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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라니 Mar 31. 2024

온 그녀들

메이스_mais

옥시시 옥시시 

  메이스는 나누기를 잘하고 나는 나누기를 어려워했다. 나누지 못해 쩔쩔 매고 있는 나를 본 메이스는 자기 노트를 내 곁으로 슬쩍 들이밀어두고 딴짓을 하면서 기다려 주었다. 노트까지 선뜻 나누어 주었던 메이스.  


  메이스는 초등학교 친구다. 이름에서 옥수수가 연상되어 별명이 '옥수수'였다. 나는 옥시시 옥시시 불렀다. '시시'라고 발음하면 괜시리 웃음이 새었다. 


  겨울방학의 끄트머리. 메이스네 집에서 밀린 방학숙제를 했다. 메이스는 나와 똑같이 일기는 잔뜩 밀려 있었어도 일기장에 맑음, 흐림, 눈... 날씨는 기록해 두었다.

  '아... 저런 방법이 있었군.' 

  지나간 날씨를 어림짐작으로 써야 하는 게 골이 아팠다. 날씨가 맞지 않아 일기를 몰아 썼다는 것을 선생님에게 들킬 것만 같았다. 메이스 덕분에 숙제가 한결 수월해졌다. 


   나는 오늘... 했다. 참 재미있었다.   


   가운데 한 문장을 더 쓰기 위해서 고민하고 있는데 메이스는 자신의 일기를 보여주었다. 나와 눈싸움하면서 놀았던 현장이 또박또박 펼쳐져 있었다. 내가 했던 말과 메이스가 했던 말은 큰 따옴표 안에 생동감 있게 들어있었다. 눈을 뭉치고 던지는 움직임까지 자세하게 묘사되어 있었다. 실제로 한 눈싸움보다 보다 메이스의 일기가 더 신나고 재미있었다. 메이스의 연필이 마법을 부린 것 같았다. 


  메이스 덕분에 나의 일기는 점차 달라졌다. 일기장에 한 번도 등장한 적 없던 큰따옴표가 나왔고, 일기 쓰는 시간이 즐거워졌다. 일기로 최우수상도 받았다. 메이스의 마법이었다. 

   

  겨울에 우리는 냇가에서 주로 불을 피우며 놀았다. 성냥을 꽁쳐 두었다가 나뭇가지들을 모아 꽁꽁 언 냇가 주변에서 불을 피웠다. 얼음 썰매를 타다가 춥고 배고파지면 고구마를 구워 먹기도 했다. 


  동네 아이들은 똥벌이라고 불리는 침이 없는 벌을 잡아 날개를 떼어 갖고 놀았다. 통통한 똥벌은 귀여웠다. 우리도 한 마리를 잡았다. 똥벌을 팔에 놓으면 꼬물꼬물 기어 다녔고 간질간질해서 기분이 좋았다. 똥벌에게 서로의 성을 더해 이름을 지었다. 최방혜미. 그 시절 우리가 아는 가장 예쁜 이름은 혜미였다. 최방혜미가 갑자기 죽자, 우리는 울었다. 학교 근처에 최방혜미를 묻어주고 기도했다. 한 번씩 들러 꽃을 놓아주고, 인사를 하곤 했다. 진지했다. 그 후로 우리는 똥벌을 잡지 않았다.        


   메이스는 갑자기 전학을 갔다. 떠나기 전, 커다란 미루나무에서 00년 후, 언제, 몇 시에 나무 아래서 만나자고 맹세도 했다. 우정을 꼭 지키자는 의식이었다. 나를 잊지 않고 메이스는 자주자주 편지를 보냈다. 내가 답장할 시간도 주지 않고 왜 편지를 안 쓰냐며 투덜대는 귀여운 편지가 도착하기도 했다. 우리는 꽤 오래오래 편지를 주고받았다. 메이스의 편지는 언제나 유머러스했고 유쾌했다. 글씨도 큼지막하니 시원시원했다. 


   메이스는 라디오에서 나오는 노래를 녹음한 테이프를 선물해 주기도 했다. 우리는 신해철의 '안녕'과 '슬픈 표정 하지 말아요'를 특히 좋아했다. '안녕'에는 영어 랩이 나오는데 들리는 대로 써서 외웠다. 다소 외계어 같지만 아직도 입에서 나온다. “매니가즈 올웨이 썸유라이 암쏘타워 텐데르구셈 딸링 미스 굿투미... 앤 아워즈 굿포유...”    


  메이스에게 받은 것이 참 많기도 많다. 꽤 시간이 흘러 메이스가 서태지 공연 티켓을 선물해 주었다. 덕분에 잠실 경기장에서 메이스와 그녀의 친구들과 함께 서태지 공연을 보았다. 시간이 아무리 흘러도 메이스는 변함없이 밝고 솔직하고 엉뚱했다. 좋아하는 마음을 소중하게 여기고 전하는데 여념이 없다. 지금도 그렇게 살고 있을 것이다. 


  우정을 맹세했던 미루나무는 잘 있을까. 맹세는 유년의 단어이고, 어른이 된 나는 맹세라는 단어를 쓰지 않는다. 메이스가 있어 나무에 맹세도 해보았고, 일기와 편지도 실컷 재미나게 써봤다. 내가 쓰는 글. 특히 일기와 편지는 메이스로부터 온 것이다.  


  옥시시야 지금도 너의 별명을 부르니 기분이 좋다.   


*mais 메이스 : 옥수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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