명대로 잘 살고 있구나!"


웃으실 만도 하죠.


저는 행동이 느려서 남들이 보기에 매사 느긋한 것으로 보이니까요.

맞습니다. 저는 느긋하게 그 순간에 충실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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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저의 순간순간을 아껴주고, 제 자신의 가치를 보듬어줍니다.

저는 제 가치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누군 안 그렇겠냐고 그러시겠지만요.



25살에 처음으로 사회에 발을 들였습니다.

그 뒤로 5년이라는 시간 동안 세 개의 회사를 거쳐왔습니다.



제가 디자이너로서 제일 마지막으로 다녔던 회사는요.

회사를 옮겨 다닐 정도로 갈증을 느꼈던 업무를 드디어 하게 되었던 회사입니다.

뿐만 아니라 규모도, 입지도, 체계도.. 그전에 다녔던 소규모 회사들과는 달리 '회사다운 회사'였죠.

이직에 성공하고서, 드디어 하고 싶었던 일을 한다고 생각해 기쁘게 다녔습니다.



그런데 점점 업무과중이 빈번해지기 시작했습니다.

동료들이 인당 평균 2~3개 정도의 프로젝트를 담당할 때,

저는 하루 만에 쳐낼 수 있는 과업부터, 장기적인 프로젝트까지,

도합 4~5개의 프로젝트를 맡고 있는 날도 있었습니다.



동료들이 각자의 여가시간을 즐기러 퇴근을 하기 전에요.

항상 저에게 와서



'오늘도 남냐',

'지금 어떤 프로젝트 진행 중인 거냐',

'힘내라'



라는 말과 함께 위로 안되는 위로를 하며 떠나곤 했습니다.

동료들 사이에서 저는 야근의 아이콘이었습니다.

50명 남짓한 회사에서 퇴근하는 마지막 사람으로서, 사옥의 문단속을 제가 하는 일이 빈번했습니다.

회사에서 마지막으로 남는 날이면 항상 혼자 울면서 작업했던 기억이 납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저는 번아웃을 겪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이쯤 되면 '추가근로 수당이 쏠쏠하지 않았느냐'라고 궁금해하실 텐데요.

포괄임금제라 추가근로 수당을 안 받는다는 건 이젠 말하기도 입 아픕니다.

제공받은 것이라곤, 밤까지 일하면 나오는 석식대와 택시비가 전부였다는 것도요.

그렇지만 최대한 빨리 끝내고 집에 가고 싶은 마음에 저녁을 굶었습니다.

그렇다고 화 내진 마세요.

와중에 손해는 절대 안 보겠다고, 석식대로 샐러드 같은 것이라도 꼭 사서 냉장고에 처박아뒀으니까요.



그날 해야 할 일을 아무리 끝냈어도, 남이 정한 마감기한이 오늘까지라는 이유로 집에 못 갔습니다.

모두가 퇴근해 아무도 없는 사무실에서 가만히 앉아 기다려야 했죠.

퇴근해서 자신의 여가시간을 즐기고 있을 거래처 담당자를요.

그가 짬 내서 시안을 보고 피드백이 오면, 수정을 하고 또 시안을 보내고요.



그렇게 야근을 했는데, 다음날 기획 방향이 바뀌어서 모든 게 공중분해됐던 일도 적지 않게 있었습니다.

제가 밥 굶어가며, 정신을 갉아먹어가며 보낸 그 시간이 모두 의미 없는 시간이 되어버렸습니다.

그 부분에서 굉장히 큰 분노와 허무감을 맛보았습니다.

저의 시간과 저의 가치가 저평가되는 것에서 참을 수 없음을 느꼈죠.



회사 생활을 제 인생에서 영원히 끝내기 위해 퇴사를 감행했습니다.

저의 가치에 맞는 일을 찾기 위해서요.



하지만 회사라는 안전한 경제적 둥지를 빠져나오니, 저는 궁핍해졌습니다.

가뜩이나 인생에 전략이나 계획이라곤 없었기 때문입니다.



결국 집 근처 식당에 취직을 하며 저는 이렇게 자기 합리화를 하였습니다.

'나의 일과 식당 일을 병행하며 균형을 맞추면 되겠지.'



하지만 큰 오산이었죠.

오히려 몸이 더 힘들고, 저를 위한 시간도 없었거든요.

나의 시간과 가치가 저평가되던 회사 생활과 다를 바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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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가치에 맞는 일을 찾겠다며 퇴사해놓고, 식당에 정직원으로 들어간 제 모습이 부끄러웠습니다.

결국 식당에서 반년 정도 일하고 나왔습니다.

퇴사를 한지는 어느덧 1년이 다 된 시점이었습니다.



1년이 지나서야 제 일을 찾는 여정으로 발걸음을 제대로 내딛기 시작했습니다.

한 게 없었기 때문에, 성과 역시 없었죠.

하지만 조금씩 차곡차곡 무엇인가를 쌓아 올려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손가락만 빨고 있을 순 없으니, 고정 생활비를 위한 일은 해야겠죠.

하지만 돈을 쫓아 제 시간과 가치를 팔아넘기는 일은 더 이상 하지 않겠습니다.



저의 가치를 위해 지난 31년간의 제 자신을 깨부숴보도록 하겠습니다.

그렇게 살아보겠습니다.

제가 조금이라도 나약해지는 기미가 보인다면,

채찍질을 감히 부탁드리겠습니다.






파도는 곧 올 거야, 준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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