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고라니 Mar 05. 2024

당신을 움직이게 하는 힘은 무엇인가요

일렁일렁

  큰 굴다리, 작은 굴다리가 있는 정말이지 한적한 마을이었는데 골프장이 생기더니 스타벅스가 생기고 테니스 연습장이 생기더니 꽤 널찍한 베이커리 카페가 생겼다. 마을을 통과하는 차들이 많아졌다. 

 

  오늘 아침은 미역국을 끓이고, 어묵 김치볶음을 했다. 7시 30분에 아침을 먹고 엄마 옆에 붙어서 '인간극장'을 봤다. 102세 할머니를 돌보는 딸의 이야기가 나온다. 나는 엄마에게 묻는다.   


  “어제 잘 잤어?” 

  “눈 떠보니 12시더라.” 

  “귀는 어때?”

  “좀 나은 거 같아.”


  엄마는 조심스레 머리를 걷어 보인다. 일주일 전쯤 엄마 머리를 내가 직접 잘라주었다. 머리를 손으로 잡아당겨 싹뚝 자르는 바람에 겉머리가 달랑 올라갔다. 의도치 않게 보브 컷 비슷한 모양이 되었다. 자르기 전보다는 세련미가 풍긴다. 엄마 귀에 연고를 발라주었다.  

  “손은 어때?”

  엄마는 검지를 내보인다. 검지는 아무는데 시간이 좀 더 필요할 것 같다. 희망을 품는다. 굳어가고 곪아있는 엄마의 손가락을 볼 때마다 마음이 좋지 않다. 전엔 일부러 엄마를 보지 않았는데, 요즘은 매일 엄마 귀와 손의 안부를 묻는 일로 하루를 시작한다. 그렇게 하는 게 마음이 덜 불편하다. 엄마와 마주 본다. 


  동네 스타벅스가 7시에 오픈한다는 걸 새삼 알았다. 아침을 먹은 후, 8시부터 11시 까지는 마음이 잘 잡히지 않는다. 점심 준비 전까지 카페에 있다 오면 좋을 것 같았다. 김선오 시인의 '시차 노트'를 챙겼다. 흰 빛에서 서서히 연보라에 이르는 표지. 아름다운 책이다. 그림 한 편을 보는 듯하다. 희망도서를 신청해서 빌린 책은 더 애착이 간다. 


  김선오 시인의 시집 '세트장'은 내가 병원에 입원했을 때 곁에 있어준 책이다. '세트장'이 없었다면 병원에서 보냈던 시간이 더욱 불안했을 것이다. 시는 도움을 준다. 이번에 (괜히 친한 척) 선오 시인의 산문집이 나왔길래 얼른 희망도서로 신청했다.   


 이미 늦은 기차가 또다시 늦는다는 건 대체 무슨 뜻일까...... 대다수의 문장들은 나를 초과하며 쓰이고 나는 때때로 나 자신에게 방금 쓴 문장에 대한 해명을 요구해야 한다. 모든 문장들이 언제나 해명되지는 않는다. 쓴 사람에게조차 해명되지 않는 문장들이 서로를 지탱하며 성립 가능해질 때, 나는 시를 썼다고 느낀다. 

-김선오, 시차노트, 문학동네, p117 中에서 


돌은 살아 있나. 죽어 있다기에 돌 속에는 너무 많은 기억이 있다. 삶과 죽음이 모두 함유되어 있다. 다음 세기의 돌을 떠올릴 때 그 돌이 이번 세기의 돌과 똑같이 생겼다는 사실은 나를 안심시킨다.             

-김선오, 시차노트, 문학동네, p89 中에서     

   

  무엇이 나를 움직이게 하는가. 질문에 대해 생각해 보고 있다. 나는 책이 가방 안에 있으면 움직여진다. 지금 스타벅스에 있다. 손님들이 꽤 있는데 다들 조용조용 대화를 나눈다. 돌들이 움직이고 대화를 한다고 상상한다.


  나와 조금 떨어진 옆자리에서 영상을 보며 수어를 열심히 하는 돌도 있다. 손짓과 표정이 일렁인다. 정면을 바라보고 있지만 돌의 춤이 전달된다. 여기 앉다니, 운이 좋다. 여기 모인 모든 돌 가운데 옅은 흰 분홍 구름 빛 매화를 한 번씩 보며 책을 읽는 돌도 있다.  


  노트북을 열고 글을 쓰기 전까지 어디로 갈지 알 수 없다. 글을 쓰면서 생각을 풀어놓고, 정리할 시간이 필요해졌다. 필요에 응하며 움직이고 있다. 스스로에게 필요한 존재가 되는 느낌을 글쓰기를 통해 받는다. 그동안은 타인에게 필요한 존재가 되고 싶어서  무리할 때도 있었다. 정작 나에게는  소홀했다. 자책과 비관으로 절여진 나에게 다른 카드를 꺼내 보일 수 있는 방편이 글쓰기가 된다. 자책과 비관하지 않으려고 움직이는 것 같다. 아니 자책과 비관을 안고 움직인다. 쓰면 내가 살아나니까. 생생해지니까.    

  

   쓴다고 책이 되는 것도, 돈을 벌 수 있는 것도 아닌데, 시간을 글쓰기에 쓰고 있다. 잘하는 짓인지 못하는 짓인지 모르는 채. 오래 괴롭히고 있는 것도 같고, 계속 사랑하는 것 같기도 하다.  글을 쓰고 난 뒤, 밥을 먹으면 밥맛이 더 좋다. 글과 밥이 함께 나를 지탱해 준다.  




 

  

   



작가의 이전글 제4의 벽_박신양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