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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라니 Mar 18. 2024

당신을 일으키는 음식은요

김혜자 배우 님이 끓여주신 김치죽

  차디차게 식은 방, 열이 끓고 몸이 덜덜 떨린다. 

 

  '누가 있었으면 좋겠다.'

  '엄마 보고 싶다.'


  방엔 나 혼자. 마음까지 덜덜 떨린다. 몸을 꼼짝할 수가 없다. 저녁 어스름. 아무것도 먹지 못했는데... 기운이 하나도 없다. 배까지 고프다. 

 

  엄마... 엄마... 엄마...

  

  엄마는 내가 부르면 기어이 온다.


  “엄마... 김... 치... 죽....”

  

  엄마가 뭉근하게 끓여 김이 나는 김치죽 한 그릇을 내온다. 김치와 밥을 넣고 푹푹 끓인 죽. 선홍빛 빛깔. 군침이 돈다. 호호 불어서 살살살 위에서부터 걷어 먹는다. 몇 숟가락만 천천히 뜨면 그다음부터는 푹푹 떠먹어도 된다. 


  김치 줄기 부분을 만나면 신난다. 부드러우면서 약간의 아삭함이 남아있다. 꼭꼭 씹으면 단맛이 난다. 한 그릇 뚝딱이다. 배도 든든하고 몸도 따뜻해진다. 밖에 나가 온 동네를 뛰어다니며 노는데 눈이 펑펑 내린다. 


  김치죽과 눈은 잘 어울린다. 겨울엔 김치죽만 한 게 없다. 어린 시절 겨울에 밖에서 놀다 들어오면 김치죽을 찾았다. 어린아이 입맛 치고는 좀 별난가? 김치죽이 좋았다. 정확히는 엄마가 끓여주는 김치죽.

 

  혼자 살 때, 무진장 아프면 꼭 김치죽을 끓였다. 아무 힘도 나지 않을 때 아주 아주 조금만 손가락을 까딱해서 냄비에 물을 올린다. 김치와 밥을 넣고 푹푹 끓인다. 손가락으로 숟가락을 겨우 쥐고 밥이 눌어붙지 않게 젓는다. 적당히 죽스럽게, 죽티가 나면 불을 끈다. 


  다른 반찬이 필요 없다. 젓가락도 필요 없다. 숟가락질이 젓가락질에 비해 쉽고 간단하니 얼마나 다행인가. 김치죽이 코 앞에 있으니 호호 불 힘이 생긴다. 한 입 가득 넣으려다 멈춘다. 엄마의 당부가 들린다. 

  

  “위에서부터 살살 걷어 먹어야 입을 안 데.” 

  살살 걷어 먹는데... 

  '음. 그 맛은 아니군.' 


  살짝 실망스럽지만 다행히 속은 든든. 몸도 따듯해진다. 무진장 아팠는데 김치죽 한 그릇을 먹고 나니 적당히 아프다. 엄마에게 전화를 걸 기운이 난다. 

   

  “엄마, 김치죽 끓였는데 엄마가 끓여준 옛날 그 맛이 안 나.”

  “다시다 넣었어?”

  “어? 아...”

   

  그랬다. 엄마의 김치죽 비법은... 정성 보다 다시다. 


  김혜자 배우님의 '다시다' 광고 속 목소리가 들린다.

   “그래, 이 맛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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