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바닥에 가을볕을
물속의 철학자들 /나가이 레이/ 김영현 옮김/ 다다서재
-일상에 흘러넘치는 철학에 대하여
도서관에 신청한 9월의 희망도서 '물속의 철학자들'과 '마음을 보내려는 마음'이 도착했다. 책을 받으면 뒤표지의 추천사를 먼저 챙겨 읽는다. 우연히도 두 권의 책 추천사에 뮤지션이자 작가인 '요조'의 이름이 있다. (카페 옆 자리에 앉은 분이 자꾸 츳츳. 소리를 습관적으로 내고 있어 집중력을 잃어가고 있다. 에어컨 바람도 슬슬 괴로워진다.)
뒤표지를 읽은 뒤에는 글쓴이가 책을 마무리하며 남긴 후기를 본다. 후기에는 어떤 뭉클함이 있다. '물속의 철학자들'의 '마치며' 일부를 옮겨본다.
그런데 나는 왜 쓰는 걸까 이따금 생각한다. 무서운 건지도 모르겠다. (...) 전철 안에서 건물 틈새로 불과 몇 초 동안 강한 햇빛이 들이치듯이 세계가 내게 모습을 드러냈던 그 순간을 잊어버리는 것이. 그런 것들을 글로 남기고 어딘가에 보존해서 생존시키려는 욕망이 내게는 분명히 있다. (...) 그리고 쇼분사 스크랩북에서 물속의 철학자들을 연재할 수 있게 해 준 안도 아키라 씨. 두 분 모두 물속 깊은 바닥의 바위틈에 숨어 웅크리고 있던 나를 발견해 주었습니다. 정말 감사드립니다. (...) 마지막으로 이 책을 펼쳐준 당신께도 정말로 감사드립니다. 질문을 통해서 당신에게 말을 걸기 위해 이 책을 썼습니다.
이 엉망진창인 세계에서 계속 생각하기 위해, 부디, 계속 생각하죠.
2021년 7월 / 나가이 레이 (268p)
사람들과 질문을 마주하고, 생각한다. 철학은 이처럼 항상 우리의 삶과 함께해 왔다. 누군가에게서 가져온 질문이 아니라 나 자신의 질문. 작고 절실한 부름. (6p)
'무언가'를 생각해내려 할 때, 사람은 애타는 고통에 얼굴을 찡그리지만, 그와 동시에 '무언가'가 소중하다고 느낀다. 한때 내 속에 있었고, 내 것이었던 '무언가'. 어쩌다 보니 어딘가로 날아가버렸지만, 나는 확실히 그 '무언가'를 소유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제 나는 '무언가'의 흔적조차 볼 수 없다.
그 대신 나는 그 '무언가'에 터무니없는 그리움을 느낀다. 한때 내가 소유했던 '무언가', 그리고 그 '무언가'를 잃어버린 깊은 슬픔.
탐구란, 생각해 내는 것과 비슷하다. (p20~21)
그 모습을 왠지 어머니가 보고 있었다.
그리운 젊은 시절의 어머니. 내가 유치원생 때 좋아했던 베이지 셔츠를 입고 웃고 있었다. 누구를 응원하는 걸까. 번뜩 정신을 차렸는데, 옆방에 어머니가 있는 것 같았다. 멍한 머리로 방문을 열었지만, 닦지 않은 식기가 그대로 있는 좁은 방이 보일 뿐이었다. 어머니는 없었다. 그리움만이 영혼으로 가라앉았다.
해가 많이 기울어서 방 안에는 푸르스름한 공기가 가득했다.
마치 물속 같아.
나는 말했다. 이렇게 아름다울 수가. (p23)
저자가 말하는 '무언가'에 깊은 공감이 일었다. 그게 무엇인지 명확하지는 않지만 저 부분을 읽는데 내 몸의 한가운데가 출렁였다. 나 역시 그 '무언가'를 향한 감정이 그리움. 슬픔과 닮아 있다고 느낀다.
엄마의 검어진 얼굴은 이마를 중심으로 허옇게 벗겨진다. 미인 소리를 듣고 살았던 엄마였는데 이제는 누가 봐도 병색이 짙다. 엄마의 반듯한 이마가 부러웠다. 넓지도 좁지도 않은 딱 적당한 크기의 이마는 엄마를 더욱 빛내주었다. 하지만 몇 년 전부터는 앞머리로 이마를 덮는다. 밖에 나갈 때는 모자를 쓴다. 엄마가 작은 손거울을 보며 앞머리로 이마를 가리는 모습을 볼 때 먹먹함이 몰려온다. 괜히 "엄마. 예뻐."라고 말해보지만 엄마는 거친 목소리로 "이쁘긴 뭐가 예뻐. 내가 사람이냐."라고 부르짖는다. 잘하는 짓인지는 모르겠지만 한 번씩 "엄마, 예뻐."라고 불쑥 말한다. 엄마는 입을 삐죽 내밀고 눈을 흘긴다.
나는 엄마가 참 고운 할머니가 될 거라고 상상했다. 뭘 입어도 태가 나고, 잘 어울렸던 엄마는 점점 말라간다. 내가 안쓰러운 마음에 등을 쓸어주면 엄마는 가만히 있는다. 슬프다.
저자는 '철학 대화' 활동을 하는 사람이다. 철학 대화는 철학적 주제에 대해 다른 사람들과 함께 곰곰이 생각하고 서로 의견을 나누는 것이다. 철학 대화는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누구나 할 수 있다.
그런 저자의 고백이 흥미롭다. "대화가 무서웠다. 사람 앞에서 이야기하는 것. 타인, 때로는 전혀 모르는 사람의 의견에 귀를 기울이는 것. 타인이 내게 질문하는 것. 타인과 함께 생각하는 것. 타인을 상처 입히지 않을까 걱정하면서 이야기하는 것. 타인이 나를 아프지 않을까 걱정하면서 이야기하는 것."
나를 말하기 좋아하는 사람이다. 말할 데가 없어서 글을 쓰는지도 모른다. 타인을 만나기 전에 무슨 이야기를 할지, 어떤 질문을 할지. 순서도를 그렸다. "너 기자니? 너를 만나면, 취조받는 거 같아. 널 만나면 피곤하다." 선배의 말이 나에게 큰 충격을 주었다. 선배와의 대화는 즐겁다고 생각했는데. 그 이후 선배를 만나면 질문을 억지로 삼켰다. 그러자 오히려 선배는 편안한 모습으로 자신의 이야기를 술술했다.
내가 하는 질문에 대해 곰곰이 생각했다. 질문에 대한 대답을 대부분 기억하지 못했다. 정말 궁금해서 질문하는 게 아니었다. 대화의 주도권을 쥐고 싶었던 걸까. 관계에서 내가 어떤 역할을 해야 한다고 믿었던 걸까. 나와 있는 시간이 무용하게 흘러가지 않기를. 알차기를. 그로 인해 나를 계속 만나고 싶어 지기를... 좋아하는 이들과 만남을 지속하고 싶은 욕망이 질문 안에 들어 있다는 생각에 이르게 되었다.
오랜 습관이 쉽게 고쳐지지는 않았지만, 이제는 질문을 품고 있다. 품고 있으면 적당한 때에 부화한다. 묻지 않아도 스르르 알게 된다. 관계의 지속에 대한 초조함도 많이 사라졌다. 물론, 나도 모르게 툭 튀어나오는 질문들은 어쩔 수 없다. 타인을 향한 질문을 거두고 먼저 나 스스로에 묻기 시작했다. 정작, 자신에게는 뭘 물어야 좋을지 몰라 어리둥절. 질문이 되기 전 말이 우물 우물댄다. 질문의 탄생을 기다려보자.
서둘러서 답을 내려고 하지 않고, 질문 자체에도 다시 질문을 붙여 되묻는다. 생각하면 할수록 점점 알 수 없는 것이 늘어난다. 그리고 알 수 없는 것에 다시 질문을 던진다.
영원한 줄 알았던 모래터의 끝이었다. 역시 바닥이 있었구나. 과연 지금 하는 생각 끝에 도달한 바닥이 있을까 불안할 때, 나는 모래터에서 느낀 뚜렷하고 단단한 감촉을 떠올린다. 그렇게 조금 용기를 북돋워본다. (264p)
나는 여전히 이 영문 모를 세계에서 자신을, 타인을, 어떻게 다루면 되는지 모르겠다. (253p)
생각하고, 다른 사람의 말을 듣고, 더 생각하면서 우리는 시간도 공간도 뛰어넘어 저 먼 곳으로 가려고 한다. (241p)
우리는 타인이 '왜 굳이'라고 생각할 만한 것을 소중히 여기기도 한다. 내게 '겨우 그 정도인 것'이 당신에게는 '이것만 있으면 되는 것'이기도 하다. 그것만으로도 살 수 있다. (178~179p)
손바닥으로 쬐는
초봄의
햇살만 있어도
사람은 살아갈 수 있다
소박한
미풍처럼
나는 살아가고 싶다
당신을 잃는 날이 온다고 해도
누구도 원망하지 않겠다
미풍이 되어 건너갈 수 있는 수목의 벼랑을
안녕
안녕 하고
몰래 울며 나아갈 뿐이다
-이토 게이이치의 '미풍'
저자의 친구 말에 의하면 '기운이 없을 땐 손바닥에 햇볕을 쬐면 좋다고 한다.' 엄마한테 이 말을 전달해 줘야겠다.
우리 손바닥에 가을볕을 쬐어 줍시다!
나가이 레이
1991년 도쿄에서 태어났다. 철학 연구와 함께 학교, 기업, 미술관, 지방자치단체, 종교 시설 등에서 폭넓게 철학 대화를 하고 있다. 다수의 매체에 철학 에세이를 연재하고 있으며 독립 미디어 <Choose Life Project>와 사카모토 류이치 등 문화예술인들이 함께하는 프로젝트 'D2021' 등에서도 활동하고 있다. <물속의 철학자들>은 첫 저서다. 시와 식물원과 공들인 산책을 좋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