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고기 두 마리
피아노 건반 위를 부드럽게 누비는 손에서 시선을 뗄 수가 없었다. 그의 두 손은 일렁이는 파도를 불러왔다. 바닷속 물고기 두 마리는 적당한 거리를 두고 조화롭고 부드럽게 물살을 가르며 유영했다. 우아한 생명체가 일으키는 잔잔한 물결과 기척은 나를 이 순간에 온전히 있게 했다.
그가 읊조리는 노랫말대로 나는 나무였다가, 깊은 침묵이었다가, 골목이었다가, 새벽이 되기도 했다. 풍경을 떠올린 것이 아니라 그 자체였다. 지독하게 지긋했던 내 안에서 이렇게 쉽게 빠져나올 줄이야. 믿기지 않았다. 아무리 노력해도 되지 않았던 일이 그의 손끝과 말 한마디로 가능해졌다.
소리와 움직임을 따라 그곳과 하나가 되었다. 소리에 반응하면서 몸의 감각이 깨어남을 선명히 느꼈다. 공연장에서 몸과 마음은 명상할 때와 비슷한 상태가 되었다. 싸늘한 바깥에서 헤매다가 온기 도는 방 안으로 한 발 들여놓은 느낌. 욕조 안에 몸을 담글 때처럼 따뜻한 호사를 누리는 듯도 했다.
은은한 귤빛 조명이 비추는 아담한 공연장 안. 사람들과 촘촘하게 붙어 있었지만 답답하지 않았다. 내면 속 공간이 무한으로 확장되는 듯했다. 마지막 음의 미세한 진동을 느끼며 눈을 떴다. 내면의 장막이 걷히고 그가 보였다.
공연이 끝나자 그는 두 손을 합장한 뒤 고개를 숙여 관객들에게 인사를 했다. 바닷속을 헤엄치던 물고기는 손으로 돌아왔다. 하나의 생명 안에 다른 생명이 깃들어있다. 내 안에도 숨 쉬고 있는 다른 무엇을 발견할 수 있을까.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두 손을 모아봤다.
맞닿은 두 손. 기도. 무언가 소망해야 할 것 같았다. 아직은 정체불명이지만, 두 손으로 다른 무엇을 할 수도 있지 않을까. 지금까지 없던 옅은 희망이 다가와있었다. 영하로 기온이 떨어져 있었지만, 나의 내부는 어떤 생기로 활기찼다. 무표정한 얼굴 대신, 잔잔한 미소가 흘러나왔다. 아주 오랜만에 무언가 쓰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