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은 '연금아들'입니다.
얼마 전 내 글에 달린 댓글에서, 시부모님 입장에서는 내가 잘 못 일수 있다는 얘기를 들었다.
물론 글로 쓰는 것들이 단편적 이어 서기도 하지만, 나도 단편적인 사람이니 조심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그 이후로는, 시댁과 관련된 글은 가급적 쓰지 않으려 노력했다.
쓰는 나도 당장은 시원할지 모르겠으나, 어쨌든 내 시댁을 욕보이는 일이니 마음이 편치만은 않으니.
그런데 오늘은 도저히 글을 쓰지 않고는 답답한 속을 어디다 풀 곳이 없다.
아는 사람들에게 말하자니, 가뜩이나 불쌍하고 안쓰러운 내 남편이 얼마나 더 불쌍하고 안쓰러워 보일까 싶어서 말이다.
"저기.. 여보.. 나 90 밤 자면 프랑스 갈 수 있겠지?"
"그러려면 식단도 잘 지키고, 운동도 잘하고, 스트레스받으면 안 돼. 알겠지?"
"알지..."
"첫 추적검사 결과 좋으면, 두 번째 추적검사 때까진 프랑스에서 있자! 그러니까 힘내, 응?"
"..."
"나도 오빠 오면, 계속 같이 있어 줄 수 있게 일도 미리미리 다 끝내놓을게!"
"알았어..."
하루에도 서너 번씩 전화를 하는 남편의 목소리인데, 부쩍 기운이 없다는 사실을 눈치채지 않을 수 없었다.
평소 같으면 본인이 얼마나 운동을 열심히 했는지, 식단은 또 얼마나 잘 지켰는지를 말하느라 쉴 새 없이 재잘재잘 거렸을 텐데, 내가 한 질문에 겨우겨우 하는 대답조차 시원찮다.
"왜 여보, 무슨 일 있었어?"
"아니.. 그냥.. "
"왜에- 누가 우리 여린 남편 마음을 또 스크래치 냈을까?"
"아니야, 그냥 내가.. 좀 쓸모없는 사람 같아서"
"무슨 소리야! 자기가 왜 쓸모가 없어. 뭔 일인데? 어? 누가 뭐라 그래?"
"실은.."
본인이 쓸모없는 사람 같다는 말을 한 남편의 입에서, ‘실은’과 함께 나온 말들은 듣자마자 내 분노게이지를 폭발시키기 충분했다.
남편이 대학원 시절, 직장 없이 7년을 넘게 집에서 쉬시던 아버님을 대신해 몇 천 단위로 나온 어머님 병원비를 혼자 다 감당했던 적이 있다.
친구분을 따라 침을 맞으셨었는데, 당뇨도 있으셨던 데다가 제대로 된 한의원도 아닌 곳에서 맞으시면서 감염이 일어났다. 뭐에 감염이 일어난 건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어머님 상태는 심각해져 의식도 며칠간 잃으실 정도였다고.
외동아들이던 남편은 어떻게든 어머님의 병원비 마련을 위해 그 당시 대학원생이었던 신분을 이용해 학자금 대출을 받았다.
20살부터는 스스로 벌어 사는 거라던 시부모님 덕분에, 일찌감치 받았던 대학 등록금 학자금 대출을 이제 막 겨우 다 갚았을 때였다.
대학을 다니는 동안에도, 남편은 주중엔 인턴생활로 스펙을 쌓고, 주말엔 학원알바를 하며 생활비와 대출금을 갚아야만 했었다고 했다.
밥 사 먹을 돈이 없어 친구가 남긴 밥을 몇 숟갈 얻어먹는 것으로 대신했던 적도 있다는 이야기와
차비를 아끼려 학교에서 자고 화장실에서 씻고 다닌 적도 많았다는 이야기는
나도 몇 번이고 들은 남편의 무용담이자 '한'이었다.
그 생활을 겨우 탈출했다 싶을 때, 다시 학자금 대출을 받으려니 허무함 마저 들었다고.
그렇게 다시 남편은 주중엔 대학원생활을, 주말엔 학원알바를 다시 시작했었다.
물론, 그러는 와중에도 아버님께선 다른 ‘직장인인 친구아들’들을 부러워하며, 넌 도대체 언제 돈 벌어다 주는 거냐며 종종 서운함을 토로하시기도 하고, 병특에 합격하기 전까지 남편에게 서울대도 아닌 네가 그런 걸 어떻게 합격하겠냐며 빨리 취직이나 하라고 성화셨다고 한다.
덕분에 남편은 아버님과의 사이를 매우 불편해했지만, 순둥순둥한 성격덕에 싫은 소리를 한번 못했다.
그렇게 결혼을 해서도 남편은 7년간 시댁의 공과금 일부와 아버님 보험료, 학자금을 갚아냈다.
다달이 110만 원이라는 돈이 적지 않았지만 남편은 불평 한번 없이 감당했었다.
그런데도 시댁은 꼬박꼬박 명절이며, 생일이며 행사가 있을 때마다 용돈을 주시는 친정과 달리, 때마다 단 몇십 만원씩이라도 꼭 요구하셨다.
남편은 내게 폐 끼치기 싫다며, 늘 본인 용돈을 모아 그 금액까지도 충당했다.
늘 하고 싶은 것도, 먹고 싶는 것도 참는 거에 익숙한 남편이었다.
나에게 늘 미안해하는 사람이라, 티가 나지 않게 공금으로 운영되던 생활비라도 남편이 좋아하는 메뉴와 좋아하는 취미를 함께 즐기는데 쓰려고 노력하는 것 말고는 내가 해 줄 수 있는 건 없었다.
그렇게 7년의 결혼생활이 끝나갈 무렵, 남편이 쓰러졌고 암이었다.
집 월세며, 함께 생활하던 공과금등은 내 월급에서 다 나가는 걸로 돌렸지만, 남편이 개인적으로 감당하던 달의 110만 원만큼은 시댁에 부탁을 드렸다.
일을 시작하신 아버님께서 툭하면 남편에게 전화해 차를 사신다, 전기오토바이를 사신다 하시던 때라 불가능한 일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게다가 그 110만 원은 시댁 공과금과 보험료, 그리고 어머님의 병원비를 냈던 학자금이었지,
남편에게 들어간 돈도 아니니 당연하다고도 생각했고.
근데, 어머님과 아버님 생각은 다르셨나 보다.
오늘은 남편이 7년간 내던 110만 원을 고작 3번째 내주신 날이었다.
(아버님이 사시겠다던 차는 2000만 원 짜린데 말이지!!!)
“그래서 이걸 도대체 언제까지 내줘야 되니?”
“저 이제 수술 끝난 지 2달이 채 안 됐어요”
“며느리는 뭐 하고?”
“걔 얘기를 왜 해. 우리 집 문젠데”
“그래도 결혼하고 했으면 가족이니까 같이 해야지”
"뭘 같이해? 우리가 뭐 해준 게 있다고 같이하래?"
“아버지도 일을 언제까지 해야 되나 어! 힘들어서 그렇지!”
“아버지 이제 겨우 일하진 몇 년 안 되셨어. 그리고 **이도 지금 내 거까지 다 감당하고 지내느라 힘들어.
결혼하고 하면서 생긴 빚이며, 프랑스 이사하고 자리 잡고 하면서 생긴 빚도 이번에 나 쓰러지면서 **이네 집에서 다 갚아주셨고.
이정돈 우리 집에서 해야 해"
“가족끼리 더 있는 집에서 더 많이 도와주고 그러는 거지 뭘 그러냐! 네가 아픈 걸 어쩌.”
“아니, 그래서 언제까지 해줘야 하는데?"
“그래, 넌 언제 일 시작하는 거야? 며느린 돈 얼마 받는데?”
“아, 두 분 다 그만하셔! 걔가 뭔 죄야? 내가 일을 하든지 해볼게”
그렇게 남편이 처음으로 큰소리를 낸 듯했다.
남편은 무슨 일이 있었는지, 나에게 설명하면서도 분이 삭여 지지 않는 듯했다.
자꾸만 나한테도, 처가에도 미안하다고도 했다.
자기가 죄인 같다며.
“오빠 아니야. 오빠가 잘못한 거 아니야”
“.. 내가 아파서 미안해”
“아니라니까.. 암 수술한 지 2달 겨우 지났는데 벌써 그러시는 건 진짜 속상하다..”
“그러게.. 나 진짜 너무 나가고 싶어 여기서”
“알지.. 근데 당장 내가 110을 더 벌 방법이 없어서... 자기한테 바로 오라고도 못하고... 미안해”
“아냐 아냐, 나 프랑스로 다시 갈 때까지만 잘 참아볼게”
“오빠 스트레스받으면 뇌종양엔 진짜 안 좋대. 정 힘들면 친정으로 가있어도 돼.”
“안돼, 죄송해서 싫어. 안 그래도 장모님 필요한 거 없냐고 뭐라도 보내줄 거냐고 연락하셨더라. 아버님도 어디 가고 싶은데 있음 전화하라고 하시고. 나 그만 죄송하고 싶어."
"오빠 마음이 편하게 지금은 제일 중요한 거야. 미안해하지 마, 자기 우리 집 큰 아들이야."
"알지, 근데 무엇보다, 내가 여기서 나가 있으면 그나마도 주시던 110부터 안주실 분들이야. 그럼 그거 또 다 네가 감당해야 하잖아. 내가, 버텨볼게.”
서로 다독이며 전화를 끊고 회의에 들어갔지만, 통 일이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아니, 들어올 수가 없지. 이 상황에 어떻게 일이 손에 잡히겠는가.)
시댁에서 스트레스받고 있을 남편이 걱정됐고, 그의 암이 더 심각해질까 두려웠다.
내가 어쩌지 못하는 상황이 속상했다.
나는 설 이후로 근 한 달간 시부모님들께 전화 한번 안 드렸다.
가뜩이나 찰랑찰랑하게 채워진 나와 시부모님 간의 물항아리에, 전화를 하다가 자칫 잘못해 물방울이 똑 떨어질까 걱정되서였다.
‘딸 같은’은 일찌감치 포기했지만 더 나빠지고 싶어지진 않아서.
근데, 조만간 한번 전화를 드려 사달을 낼지도 모르겠다.
10년을 남편이 감당하던 거, 겨우 3달 만에 그러시는 건 너무하신 거 아니냐고.
아들 하나 있는 거 좀 불쌍히 여겨주시면 안 되냐고.
수술하고 3달도 안 돼서 일 시키고 싶으신 거냐고.
아무리 연금으로 생각해 낳아 키우셨어도 그러시면 안 된다고.
연금도 돈을 넣어야 나오는 거라고.
저렇게 말하는 순간, 아마 어쩌면 브런치에서 시댁 관련 글은 끝이 되겠지.
진짜 시댁이 없어져 버릴 테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