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의 사랑에 기대어 02_
아이가 같은 책만 읽을 때
카톡, 카톡!
"엄마, 나 친구들이랑 축구하고 올게."
이 메세지는 매우 익숙하다. 답은 필요치 않다는 것도 정해져있다. 그가 하겠다면 하는 거다(ㅋㅋㅋ)
'안돼. 빨리 와서 숙제해!' 이런 대답을 무섭게 쏟아내어 봤자,
수학 문제집 위로 축구장을 그리고 있을 것이 뻔한 열정.
비가 오면 더욱 시원하게 할 수 있고,
폭염이 오면 얼음낀 포카리스웨트 먹는 맛으로 할 수 있는 것.
12살의 축구란 그런 법이다.
그렇게 한바탕 땀을 흘리고 샤워를 마치고 나면 아이스크림 꺼내 들고는 에어컨 아래 쇼파에 앉아 손흥민, 음바페 같은 선수들의 만화책을 보겠지. 보고 또 봐서 책등이 갈라지려 할 때까지 보는 축구 책. "또 봐도 재미있어?"라는 말에 대답은 당연히 "응, 재미있어"가 될 것이란 걸 육아 12년차인 나는 이미 직감할 수 있다.
아이들과 함께하다보면 엄마만이 느낄 수 있는 신호들이 있기 마련이다. 특별히 더욱 반응을 보이는 모습, 유독 말이 많아지는 주제, 오래도록 들여다 보는 눈빛 같은 것. 작지만 분명히 다른 이런 행동들이 엄마 눈에는 잘 보이곤 한다.
세상에서 유일하게 그리고 오직, 엄마만이 알아봐 줄 수 있는 것들일지도.
아이들의 세계는 어른보다 좁지만
어쩌면 그래서 더욱 강렬한 것 같다.
특히 그 세계 안에서 무언가와 사랑에 빠졌을 땐
마치 저 자신과 사랑하는 '그것'만이 존재하는 듯 순수한 열정으로 강렬하게 탐닉한다.
아이들이 마음에 품는 이 모양들은 어른들의 열정과는 조금 다르다. 목적도 목표도 없이 '오로지 순수한 대상' 바로 그것만이 존재할 때가 많고 그래서 손해도 이익도 따지지 않은 채 오직 사랑과 열정만이 넘치곤 하니까.
12살 유현은 이 여름 내내 온통 축구에 빠져지내지만, 그의 첫번째 사랑은 강아지였다. 10개월 무렵이었는데 언어 표현은 서툴렀지만 강아지 그림만보면 꼭 손짓을 하면서 '멍멍'이란 옹알이로 자신의 사랑을 표현하곤 했다.
오동통한 볼살, 말랑말랑한 허벅지, 토실토실한 엉덩이가 내 품에 푹 안기는 게 좋아서 그림책을 자주 읽어주던 시절이었다. 말문이 빨리 트이라거나 한글 깨치기 같은 것은 생각할 겨를도 없던 돌쟁이 시절. 책을 펼치면 하얀 멍멍이를 통통한 손가락으로 가르키며 '멍멍' 알은체를 하고, 좋아하는 멍멍이가 주인공이었던 그림책은 입으로 가져가 찹찹 빨아대거나 걸음마 연습을 할 때도 손에 꼭 쥐고 다니던 작지만 순수한 열정이 가득하던 시절!
피었다 지는 게 사랑의 속성이듯 아이들 마음 안의 사랑도 타오르다 꺼지곤 했고 그럴때면 한뼘씩 한뼘씩 자라곤 했다. 공룡, 자동차, 포켓몬...! 새로운 대상이 등장할 때마다 좋아하는 책이 달라지고, 책 안에 좋아하는 그림이, 눈길을 오래 끄는 그 그림과 똑 닮은 장난감이 생기기도 하면서.
어쩌면 아이들은 이렇게 무언가와 사랑에 빠지면서, 그리고 그 대상이 담긴 한 권의 책과 내내 함께 하면서 자신의 마음을 표현하는 것 아닐까 생각하곤 한다. 아직 마음을 들여다 보는 데에 서투니까. 들여다 보더라도 내 마음이 어떤 모양인지, 어떤 색깔인지 잘 알아차릴 수가 없을테니까. 그저 이끌리는 대로 "엄마 난, 이 책이 좋아. 재미있어"라고 온몸으로 말하는 것 아닐까?
이 생각의 끝에는 안도가 닿는다.
‘왜 이 한 권만 읽지?’라는 불안이 피워올리는 물음표가 안도의 느낌표에 닿는 순간을 바라본다.
'지겹지 않나?', '왜 이 책만 읽지?'
'다른 것도 좀 읽으면 좋겠다. 공부에 도움 되는 책도 좀 읽고' 같은 바람들의 출발점은 어른들의 세계일테다.
작고 순수한 열정을 품은 아이들은 우리에게
이런 말을 하고 싶을지도 모른다.
'어른들의 눈에는 지루한 반복처럼 보이지만
아이들의 머릿속에선 매일 다른 상상이 펼쳐지고
마음 속에선 매일 다른 감상이 쌓이고 있어요.
흥미롭게 몰입할 수 있는 책이 나의 곁에 있다는 걸
기뻐해 주길 바라요. 나는 오늘도 이렇게 내가 좋아하는 것에 푹 빠져서 성장의 씨앗을 품어내고 있어요. 나의 세계와 내면의 그릇을 키워나가는 중이에요!'
서로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관심을 기울이는 마음이 있다면 그것은 사랑일 것이다. 아이들이 유독 좋아하는 책이 있다면, 그 책의 앎과 세계가 확장해 나갈 수 있도록 도와주고 싶다. 어느 순간 같은 맥락의 또 다른 책을 찾을 때 '엄마가, 알아 봤는데 이런게 있더라구' 하면서 슬쩍 건네줄 수 있는 적당한 무게와 거리를 가늠하고 싶다.
삶의 순간순간 책이 함께하면서 더욱 풍요로워지거나 깊은 위로가 되던 순간이 나에겐 소중하듯 아이들에게도 그런 경험이 마음 곁에 든든하게 머물면 좋겠다. 아마도 이것은 오래 머물 사랑일 것이다.
글쓰는 엄마, 글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