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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라니 Mar 06. 2024

당신을 온전히 받아주는 장소가 있나요

운동장짱! 

  운동장이 보이자마자 반가워. 속으로 인사했다. 다정한 눈길로 운동장을 크게 한 바퀴 훑었다. 운동장에 오면 순식간에 어딘가에게 반가운 마음이 생겨나곤 한다. 구겨진 몸을 세우고, 웅크린 마음을 펼치면서 슬렁슬렁 운동장을 돌다 보면 편안해진다. 속으로 너스레도 떤다. 운동장을 걸으니, 동네 사는 친구를 만난 것 같군. 별 말 하지 않아도 다 아는 친구. 

  

  운동장, 글자마다 이응이 하나씩. 이응이 들어간 이름을 좋아해. 내 이름에는 이응이 귀해서일까. 이름에 이응이 세 개 들어있는 게 좋아. 둥글게 둥글게. 운동장도 둥근 이름을 가졌네. 모습처럼. 네모난 운동장은 못 본 것 같아. 네모난 운동장의 이름은 문돔잠이 되어야지 않을까. 운동장의 '운'은 운동화 끈을 단단히 조인 사람의 모습이 그려져. 


  이런 시답잖은 생각을 하면서 운동장을 돌다 보면, 꽤 재미가 있다. 집 안 보다는 밖에 나와 나와 수다를 떨 때, 더 흥이 난다. 이런 게 좋아져서 전처럼 집에만 있지 않으려고 한다. 눕기 좋아하는 몸을 자꾸 밖으로 꼬여낸다. 


  나를 밖으로 끄집어내는데 도움이 되는 몇몇 장소가 있다. 만사 귀찮아. 누울래. 싶은 생각이 들면, "도서관에서 너를 기다리고 있는 책이 있을지도 몰라", "카페에서 드립커피와 호두파이를 먹으면 기분이 좋아질걸. 그게 아니라면 향긋한 밀크티와 촉촉한 크루아상은 어때?", "어린 왕자를 너무 오래 내버려 둔 것 같은데... 모르는 영단어에 색연필로 표시를 하자. 초록색 색연필이 좋겠는 걸." 도서관, 카페 그리고 가방 없이 홀가분하게 걷다 뛰다 올 수 있는 운동장.   


  오전인데도 일곱 명이 자신만의 속도로 달리고 있다. 말 한마디 나누지 않는 모르는 사람들인데도 단지 운동장에 함께 있다는 것만으로도 친근하게 여겨진다. 열심히 달리고 있는 사람들이 휙 지나가면 늘 멋있다. 나도 멋있으려고 한 바퀴 정도는 달린다. 반 바퀴씩 서서히 늘려 볼 생각이다. 무리해서 에너지를 쓰지는 않는다. 이렇게 걷고 있는 것만으로도 만족이다. 


  운동장에 가면 자연스레 하늘을 보며 걷게 된다. 구름의 변화를 목격한다. 구름은 봐도 봐도 질리지 않을까. 늘 변하기 때문일까. 한 번도 똑같은 구름은 없기 때문일까. 운동장 트랙에 새똥 흔적이 남아 있다. 흰색 똥이 어찌나 선명한지 물감을 흩뿌려 놓은 것 같다. 마치 잭슨 폴록의 그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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