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이 어둑해지고 8시 30분 넘어 겨우 겨우 겨우 운동장에 나갔다. 몸이 무거웠다. 두 바퀴를 걷다가 몸이 더 무거워서 차라리 뛰어보기로 했다.
30분을 쉬지 않고 뛸 수 있을까. 그동안은 10분 정도 뛰고 걷다가 다시 뛰는 방식으로 달렸다. 어제는 어쩐 일인지내리 달리고 싶은 마음이 일었다. 달리면 바람이 오니까. 바람이 좋아서 그 맛을 좀 더 오래 만끽하고 싶었다. 공기는 가을 같다. 한 번 시도해 보기로 했다. 힘들면, 멈추면 되니까.
스스로 몸을 들었다 내려놓는 반복이 즐겁다. 걷고 있을 때는 뛰는 걸 상상할 수 없다. 앉아 있을 때는 걷는 걸 상상할 수 없다. 앉아 있으면 마음이 불편해져서 동동댄다. 그래서 6월까지는 꽤 자주 걸었다. 사실은 달리고 싶었다.
매일 나가지는 못한다. 하지만, 방에서 우울하게 보내는 시간 중에도 믿음 하나는 생겼다. 시간이 좀 걸려도 결국, 나가게 되리라는 것. 전엔 방에서 옴짝달싹 못하고 죽겠구나 하는 생각이 지배적이었다. 지금은 우울한 나를 기다려준다.
다행히도 봄에 걸어 다닌 시간이 쌓여서인지 우울이 다리까지 잠식되지는 않는다. 생각과 마음은 꼼짝도 안 하는데 다리는 계속 움직이고 싶어 한다는 걸 느낄 수 있다.
그 감각이 나에게 무척 소중하다. 의지와 생각으로 되지 않는 일이 감각을 살리면, 감각이 되면, 밖으로 나갈 수 있다는 걸 스스로 배웠다. 이런 복잡한 과정 없이 자동으로 달리는 사람도 있겠지. 하지만 나는 아직 그렇지는 못한다. 겨우 겨우 몸과 마음을 추슬러 살아가고 있다.
달리기는 유년에 내가 잘하던 일 중 하나다. 단거리, 장거리 다 잘 뛰었다. 어른이 되어서도 잃고 싶지 않은 모습이다. 지켜가고 싶은 나의 모습.
오늘 자동차 정비소를 지나다가 '범퍼 완전 복원'이라는 글귀를 보았다. 정말 완전한 복원이 있을까. 결코 과거에 달리던 속도로 돌아갈 수 없다. 일단 몸무게부터가 10킬로 가까이 불었다. 30년이나 흘렀다. 그때의 나로 복원할 수는 없지만 계속 달릴 수는 있다.
바닥을 탱탱 박차면서 튀어 오르는 탄력의 힘으로 힘껏 달리는 젊은이들이 옆을 지나간다. 나는 슬슬슬 달린다. 몸을 겨우 들어 올리고 바닥과 거의 일체 되어 달리는 느낌이다. 바닥을 질질질 끌면서 힘겹게 달린다. 그렇게 천천히 달려도 바람이 얼굴을 향해 달려온다.
며칠 전 버스에서 내리다가 빗길에 주욱 미끄러져 넘어지기 일보 직전이었는데, 극적으로 다리가 내 몸을 딱 버텨주었다. 바지는 젖었지만 으스대며 웃었다. 엉덩방아를 찧지 않았다. 달리기 효과임을 바로 알았다. 앞으로도 슬슬슬, 오래오래 달리기. 어제 나는 30분을 쉬지 않고 달렸다. 못 할 줄 알았는데 되었다. 질질질 말고, 탱탱 박차면서 달리는 것도 될까. (욕심이란…)
배가 출렁이고, 옆구리 살이 춤추고, 상체가 들썩댄다. 함께 움직인다. 벽면에 보이는 그림자. 달리는 사람이다. 집에 돌아갈 때 족구장을 지난다. 그곳은 항상 늦은 시간까지 파이팅이 넘친다. 때론 시끄럽고 때론 부럽다. 발로 공을 주고 받는 게 내게는 묘기처럼 보인다. 족구도 해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