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나의 이방인에게_32

여름 감

by 고라니

여름 감




엄마는 아침이면 밤새 떨어진 감을 줍는다

지겨워


밤에 그린 감을 아침에 꺼낸다

맨날 감만 그려


여름이 지겹다는 것인지

내가 그린 감이 지겹다는 것인지

내가 지겹다는 것인지

자신이 지겹다는 것인지


엄마가 계속 지겨워하는지

알고 싶어서 감을 계속 그리기로 했다


엄마가 지겨워하지 않는 감

감탄할 감을 그리고 싶다


여름 내내 감을 그리고 또 그렸다

밀린 방학숙제가 필요했다


덜 더운 밤에는 여름에게 엽서를 썼다

엽서를 부치려 하면 여름은 한 발짝 비킨다


아직 좀 이른 감이 있다며

그 여름이 그 여름이 아니었다

많이 떫었다


수신인을 잃은 엽서는 낙과처럼

부득부득 밤을 퉁퉁 울린다


여름에게 부치지 못할 엽서를 쓰면서

여름과 멀어지는 감을 그린다

가을로 가지 못하는 여름을 떨궈낸다


그 여름이 다시 와 줄까


그린 감을 두고 보는데

글씨가 점점 둥글어지는 감이 있다

여름의 글씨체를 닮아버리는 동안


어쩔 수 없게 발그레한 감

다 익기도 전에 떨어지는 감들이

밤마다 여름에 여름을 입 맞춘다


배롱나무 빽빽하게 뒤덮였던 여름이

드문드문하다

짙은 여름이 옅어진 감이 있다


아침에도 엄마는 떨어진 감을 줍고

나는 밤에 그린 감을 꺼내 보여준다


익은 감이네

제법 다정한 감이 있다


내가 쓸 앞으로의 엽서가

한 잎 한 잎 돋아나고

잎들은 눈웃음을 보낸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올여름 어떻게 지내셨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