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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이방인에게_42

구겨진 남자

by 고라니

구겨진 남자



남는 종이를 파는 가게가 있었다

남는 종이로 뭘 할 수 있냐고 물었더니

종이 접기를 할 수 있다고 했다


동물도 접고 꽃도 접고

구름까지 접을 수 있었다


남는 종이를 넘겨보다가

얇은 종이 한 장을 발견했다


접기 쉬워 보여도 시간이 걸려요

주인은 말했다


지갑을 열어 종이 두 장을 주고

남는 종이 한 장을 받았다


일정한 크기의 선을 만나면 안으로 접고

짧고, 길고

반복되는 선을 만나면 바깥으로 접었다

안으로 접을 땐 마음을 접었다가

바깥으로 접을 땐 접힌 마음을 다시 펼쳤다


종이 접기가 끝났을 때

며칠은 굶주린 듯 보이는

구겨진 남자가 완성되었다


쌀을 씻고 밥을 앉혔다

2인분 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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