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마다 차이가 있을 수 있겠지만
내가 부모가 되었다는 사실을 인식하게 되었을 때
아이에 대한, 앞으로의 시간을 어떻게 보낼까라는
생각에 많은 시간을 할애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여러가지 생각들의 뿌리가 되는 것을
한 문장으로 표현한다면
"좋은 부모가 되어야지"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몸에 좋은 음식들을 먹이고 싶고, 멋있고 이쁜 옷을 입히고 싶고 엄마, 아빠에게 사랑받는 시간들로만 가득한 일상, 그리고 내 어린시절 속에서 부모님과 겪었던 마찰들을 돌이켜보면서 우리 아이한테는 그러지 말아야지 하는 생각 등이 포함된 것 같다.
이 생각들은 임신과 출산 이어지게 될 육아까지
아이를 키우고 있는 부모라면,
그리고 키우게 될 부모라면
한번쯤 생각해보는 부분인 것 같다.
만약 누군가 나에게 좋은 부모가 무엇이라 생각하냐 묻는다면 떠오르는 단어들이 몇가지 있다.
'친구같은'
'아이의 의견을 존중하는'
'아이가 원하는 바를 이룰 수 있게 도움을 주는'
아이와 관계에서 동등하고 조력자의 이미지를 띄고 있는 모습들이 좋은 부모라고 여겨왔다. 어쩌면 내가 겪어온 어린시절은 집이나 학교에서 엄격했기 때문에 권위라는 단어에 대한 인식이 좋지 않다는 것이 마음속에 남아있었기 때문이지 않을까 싶기도 한다.
아이가 3~4살 무렵이었을까,
미디어에서 많이 보이는 오은영 박사님을
갓은영이라 칭하여 많이 참고했던 기억이 있다.
아이와 나의 상황을 빗대어
나도 저렇게 아이를 대했어야 하는
아쉬운 생각에 마음 한구석이 불편했던 기억도 있다.
미디어에 비친 상황들 중 단호한 모습을 보일 때도 있었지만 대체로 극단적인 상황이었기에 그런 것이라 생각했고 아이의 말을 듣거나 아이의 시선에서 바라보고 이해하려 모습들에 대해서만 눈에 들어왔고 당시 내가 이상향이라고 여겨왔던 부모의 모습과 가까웠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그러다 어느날 다른 영상을 접하며 생각이 바뀌었다. 부모와 자식사이에는 권위있고 보다 구체적인 지시를 내리는 것이 오히려 아이가 안정감을 느끼는데 도움이 된다는 것이 영상의 주된 내용이었다.
규칙 속에서 안정감을 느끼고
이 안정감이 바탕되는 상황 속에서
이후 아이 본인만의 무언가를 만들어간다.
특히 아이의 의견을 물어 무언가를 선택하는 대화방식은 문제가 생겼을 때 아이에게 책임을 전가하기 위한 부모의 화법이라는 부분은 정말 인상깊게 다가왔다.
아이의 의견을 바탕으로 된 결과물이
예상 또는 계획대로 되지 않았을 때
부모가 아이에게 "너가 이거 하자고 그랬잖아"라는
언행과 이어진다는 것이다.
그때 순간 멍해졌다.
당시에 내가 저 문장의 워딩 그대로를 입 밖으로 정말 내뱉고 있었고 그때의 기억들이 파노라마처럼 스르륵 지나갔다. 내 기준에서는 배려라고 했던 방식들이 어쩌면 아이에게 혼선을 줄 수 있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돌이켜보면 어찌보면 당연한 일이지 않을까 싶기도 한다.
하루하루가 새로운 경험들의 연속인 아이들의 눈높이와 부모의 눈높이는 아무래도 차이가 있을 수 없다. 부모들은 지금까지 많은 경험들과 시행착오를 겪어왔고 이를 통해서 어떤 선택에 대한 결과를 예측할 수 있다. 반면 아이들을 그렇지 않다. 당시에 그 20분 남짓의 영상 한편을 보고 정말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망망대해에 떠있는 작은 뗏목에
비바람과 태풍을 피할 수 있도록
도움이 되는 등대가 되어야 하는데
어쩌면 덩그러니 두는 선택을 하게 된 것 같았다.
지금도 아이와 하는 시간들 속에서
수많은 선택을 하게 된다.
특히 아이가 여섯살에 접어들면서 의사소통이 점차 원활해지고 자기주장의 색이 점차 짙어지며 그르치는 일이 잦아지기도 했다. 그래서일까 최근 좋은 부모가 무엇일지 생각할 때가 많다.
내 기준에서의 '좋은 부모'이라는 개념이
다른 누군가에게는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어쩌면 나는 '좋은 부모'가 아니라
호소인의 한사람이었을지 모르겠다.
육아에 정답이 없다는 말이 있다.
오늘도 좋은 부모가 무엇인지 고민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