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덩이 버섯 / 질경이 / 섬서구메뚜기
7.18
101번 버스를 타고 왕지 1동 행정복지센터 정류장에서 내려 7분 정도 걸으면 조례호수도서관이 나온다. 매주 목요일 10시에서 12시까지 보태니컬아트 수업을 듣는다. 여름 땡볕에 7분 여 걷는 길이 자신 없어서 수업을 망설였었다. 다행히 아직까지는 장마기간이고, 오전 시간대라 힘들지는 않았다. 물론 50분 여 걸어서 집으로 돌아오는 길을 걷기에는 무리다.
버스에서 내려 길가에 피어있는 풀들을 본다. 오늘은 질경이를 그려볼 생각이다. 질경이는 질긴 생명력으로 붙여진 이름이라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검색해 보니, 질경이는 '길경이'라고 옛 기록에 나와 있는데 이는 '길'과 관련 있다고 한다. 배짱 좋게 길가 어디에서나 잘 자라 '배짱이'라고 부르기도 한단다. 곤충 베짱이가 떠올라 재미있다.
황경택 '자연의 시간'에 질경이에 관한 부분이 흥미로웠다. 질경이는 사람들 발에 밟히는 것을 오히려 생존 전략으로 삼는다 한다. 사람이 질경이 씨앗을 밟으면 신발에 씨앗이 붙어서 다른 곳에서 발아할 수 있는 기회가 된다. 사람의 걸음걸음이 질경이 씨앗 이동수단이 되는 셈.
알고 나니, 질경이가 눈에 쏙쏙 들어온다. 질경이 잎에는 유독 깨알만 한 구멍이 많다. 온전한 잎 한 장을 찾기 힘들 정도다. 누가 이렇게 쬐깐한 구멍을 뽕뽕뽕 뚫어 놓는 것일까. 질경이 맛을 제대로 만끽하는 곤충이 누굴까. 궁금해진다. 한 자리에서 와구와구 먹는 게 아니라 여기 쬐끔 저기 쬐끔씩 맛보는 것 같다.
질경이를 만지는데, 뭐가 툭. 움직인다. 처음엔 못 봤다. 삐죽 나온 더듬이 덕분에 알아볼 수 있었다. 얄쌍하게 생긴 곤충 한 마리. 질경이 잎 색과 거의 흡사한 '섬서구메뚜기'다. 여치. 아니군. 방아깨비. 아니군. 세 번 만에 '섬서구메뚜기'라는 것을 확인했다. 얼핏 보면 안 보인다. 숨은 그림 찾기 놀이다.
혹시... 너니? 질경이 구멍 뚫기 선수. (아닌 듯. 섬서구메뚜기는 갉아먹기 선수 같음) 뭔가, 기분이 들떴다. 혼자 보기 아까운 장면 같아서 사진으로 찍어 두었다. 횡단보도를 건넌다.
음하하. 그럼 그렇지. 샛노란 둥근 버섯이 풀숲 근처에 돋아있다. 하나인 줄 알았는데 둘이다. 좀 큰 버섯이 작은 버섯을 가리며 겹치듯 돋아 있다. 둥글고 환한 노란 달이 땅에서 떠오른 것 같다. 다소 음산한 기운이 뿜어내던 썩은 나무 둥치가 밝고 환해 보인다.
짙초록 시원시원하게 뻗은 맥문동 사이사이 연보랏빛 꽃대가 속속 보인다. 땅글땅글. 곧 꽃이 피면, 벌들이 붕붕 날아들겠다.
여름은 참고 견뎌야 하는 계절이었다. 몸은 축축 늘어지고, 땀에 절어 불쾌하고 찝찝한 계절. 이번 여름은 좀 다르다. 강아지 풀이 노릇 불긋 물들기 시작한다. 달랑달랑, 흔들리는 강아지 풀을 보면서 걸으면 괜히 발걸음이 가볍다.
질경이 꽃말은 발자취.
이번 여름 나는 어떤 발자취를 남기게 될까...
질경이 씨앗 한 개 정도는 신발 밑에 붙여 다른 곳으로 데려갈 수 있을까.
엄마에게 질경이 이야기를 꺼내니 "여린 순일 때 나물로 먹으면 쫀독쫀독하대."
찹쌀떡도 아닌데, 쫀독하다니. 갑자기, 그 맛이 너무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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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서구:벼를 베어 만든 짚단을 바람이 잘 통하라고 삼각형 모양으로 논둑이나 논에 세워 놓은 것을 '섬서구'라고 부름. 메뚜기 얼굴이 세모난 섬서구와 비슷해서 붙여진 이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