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자기 인생을 살고 있나요?

by 고라니


몽실 언니 / 권정생 / 이철수 그림 / 창비



어릴 때 드라마로 보았던 기억이 희미하게 남아있다. 깡똥한 단발머리에 아기를 업고 다니던 씩씩한 몽실이. 짧은 단발에 짧은 앞머리를 한 여자 아이들에게 남자아이들은 놀리는 투로 "몽실이. 몽실이" 불러댔던 것도 같다. 맴도는 멜로디. "몽실이가 우네요. 어쩌면 좋아. (코러스) 어쩌면 좋아."


하염없이 흐르는 눈물을 훔쳐가며 읽은 최초의 책이다. 책 보면서 이렇게 많이 운 적이 있던가.몽실의 기구한 삶에 공감해서? 맞지만 그게 다는 아닌 것 같다. <몽실 언니>는 왜 나를 이렇게까지 울리는 걸까. 이유가 있겠지. 다만 아직 모를 뿐.


권정생 작가의 문체는 놀라웠다. 어떻게 이렇게 진심만 있을 수 있지. 담박하고 군더더기 없는 문장은 그의 삶 자체였다. 진심뿐인 마음. 보살펴주고, 깨우침을 주는 게 신의 역할이라면 권정생 작가는 신의 경지다. 마음과 영혼이 만져질 것 같은 문장은 감동을 준다.


왜. 이제야. 아니, 지금이라도 알게 돼서 다행이다. 작가가 몽실이를 통해 우리에게 말하고 싶은 이야기가 간절하게 와닿는다. 전쟁과 가난에도 꺾이지 않는 사랑이다. 몽실의 힘들고 고단한 삶의 여정 속에는 그들 방식대로 환한 빛을 주는 어른들이 있다. 어른들의 이야기를 귀담아듣고, 힘든 고비고비 넘으며 살아간다. 몽실은 그들에게서 배우며 질문하며 자란다.


배운다는 것은 어머니의 젖을 먹는 것과 같은 것이다. 어머니의 젖은 키를 크게 하고 몸을 살찌우는 것이고, 배우는 것은 머리가 깨고 생각을 자라게 한다. (73p)


결국 몽실은 스스로에게 질문하고 자신에게 배우며 보살피고 사랑을 나누는 인생을 살아간다. 편견 없이 사람을 대하는 몽실을 보면서 대단하다 느끼고 몹시 부끄러워져서 몽실을 본받자. 해 놓고 돌아서서는 '몽실은 왜 하필, 꼽추와 결혼한 거야.' 편협하고 못난 생각이 스쳤다.


어린이 도서연구회, 두 번째 도서 <몽실 언니>

300페이지에 달하는 묵직한 서사가 펼쳐진다. 일본이 전쟁으로 패망하고 해방이 되고 난 1947년 봄을 배경으로 이야기가 시작된다.


"몽실아, 에미를 원망해도 할 말이 없구나."

"엄마 원망 안 해. 사람은 각자가 자기의 인생이 있다고 했어."

몽실은 전에 노루실 창고에서 가르쳐 주던 최 선생 생각을 했다.


일곱 살 몽실은 엄마 밀양댁과 함께 새아버지 김 씨 집 댓골에서 살게 된다. 김 씨에게 밀쳐져 절름발이가 된 몽실. 김 씨와 엄마 사이에서 새로 태어난 아기 영득이가 생기자,김 씨 집에서 구박을 당한다.


고모가 찾아와 몽실의 친아빠 정 씨와 함께 살게 되었지만, 배곯고 외로운 생활은 결코 나아지지 않는다. 어느 날, 아버지의 새 아내 북촌댁이 살러 온다. 설 옷을 지어주고 실수를 감싸주는 북촌댁에게 몽실은 스며드는 엄마 정을 느낀다. 몽실은 북촌댁에게 왼쪽 다리 다친 이야기를 하고 북촌댁은 몽실의 상처를 쓰다듬어 준다. 북촌댁과 함께 야학에 나가며 인생에 대한 배움을 얻는다.


"어머니, 인생이란 게 뭐여요?"

몽실이 잠자리에 들기 전에 북촌댁을 보고 물었다.

"사람이 태어나서 살아가는 걸 인생이라 하나 보더라."

(...)

"어머니, 나는 앞으로 어떻게 되는 거여요?"

"그건 네가 괴롭더라도 참고 열심히 살면 알게 될 게요. 어떻게 사는가는 스스로 결정해야 하는 거야."


최 선생의 '인생의 길'이란 말을 들은 뒤, 몽실은 곰곰이 생각하는 아이가 되어 갔다. 자기의 일만이 아니라 어머니의 일도, 아버지의 일도, 그리고 이웃의 살아가는 모습도 눈여겨봤다.


"북촌댁은 왜 굳이 이런 곳에 시집을 왔을까? 그러고는 그 가난을 이렇게 견디고 있을까? 최 선생이 말한 인생의 길을 밀양댁은 잘 알아서 걸어간 것인가?"


안타깝게도 북촌댁은 전쟁이 일어난 직후, 아이를 가까스로 힘겹게 낳고 숨을 거둔다. 몽실은 난남이(북촌댁 아이)를 키우며 살던 중 인민군 청년과 죽은 북촌댁 같은 인민군 여자 최금순을 만나 짧은 정을 나눈다.


"나 시간 있으면 이담에 올게. 지금은 가봐야 한단다."

청년은 몽실의 가슴에 안긴 난남이의 조그만 손을 꼭 쥐었다가는 놓고 황급히 달려 나갔다. 몽실은 왠지 갑자기 외로움이 가슴 안으로 몰려왔다. 인민군 청년이 잠깐 동안 남기고 간 사람의 정이 몽실을 외롭게 한 것이다.

사람은 누구나 사랑을 느꼈을 때만이 외로움도 느끼는 것이다. 그것이 친구이든 부모님이든 형제이든 낯 모르는 사람이든, 사람끼리만이 통하는 따뜻한 정을 받았을 땐 더 큰 외로움을 갖게 되는 것이다. (p.112)


국군으로 간 아버지를 기다리는 몽실. 전쟁이 끝났지만 끝나지 않는 불행은 계속된다. 살길이 막막해진 몽실은 난남이를 업고 몽실은 고모네 집으로 향한다. 고모네 집은 불탔고 불구덩이 속에서 고모가 죽었다는 소식을 듣게 된다.


"엄마한테 가서 지내다 보면 아버지가 오실 거야. 사람 살 곳은 어디든지 있단다. 몽실은 동구 밖까지 전송해 주면서 일러 주던 아주머니의 말씀을 깊이 새겨들었다. 무엇보다 아버지가 돌아온다는 말은 커다란 힘이 되었다. (156p)


"아버지, 어디서 무얼 하셔요? 공산군을 쏘아 죽이러 갔는데 공산군은 이렇게 쳐들어와서 사람을 죽이고 있잖아요. 어머니, 난남이가 불쌍하지 않으셔요? 왜 죽었어요? 그리고 댓골 엄마, 엄마는 지금도 부자여요? 거긴 공산군이 안 왔어요? 지금 난 이렇게 엄마도 아버지도 없는 아기를 안고 혼자 무섭게 떨고 있어요. 먹을 것도 없어요. 난남이한테 죽을 쑤어 줄 쌀도 떨어졌어요. 엄마, 엄마...."


몽실은 고심 끝에 댓골 어머니에게로 간다. 그간 댓골 할머니는 돌아가시고 김 씨는 보국대로 떠난 상태. 마음 놓고 몽실은 엄마와 함께 산다. 1년 후 김 씨가 돌아오고 몽실은 난남이를 업고 집을 나온다.

친구 남주네 집으로 돌아오지만 남주에게서 화냥년의 딸이라는 소리를 들은 몽실은 남주네 집을 나가기로 한다. 결국 장골 할머니가 찾아와 식모살이를 하러 난남이를 데리고 최 씨네로 간다. 최 씨네 가족들은 몽실이와 난남이를 아껴준다.


부상당한 아버지가 살아 돌아오자 난남이와 몽실은 노루실로 돌아간다. 몽실은 난남이와 아버지와 먹고살기 위해 거지가 되기로 결심한다.


몽실은 꽃팔이 소녀한테 결코 지지 않으리라 생각했다. '그래, 진짜 거지가 되자. 편안히 앉아 얻어먹는 게 아니라 진짜 진짜 거지가 되자. 아버지가 몸이 건강해질 때까지, 내가 거지가 되자.' (...) 난남이에게 밥을 먹여야 한다는 오로지 그 생각뿐이었다.


구걸을 해다 난남이를 먹여 살리는 몽실이. 팍팍하고 고단한 삶을 살아가던 몽실에게 또 한 번의 슬픈 소식이 들려온다. 몽실은 댓골 엄마가 아프다는 소식을 듣고 한달음에 달려가지만 엄마는 이미 돌아가신 뒤였다.


"내가 나빴구나. 엄마를 죽으라고 했으니까...."

"아니어요. 엄마는 언제나 잘못했다고 그랬어요. 엄마는 괴로워서 아마 심장병에 걸렸을 거여요."

"아니야, 애비가 못나서 엄마를 딴 데로 가게 만든 거야."

"아버지, 아니어요. 아버지도 엄마도 모두 나쁘지 않아요. 나쁜 건 따로 있어요. 어디선가 누군가가 나쁘게 만들고 있어요. 죄 없는 사람들이 서로 죽이고 죽는 건 그 누구 때문이어요....."


몽실은 댓골 영득, 영순과 노루실을 오가며 지내던 중 김 씨에게 새 아내가 생겨 동생들과도 이별한다.

다리 다친 아버지를 낫게 하려고 아버지를 데리고 자선 병원에 찾아가는 몽실. 대기자가 많아, 치료 한 번 받지 못하고 열 엿새만에 아버지는 숨을 거둔다. 부산에서 만난 서금년 아줌마 집으로 난남이와 함께 떠나는 몽실이.


"그러지 말아요. 누구라도, 배고프면 화냥년도 되고, 양공주도 되는 거여요." (p.191)

몽실은 죽은 검둥이 아기를 안고 말한다.

그 검둥이 아기가 가엾었기 때문이다. 죄 없이 버림받고 죽을 바에야 태어나지 않았으면 좋았을 것이다. 이 세상엔 차라리 태어나지 말았으면 좋았을 목숨이 얼마나 많은가? 난남이는 어떨까? 태어난 쪽이 다행일까? 아니면 난남이도 아예 태어나지 않았으면 좋았을지도 모른다.

몽실의 머릿속엔 그 검둥이 아기의 모습이 영원히 지워지지 않을 것 같았다.


노루실을 그리워하던 몽실은 고향에 다녀가지만 영득과 영순은 새어머니와 서울로 떠났음을 알게 된다. 와중에 난남은 부잣집 양딸로 살러간다.


이젠 모두가 이렇게 뿔뿔이 헤어져 버린 것이다. 몽실이 그토록 악착스레 버티어 온 절름발이 병신 다리가 이렇게 허무하게 무너져 내린 것이 서러웠다.

"어머니이!"

몽실은 어머니를 불렀다. 두 사람의 어머니가 나타났다.

'그래, 난 앞으로도 이 절름발이 다리로 버틸 거야. 영득이랑 영순이랑 그리고 난남이를 보살펴야 해. 영득이, 영순이를 찾아갈 거야. 꼭 찾아갈 거야.'


30년의 세월이 흐르고 기덕, 기복의 엄마, 구두장이 꼽추의 아내가 된 몽실. 영순의 편지를 받고 영득과 영순의 과거 이야기를 알게 된다. 결핵 병원으로 난남이를 만나러 가는 몽실. 몽실이가 집으로 돌아가는 뒷모습을 지켜보며 기도하듯 "언니"를 부르는 난남이. 몽실의 이야기는 끝난다.

"언니"

"응"

"엄마가 날 낳아준 것 고마워."

"뭘 새삼스럽게 그런 말 하니!"

"언니가 참 좋거든."


배곯는 난남이를 불쌍하게 여긴 몽실은 난남이가 태어나지 않았으면 좋았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한 적도 있었다. 그랬기 때문에 마지막 장면 난남의 말이 더욱 울림이 있었다. 고단한 삶 속에서도 몽실언니가 주는 사랑을 난남이는 오롯이 느끼며 살았던 것이다.


몽실의 결혼은 의외였다. 끝까지 몽실이 결혼하지 않을 거라고 예상했다.


"몽실아, 여자는 누구나 결혼을 해야 하는 거야. 남편에게 의지하지 않고 혼자 살 수 없단다."

"아니어요. 혼자 살 수 있어요."

얘기는 이것으로 끝났지만 몽실은 줄곧 혼자서 생각에 잠겼다. 댓골 어머니 생각, 돌아가신 새어머니 생각 그리고 아까 시장에서 보았던 미군 병사와 여자를 생각했다. (...) 왜 그래야만 되는 걸까? 왜 여자는 남자한테 매달려 살아야 하는 걸까. (186p)


몽실은 남자한테 매달려 사는 삶이 아닌, 돌보는 삶을 선택했다. 삶의 거친 풍파에도 꿋꿋하게 버티며 살아온 몽실. 몽실이가 사는 동안 배우며 지켜온 것은 보살핌과 사랑이었다.


무엇 때문에 전쟁은 일으켰고, 무엇 때문에 쉬게 되었는지, 후방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바보처럼 지켜보고만 있었다. 집을 잃고, 가족을 잃고, 병신이 되고 그리고 고향을 잃었다. 총알이 날아오는 전쟁은 그쳤지만, 사람들은 살아가기 위해 또 다른 전쟁을 해야만 했다.


<초판, 머리말 중에서>

몽실은 아주 조그만 불행도, 그 뒤에 아주 큰 원인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몽실은 학교에 가서 교육을 받지 못했지만, 자라나면서 몸소 겪기도 하고 이웃 어른들에게 배우면서 참과 거짓을 깨닫게 됩니다. 아주 조그마한 이야기이지만, 우리 모두 몽실 언니한테서 그 조그마한 것이라도 배웠으면 합니다.

몽실 언니는 제가 너무도 어렵게 쓴 작품입니다. 그러나 이만큼이라도 쓴 것을 기쁘게 생각하면서, 끝까지 읽어 주세요.


<개정 2판 머리말 중에서>

"이 세상의 모든 폭력이 사라지지 않는 한 우리는 누구나 불행한 인생을 살아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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