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요성은 제거효과에 의해 확실히 검증된다.
"부부 중 하나를 silencing 한 순간,
남은 반쪽의 온 생활 시그널들이 삐그덕 대는 게 바로 느껴진다.
이 정도 중요도면, 학위논문이나 인생논문 감이다."
'DNA서열이든, 단백질이든, RNA분자든 간에, 본인이 확인한 환자군의 공통적인 특성이 되는 이 물질이, 중요한 논문주제용(?)인지 아닌지는 어떻게 확인할까?'
이 질문은 세상 모~든 논문러들이 논문주제를 정할 때 반드시 하는 핵심적인 질문이기도 함과 동시에, 가장 기초적인 단계에서 스스로에게 던지는 첫 질문이기도 하다. 인생에 있어 가장 빛나고 예쁠 시간들을 맞바꾸어 써 내려가고 있는 이 논문이, 이왕이면 인류발전에 도움이 되는 논문이길 바라니까.
그런데 중요하고도 중요한, 이 질문의 답은 논문 초기단계의 첫 질문의 답이기도 한 만큼 의외로 간단하게 확인 가능하다. 내가 주제감으로 정한 '얘'를 없애보는 것이다. 섬뜩하게 들리지만 이것 만큼 확실한 방법이 없다. 원래 있던 애 하나를 제거한 뒤, 여기저기서 문제가 나타나는지, 안 나타나는지를 살펴보는 것이다. 그럼 얘가 진짜 우리 몸에서 정말 중요한 역할을 하는지 안 하는지 판단될 테니 말이다. (사실 인생을 걸고 논문을 쓰고 있는 논문러들 입장에선 후자가 더 섬뜩한 소리다.) 원래 있던 존재의 부재는 그만큼 간단하게 발생될 수 있는 일지만, 중요한 정답을 안겨주는 일이기도 하다. 어찌 됐든, 그러다 보니 이쪽 분야에서는 어떤 물질을 억제하거나 제거하는 기술이 많이 발달되어 있다. 그리고 그중에서도 많이, 그리고 흔히 사용되는 방법이 바로, 오늘 내가 주제로 잡은 siRNA, 작은 간섭 리보 핵산을 이용하는 방법이다.
siRNA는 우리가 고른 단백질을 만들어내는 유전자를 일.시.적으로 방해해서 그 단백질의 생산량을 확 줄여버리는 기술이다. 가령 예를 들어 내가 A라는 단백질의 양을 일시적으로 줄이고 싶다면, A라는 단백질을 만들어내는 유전자서열을 찾아, 일시적으로 그 부분만 방해하는 si-A를 만들어 처리해 보는 기법이다. B라는 단백질이라면? si-B를 만들어 처리하고 나타나는 현상들을 보면 된다. 이 쪽 분야에서는 이런 식으로 논문을 구상하는 초입시기에, 환자군에서 공통적으로 발현되거나 혹은 발현이 억제되어 있는 물질을 찾고 확인해 보면서 얘가 중요한지 안 한 지를 평가해, 논문을 계속 진행할지 말지를 신중하게 결정한다. 그러다 보면 가끔은 몸안에선 아주 적은 양만 있던 애라 별로 중요할까 싶던 애들이 siRNA로 확 줄여버렸더니 생각지도 못하게 생체시그널 곳곳에서 문제들이 발견되기도 한다. 그럼 그 순간 내가 찾은 얘가 날 이번 평가에서도 살아남게 해 줄 아주 소중한 녀석임을 알게 된다. 그만큼 siRNA실험 결과는 논문의 핵심데이터 중 하나에 해당한다.
나는 늘 이 세포보다도 작고 작은 유전자 단위에서 발생되는 유기적 관계성이, 개체들 사이의 관계성과도 유사하다는 생각을 한다.(그게 이 과학의 언어로 결혼에 대해 말하게 된 이유기도 하다.) 그래서 부부사이에서도 이 siRNA실험이, 때론 결혼이라는 인생논문의 핵심데이터가 될 때가 있다고 믿는 편이다.
우리 부부에겐 4년 전 서로에 대해 이 siRNA실험을 해 볼 좋은 기회(?)가 있었다. 결혼 전을 포함해 5~6년간을 거의 24시간 붙어 지냈기에, 서로 각자의 시간도 필요하지 않겠냐는 생각이, 스멀스멀 피어오르려 준비하던 시기라 타이밍도 딱인 시점에 발생한 일이었다. 어수선하고 힘들었던 프랑스 초기 정착이 끝난 뒤였는데, 나는 약 3개월간 병원통원치료가 필요해, 한국에 일시 귀국을 해야 했다. 물론 바로 일을 시작하게 된 오빠는 프랑스에 있어야 했기 때문에 임시 롱디를 체험하게 된 것이었다. 둘 다 예상치 못한 일이었지만 큰 동요는 없었다.
사실 처음에 나는, 3개월이란 시간이 그리 긴 시간도 아니거니와, 병원을 왔다갔가 해야 했고, 한국에서의 일처리도 남아있던 상태였기 때문에, 각자의 위치에서 일을 하다 보면 떨어져 있는 시간은 금세 가겠구나 싶었다. 하지만 따로 지내자마자 당장 si-오빠 효과가 내 인생에 발현되기 시작했다. 어딜 가든 늘 동행해 주던 오빠가 없으니 병원을 다닐 때도 직접 운전을 하고, 그 어려운 주차를 해야 했고, 심리적으로 불안하거나 예민한 순간에도 늘 스스로 침착해져야만 했으며, 자잘한 스케줄과 시간들을 채근해 주는 매니저 없이 일처리를 했더니 깜빡하고 놓치거나 허둥대며 늦는 일들이 빈번히 발생하기 시작했다. 잔소리 쟁이라고만 생각했는데, 오빠 하나를 silencing 한 순간 나의 온 생활 시그널들이 삐그덕 대는 게 느껴졌다. 이 정도 중요도면, 학위논문이나 인생논문감이구나 싶었다. 다행히(?) 그 시기 오빠도 그걸 느꼈던 거 같다. 본인 피셜에 따르면, 3일은 즐거웠고 7일째부턴 무기력해지다가, 2주가 지나자 집안 곳곳에 묻어났던 나의 소중함과 고마움이 절실히 느껴졌다나. 그래서 결국 떨어져 있는 시간을 한 달도 채 다 채우지 못하고, 오빤 휴가를 쓰고 한국에 한동안 들어와 있었다. 그리고 그 이후엔, 각자의 시간이니 뭐니 하는 생각은 일도 하지 않는다. 서로 보완해 가며 함께할 수 있는 존재가 있다는 것 자체가 얼마나 서로의 인생에 중요하게 작동되는 지 확인했기 때문이다.
어찌 됐든 짧았지만 강력했던 우리 부부의 '일시적 부재' 효과검증 실험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뭐, 논문으로 따지자면.. 서로의 존재에 대해 중요성을 입증한 주요 결과(main figure)를 얻은 셈이랄까.
2010년도부터 즈음인가, 한국에서 '유전자 가위 CRISPR-cas9'를 대량생산할 수 있는 다양한 방법들이 나왔다며 신문에 소개되곤 했다. 그리고 그로부터 13년가량이 흐른 지금은, 그때의 대량생산기술 개발을 넘어 이젠 대량으로 만들어 낸 이 CRISPR-cas9을 사용해 다양한 유전적 질병을 연구하거나, 치료제를 개발한 사례들이 소개되고 있다. 어렵고 복잡한 기술 같지만, 대량생산이 용이해진 덕분에 요즘 많은 한국의 기초의학 연구실에서 논문을 내거나 검증을 해야 할 때 실제로도 많이들 사용하는 기술이 됐다.
이전의 일시적으로 양을 감소시켰던 siRNA기술과는 달리, CRISPR-cas9 (Clustered Regularly Interspaced Short Palindromic Repeats-CRISPR-associated sequences 9) 기술은 잘라내고 싶은 유전자 서열을 골라 그곳만 싹둑! 아예 잘라 없애버리는 기술이다 보니, 효과도 확실하고 영구적이다.
하지만 다시 원래대로 되돌릴 수 없는 단점이 있고, 비용 부분적 문제와 (물론 예전에 비해서는 매우 저렴해진 편이다.), 테스트에 필요한 시간도 꽤 되기 때문에, 웬만큼 결과에 대한 확신이 섰을 때에나 사용한다. 이전 화에서도 언급했듯이 뭐든 잘라내서 없애버리고 새로 만들고 하는 건 시간도 확신도 많이 필요한 일이니까.
그래서 새로운 단백질의 영향을 이제 막 처음으로 확인해봐야 할 때에는, 여전히 많은 팀들이 siRNA (silencing RNA)를 주로 우선적으로 사용해 결과를 확인한다. 일시적이라는 사실은, 때론 돌이킬 수 있는 일이라는 장점이 되기도 하고 중요한 물질일 수록 다소 극단적이고 치명적인 방법만큼이나 이런 일시적 부재효과 만으로도 충분히 검증될 수 있으니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