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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라니 Mar 13. 2024

당신이 감동받은 순간이 궁금해요

제4의 벽이 데려다준 감동

  며칠 전, 한밤중에 "나도 몰랐던 내 마음과 타인의 마음을 알게 해주는 것이 예술이 아닐까." 퍼뜩 떠올랐다. 제법 근사한 문장이다 싶어 휴대폰 메모장에 후다닥 적어 두었다. 나의 메모와 박신양이 감동에 대해 말한 부분에 접점이 생긴다. 


  박신양 '제4의 벽'을 읽으면서 '질문'에 이어 마음속에 들어온 단어가 있다. 박신양은 인생에서 매우 중요한 두 가지 결정을 하게 된 이유가 '감동'에 있다 했다. 러시아 유학 시절, 작은 미술관 앞에서 화가이자 철학자인 '니콜라이 레릭'의 그림 앞에서 우주에 오직 그림과 나만 존재하는 것 같은 엄청난 순간을 경험했다고 한다. 그가 말하는 감동이 나에게 '감동'을 불러왔다.  


  내가 노력하지 않았는데도 나의 감각에서 기대하던 어느 부분을 정확한 표적으로 삼은 것처럼 눈앞에 펼쳐지는 현실을 경험할 때 그것을 감동이라고 말한다. (317P)  


  모든 이야기는 감동을 의도한다. 감동은 나의 기대와 상상 저 너머에 있는, 실현 불가능할 것 같은 어떤 것이 갑자기 주어지거나 눈앞에 현실화됐을 때 느끼는 감정이다. (308p) 


  보통, 책을 읽거나 그림을 보거나 음악을 듣거나 춤이나 연극, 뮤지컬 공연을 볼 때, 예술가들이 혼신의 힘을 다해 내어 놓은 작품에서 마음이 움직이는 감동을 경험을 한다. 대자연 앞에 마주했을 때도 감동을 받는다. 사랑과 우정을 나눌 때도 감동이 온다. 감동은 좋은 것이나 마구마구 원한다고 오지는 않는다. 감동에도 제 마음이 있는 것 같다. 


  작가는 작품 안에 타자의 자리를 비워둔다. 타자를 위한 몫을 남겨두고 그것을 타자는 본능적으로 느낀다. 스스로 이기적인 존재임을 우리는 정말 잘 알지 않나. 그럼에도 타인을 위한 공간을 비워 둔다는 것. 나로만 꽉 채우지 않는 것이 감동을 주는 것 같다. 


  작품 속에서 잠시 머물다 갈 수 있는 빈 의자를 알아챈 순간. 우리는 작품으로 온전히 초대되고 작품과 동떨어져 있지 않다. 예상치 못한 만남 속에서 내가 있음을 느낀다. 나를 있게 해주는. 문을 활짝 열어주는. 배제 없는 수용의 순간. 나도 알지 못했던 결핍의 구멍을 채워주는 느낌. 감동의 물결이 오면 마음이 움직이고 출렁이다 리듬이 생긴다. 생생하게 거기 있는 경험을 하게 된다. 그 순간만큼은 방해 불가능하다.       


  이 소설은 마치 내 이야기 같아. 작가는 내 마음을 어떻게 알고 이런 글을 쓴 거지. 엉엉엉. 감동받아 울다가도 내 이야기와 내 마음과 미세하게 다른 부분을 깨닫게 된다. 한 사람 삶의 이야기는  유일무이한 것이므로. 받기만 하는 건 좀 아쉽다. 읽다 보면 쓰고 싶어지고 연주를 듣다 보면 악기를 배우고 싶어 진다. 갤러리에 걸린 그림을 보다 보면 무언가 그리고 싶다. 그렇게 우리가 만든 무엇으로 타인을 만나는 경험을 하고 싶다. 철철철 감동받는 이에서 줄줄줄 감동 주는 이도 되고 싶다.    

  

  대학교 3학년 마치고 속초에서 러시아 자루비노로 가는 여객선 승무원으로 일한 적이 있다. 한국인 여승무원 중에는 내가 제일 어렸다. 같은 방을 썼던 문 언니는 사회생활이 처음인 나를 여러모로 잘 챙겨주었다. 승선하고 2주 정도 정말 힘든 시간을 보냈다. 중국인 요리사가 만드는 기름진 음식을 먹을 수가 없었다. 후식으로 나오는 사과로 겨우 버티면서 일을 했다. 

  

  러시아에 정박하고 쉬고 있는데 문 언니가 등산을 제안했다. 기운도 없는데 등산이라니. 별로 내키지 않아서 바로 대답하지 못했다. "가파르지 않아서 힘들지 않아. 너한테 꼭 보여주고 싶어." 문 언니의 말에서 확고한 의지가 느껴졌고 나는 별 기대 없이 문 언니를 따라나섰다.   


  와...와...


  사실, 와...라고 감탄하지도 못했다. 20분 여 올랐을까. 문 언니는 다 왔다며 여기가 정상이라고 말했다. 그런 풍경은 처음 보았다. 내 눈앞에 펼쳐진 풍경이 믿기지 않아서 잠시 멍해졌다. 문 언니는 "좋지?" 나는 고개만 여러 번 끄덕였다. 


  광활한 러시아 바다가 호수처럼 고요하고 아담하게 담겨있었다. 시간이 정지된 느낌. 말로 표현하기 힘든 무언가. 내 마음을 처음으로 마주한 듯도 했다. 문 언니와 나는 조용히 앉아 바다를 보다가 내려왔다. 그날 이후, 문 언니와는 뭔가 더 긴밀해졌다. 그리고 나는 중국인 요리사가 만든 음식이 먹어졌다. 


  그날, 문 언니가 나에게 보여 준 것은 감동이었다. 박신양 '제4의 벽'을 통해 '감동' 받은 순간을 떠올려 보다가 불현듯 그날의 감동을 다시 만날 수 있었다. 언니가 그리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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