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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라니 Apr 04. 2024

당신의 영혼이 사물로 태어난다면...

켄 리우, <종이 동물원> 상태 변화

   켄 리우의 '상태 변화'를 읽고 난 뒤, 이 세상에 태어난 모든 존재는 죽음으로 향하는 여정에서 '상태 변화'를 겪다가 '죽음'으로서 상태 변화를 끝내겠구나 생각했다. 그러다 바로 질문이 이어졌다. 죽으면 정말 끝일까. 끝과 시작은 하나로 볼 수 있지 않나. 몸과 영혼은 입자와 파동으로 상태변화 해서 어딘가에 무언가에 깃들지 않을까. 그렇다면 죽음이 두렵기만 한 것은 아니게 된다. 


  영화 '오퍼스'에서 류이치 사카모토의 연주는 어둡고 적막한 공간, 둥근 빛을 발하는 스탠드 아래서 이루어진다. 연주가 흐를수록 스탠드의 불빛이 달빛으로 빛난다. 마치 달빛 아래에서 홀로 연주를 하고 홀로 듣는 듯 고요하다. 그의 연주를 듣는 동안 사물(스탠드)이 자연(보름달)으로 상태 변화하는 장면을 목격한다. 


  영화가 후반부로 접어들수록  그가 연주하는 곡들에서 절반은 삶, 절반은 죽음을 듣는다. 핏기 없는 손톱. 흰건반과 겹쳐 보인다. 살아있는 울림과 진동. 그는 건반을 누르지 않는 순간에도 음을 향한 집중을 놓치지 않는다. 


  무음도 소리구나. 


  있음과 없음의 경계가 사라진다. 피아노 건반이 저절로 움직여 연주하는 장면으로 '오퍼스'는 끝난다. 예견된 류이치 사카모토의 죽음. 그럼에도 살아있는 영혼이 느껴져서 뭉클했다. 영화를 보고 나오는데, 조문을 다녀온 듯했다. 끊임없이 자신의 음악을 실험하고, 소리를 채집하기 위해 그린란드로 향하는 등 온갖 모험을 감행했던 류이치. 그린란드에서 빙하가 녹는 소리를 채집하던 그를 듣고 싶다. 천만 다행이다. 그의 연주가 남아있어서. 


  '상태 변화'의 주인공 리나의 영혼은 각얼음이다. 리나는 퇴근 후  외출 대신 집에서 전기를 읽으며 시간을 보낸다. 남들을 통해 자기 삶을 잊으려고. 자신의 영혼인 각얼음이 부서질까 두려워하던 리나는 신입직원 지미를 만나, 책을 매개로 가까워지고 지미에게 자신이 좋아하는 시를 읊으며 상태 변화에 이른다. 언어로 만들어 낼 수 있는 가장 농밀하고 진실한 상태 변화는 시가 아닐까. 


  켄 리우의 '상태 변화'에서 자신의 영혼을 착각하는 일이 벌어지는 게 흥미로웠다. 나도 상태 변화의 영혼 착각 모티브를 사용해서 영혼에 관한 짧은 이야기를 쓰고 싶어진다. 나의 영혼을 무엇으로 정하면 좋을까. 


  그의 소설에는 공감되는 인물들이 꼭 들어 있다. 사물화된 영혼이 인물의 캐릭터와도 맞아 떨어지는 묘미가 있었다. 스스로의 노력으로 '상태 변화'를 만들기도 하지만, 타인과의 만남을 통해 우리는 스리슬쩍 '상태 변화'된다. 리나는 각얼음에서 물로 변한 것뿐 아니라 삶을 모름지기 실험하며 살았던 친구 '에이미'로도 상태 변화했다는 생각을 했다. 

   

  자연은 매 순간 변한다. 잠시만 딴 데 정신을 팔아도 돋아나고 피어나고 지는 순간을 놓치기 쉽다. 무심함에 눈치채지 못할 뿐 자연은 늘 '상태 변화' 중이다. 예술도 그렇다. 작가가 내어놓는 창작물들은 어쩌면 작가의 '상태 변화'라 볼 수 있다. 


  주의를 기울여 보니, 나의 하루 역시 다양한 '상태 변화'를 통해 이루어진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인간도 자연의 일부이므로 당연하지 않을까. 다만, 무감해져서 당연하게 받아들일 뿐이지. 상태 변화를 위해 실험만큼 자신에게 귀 기울이는 고요한 시간도 필요하다.     

  

  그간 무엇이 되었든 간에 끊임없이 '상태 변화'를 꿈꾸었다는 것을 알았다. 엘은 사랑은 고체 상태라기보다는 액체 상태에 가깝다고 말했다. 엘은 불처럼 활활 타오르다가도 고요한 바다처럼 잔잔해진다. 엘의 열정과 고요. 그게 부럽고 작아지려 할 때, 


  조카 : 고모는 왜 고라니예요?

  나 : (대답 대신 머리를 굴려) 너는 왜 방이준이야?

  조카 : 저는 원래 방이준이에요.


  조카, 스파이더맨 가면을 쓰고 거미줄을 쏘는 시늉을 한 뒤 나를 뚫어져라 바라본다. 

 

  조카 : 고모가 울어야 돼요.

  나 : 어떻게 울어야 하는데?"

  조카 : 자기대로 하는 거예요.  


조카의 말이 나를 '상태 변화' 시켜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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