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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라니 Mar 15. 2024

화해를 원하는 기억

종이 동물원_켄 리우 


   '종이 동물원'의 작가 켄 리우는 이야기의 논리란 대개는 은유의 논리라고 말한다. 


  우리는 남에게 자기 이야기를 들려주려 애쓰며 평생을 보낸다. 그것은 기억의 본질이다. 그렇게 우리는 이 무감하고 우연적인 우주를 견디며 살아간다.(p8) 


  '종이 동물원'의 호랑이 '라오후'는 언어 자체의 은유다 

  

  "엄마가 태어난 쓰구루는 종이접기 공예로 유명한 고장이었고, 우리 어머니가 나한테 종이 동물을 만들어서 생명을 불어넣는 법을 가르쳐 주셨거든." (p33)

  

  중국인 엄마가 접어 준  종이호랑이 '라오후'가 살아 움직이고 소리 내는 것처럼, 글은 종이에 언어를 통해 생명을 불어넣는 일이다. 언어를 통해 인물과 이야기가 생생하게 살아날 때 그 인물과 이야기는 종이에만 머무르지 않는다. 이야기는 듣는 이에게 고유하고 다르게 되살아나고 기억된다. 이렇듯 우리는 서로 다른 경험을 만들고 기억을 가지며 살아간다.   

  

  화해를 원하는 기억이 있다

  

  '종이 동물원'에는 기억을 '생명'으로 환원하는 순환 고리가 있다. 우리는 누가 시키지 않아도 알아서 어떤 기억을 되살린다. 어떤 기억은 (있는 줄도 모르는 채) 영원히 묻혀 있고, 어떤 기억은 저절로 되살아난다. 애쓰지 않아도 되살아 나는 기억. 애를 써서라도 되살려야 하는 기억. 이쯤이면 기억을 일종의 생명체로 다뤄야만 할 것 같다. 어떤 이야기는 묻어두고 어떤 이야기는 끊임없이 반복적으로 발설한다. 그렇게 해야 할 어떤 당위라도 있듯이. 기억은 버려지기도 하고 계속해서 살아나가기도 한다. 때론 버렸던 기억이 되살아나기도 한다. 화해를 원하는 기억이 있다.   


  '종이 동물원'의 '나'는 유년의 자신과 편지를 통해 화해한다. 죽음을 앞둔 엄마는 자신이 아들에게 만들어 준 종이 동물들 안에 편지를 써서 남긴다. 


  "죽은 사람들의 넋이 가족을 찾아올 수 있게 허락받는 청명절에, 네가 혹시 내 생각을 떠올리면, 넌 내가 남긴 일부를 되살릴 수도 있을 거야." (30p)


  나는 훗날 엄마의 편지를 발견하고 '아이(愛)'라고 읽는 한자를 엄마 글씨와 포개지게 몇 번이고 적은 후, 포장지를 다시 접어 라오후를 만든다. 

  

  글쓰기 역시 내 안의 수많은 나와 화해하는 과정이 아닐까. '종이 동물원' 소설의 화자인 '나'가 부정했던 유년기 중국인 엄마와 라오후를 마지막에 되살려 낸다. 엄마와 함께 했던 유년의 복원이며 정체성의 회복이다. 오랫동안 잊고 지낸 라오후를 되살리며 나는 엄마와 자신과도 화해한다.     

  

  외부 환경이나 타자로 인해 우리는 너무 쉽게 엉망진창이 되고 부서진다. 자신의 세계를  지키려는 노력은 어떤 면에서 무용하게만 느껴진다.  모자람이 많은 나는 무가치하게 여겨질 때가 수두룩하다. 스스로가 자신을 홀대한 것인데, 마치 타인에게 상처받은 얼굴을 할 때도 있다. '너는 존재 자체로 충분해.'라는 말이 위로되지 않는 날, 나에게 효력을 발휘하는 유년의 나를 데려와 되살리고 싶다. 


  친구들은 블링블링 화려한 바비를 뽐냈다. 엄마와 함께 간 장난감 가게. 비싼 바비를 고를 수 없어서 미미를 집었다. 집으로 돌아가는 시장 골목이 어두컴컴했다. 친구들과 모여서 고무인형 놀이를 할 때면 재미가 없었다. 바비 틈에 초록색 아이쉐도우를 한 미미가 촌스럽고 초라해 보였다. 미미를 보면 괜히 심술이 나서 긴 생머리를 단발로 훅 잘랐다. 쥐 파먹은 것 같은 머리의 미미. 나는 오래 울었다. 그래도 미미를 버리지는 못 했다. 닳은 양말이나 손수건으로 미미의 옷을 만들어 주었다. 무척 엉성한 옷이었지만 마음에 들었다. 왜 그런지는 알지 못했다. 쥐 파먹은 머리를 한 미미도 조금은 용서가 되었다.   

  

  내가 직접 종이 인형을 그려서 놀기 시작하면서 바비 인형을 갖고 싶은 마음이 물러났다. 방학 숙제로 제출한 탐구생활을 돌려받으면, 거기에 내가 만든 종이 인형을 착착 넣었다. 두툼해진 탐생활은 종이 인형의 집이 되었다. 종이 인형을 가지고 주로 혼자 일인 다역을 하며 놀았다. 혼자 놀아도 심심하지 않았다. 내가 만든 종이인형들은 하나 같이 수다쟁이어서 끊임없이 재잘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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