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의 사랑에 기대어 05__
방학, 그 잔인한 이름 속 책이 머무는 자리
여자에서 엄마로 변모해서 마주하게 되는 것들은 대게 어렵다. 요리나 빨래라는 간단한 단어들로 퉁치기엔 아쉬운 살림이나, ‘시‘ 한글자만 덧붙이기에도 아쉬운 새로운 가족 관계. 그뿐인가 아이들을 중심으로 만나게 되는 엄마들 모임까지도. 사실 그중에서도 가장 고난의도는 육아 그 자체!
육아가 힘들지 않은 계절있겠냐만 여름 방학은 유독 힘들다. 삼시세끼 밥은 물론이고 밥과 밥사이 간식, 간식 사이 아이들의 투닥거림의 반복. 치워도 치워도 늘어지는 장난감과 어디서 굴러온건지 따지고 싶은 작은 공들이 발에 밟히는 순간에는 샤우팅이 터지고야 만다.
이 사태는 모두 여름방학 때문이다! 고요히 혼자 보낼 수 있는 작은 시간은 고사하고 편안한 밥 한 그릇마저 어려운 여름 방학. 그 잔인한 이름!
여름 방학의 한 가운데를 건너던 어느 날 밤, 나란히 침대에 누워 등을 토닥이며 '어서 자라. 네가 자면 엄마는 자유야'를 속으로 수십번 쯤 되뇌이던 날 아이들이 문득 이런 물음표를 꺼냈다.
"엄마는 여름 방학 때 뭐했어?"
엄마 어릴 적엔 키즈카페도 없었고, 동물카페도 없었고, 스마트폰도 유튜브도 없었다고 하면 언제나 토끼눈이 되는 아이들.
정말이지 우리는 너무 다른 시대를 사는구나 생각하며 한참 대화 끝에 우리 사이에도 공통 아이템이 있다는 걸 알게됐는데 그건 바로 귀신! 귀신이야기란 시대를 초월해 여름을 장악하는 재미 중 하나임을 더불어 '이야기'란 언제나 커다란 힘을 품고 있음을 새삼 깨닫게 된다.
내친김에 어릴 때부터 기억하고 있는 귀신이야기 몇 개를 해 주니 소리를 지르고 난리를 피우는데 서툰 나의 이야기 실력이 깜깜한 방, 엄마의 낯선 목소리, 깜짝 놀랄 만한 포인트 몇 개의 덕을 입은 까닭일테다.
잠이든 아이들의 새근거리는 숨소리를 들으면서 책장 앞에 선다. 이 기세를 몰아 재미있는 귀신이 나오는 창작동화나 우리나라 옛날이야기가 담긴 동화책을 찾아볼 요량으로.
이렇게 책장 앞을 기웃거리다보면 어느새 책이 한아름 품에 쌓이게 되는데 이 책더미를 이곳저곳에 잘 분산시켜 둔다. 식탁에 몇 권, 쇼파 옆에 몇 권, 아이가 좋아하는 공간에 몰래 살짝 숨겨두기도 한다.
인테리어 관점에서는 반갑지 않은 행동일지 모른다. 책이 ‘책장’이라는 자기 자리를 벗어나 집 이곳저곳에 머무는 건 너저분하게 보이기도 하니까. 하지만 다시 생각해도 나는 이 방법이 아이들과 책이 가까워지는 데 도움을 준 것 같아서 좋다.
내 기억 속 가장 오래된 집은 등나무가 마당부터 3층 옥상까지 늘어지듯 이어져있던 주택집이다. 부모님께서 책을 좋아하셨던터라 거실에도 안방에도 책장 빼곡히 책이 있었는데 매일 그 풍경을 보고 지내서인지 책등에 적힌 이런저런 글자들을 읽고, 조합해 보며 놀다 한글을 깨쳤다.
사람도 자주보면 정이들고 점점 더 알고싶어지듯 책도 그런 것 같다. 자주 본 표지 그림에 한 번이라도 더 손길과 눈길이 가는게 사람 마음 아니던가.
게다가 오래도록 봐온 책을 서점이나 도서관에서 만나거나 혹은 유치원이나 학교에서 선생님께서 읽어주시기라도 하는 날엔! 그 반가움이란 굉장함이 되기 마련이라서, 아이들 눈에 책이 익숙해지도록 아이들이 주로 생활하는 공간이나 놀이하는 곳, 오며가며 발길 닿는 곳에 놓아준다.
쇼파 위에 책을 한 두권 꼭 올려두기도 하는데 앉으려고 책을 치우려다 “엄마 이거 뭐야?” 하고 한번이라도 쳐다보게되고 그렇게 자연스럽게 우리 대화 속에 책이 끼어들게 된다.
하루 잠깐이라도 책을 중심에 놓고 나누는 대화! 책 읽기가 가장 책 읽기 다운 순간은 바로 이럴 때 아닐까? 목적없이 읽힐 때! 시험이나 공부같은 목적없이 그냥 언제나 일상 속에 자리하는 존재처럼 머물 때 책은 가장 책다울 수 있다고 믿어 본다.
9살 형님이 된 둘째가 꼬맹이 시절 늘 장난감을 거실 바닥에 와르르 쏟아두고 놀곤 했는데 그럴 때 근처에 책이 있으면 책을 장난감마냥 끼워 놀곤 했다.
레고만들 때 책이 바닥이 되어주거나, 자동차 피규어를 갖고 놀 때 책이 도로가 되거나, 책 두 권을 세워 동물 피규어 집을 만들어줄 때도 있었다. 매번 거실을 치워야해서 힘은 들지만 삐까뻔쩍 윤기나는 인테리어와는 거리가 멀어지긴 하지만 이렇게라도 책과 가까이 부대껴 보는거다!
아이들의 책 읽기 혹은 독서 습관 만들기를 막막하게 여기는 또래 엄마들을 만날 때마다 자주 추천해 주는 방법 중에 이런 것도 있다. 아이들이 좋아할 법한 책들은 베개 밑에 숨겨두거나 이불 안에 넣어두는 것! 그냥 줄 수도 있지만 책상 위에 놓아둘 수도 있지만 서프라이즈! 해주면 그 기쁨 덕분에 책에 조금 더 애정을 느낄지도 모르니까.
어른에게나 아이들에게나 책을 읽는 마음은 소중하다.
수많은 선택지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책을 펼치는 마음은
마음 한구석에서 아주 미세하게 흐르는 어떤 호기심을 능동적으로 해결해 보려는 의지의 표현이다.
가끔은 성장의 욕구로 다가오기도 한다. 어른들도 그렇지 않나. 새해를 맞이할 때마다 작심삼일이 될지라도 가장 먼저 준비하게 되는 건 책일 때가 많다.
가끔 아이가 바닥에 엎드려서 책을 읽거나, 요상한 자세로 책을 읽을 때 ‘똑바로 앉아라. 눈 나빠진다. 허리 휜다’ 같은 말들이 목 안 깊숙한 곳에서 솟아오르곤 하지만 이제 꾸욱 참는다. 그런 걱정의 말보다도 책과 맞닿은 그 귀한 마음을 먼저 알아주고 싶어서.
아이들은 눈치를 챘는지 아닌지 모르겠지만 가끔 아이들이 책과 멀어져 보일 때나 재미있는 책을 권해주고 싶어질 때는 ‘대화'로 줄거리를 들려주면서 유혹하곤 한다. 인간에겐 '이야기'에 이끌리는 DNA를 갖고 있으니까 언제나 성공하는 플러팅!
학원에 다녀와 아이스크림을 먹을 때 "있잖아. 이거 알아?"라는 한 마디나 "오늘 웃긴 이야기를 들었는데."라는 말을 꺼내면 움찔거리는 아이들의 귀를 만나곤 한다.
이런 이야기를 들은 사람들은 내게 “너도 책육아 하는구나.”라고 하지만 사실 나는 세상에 ’책육아‘라는 말은 없어져도 좋다는 생각을 자주 한다.
모든 육아에는 책이 필요하므로! 엄마는 엄마가 되어보려고, 아이는 아이답게 자라기 위해서 우리에겐 책이 필요하니까. 그래서 모든 육아에는 책이 함께하면 좋겠다. 그렇게 된다면 서로가 조금 더 자주 웃어줄 수 있지 않을까. 육아에서 웃음이 사라지는 이유란 대게 불안 같은 것에서 비롯되니까.
가끔 이런 물음표를 마주한다. 엄마란 대체 어떤 존재일까? 육아란 뭘까? ‘엄마, 육아’ 이 단어들엔 어떤 강한 힘이 존재하기에, 나는 온 종일 책을 이리저리 놓아두고, 읽어주고, 한 마디라도 더 대화를 이어보려고 노력하는 걸까?
아직도 까마득한 마음이지만 몇 가지가 확실하다. 육아란
여자가 부서지고 엄마가 세워지는 일이란 것. 그래서 자주 힘들고 늘 버겁지만 아이가 심어주는 사랑과 기쁨이 기둥되어 절대 쓰러짐이 없는 일이란 것.
책을 읽어주거나 아이 곁에 놓아주는 일은 이 책을 통해 아이가 영재원에 합격하거나 명문대에 진학하길 바라는 것만이 아니라는 것.
시간을 쌓아가는 것에 어떤 결실을 바라는 건 아니다. 어쩌면 한 바탕 웃는 것으로 이미 다 된 것이 있을 때도 있다.
행복으로 충만해 넘실거리던 마음만 간직해야 하는 순간도 있다. 우리의 책 읽기가 꼭 그런 모양이면 좋겠다.
오늘 읽은 책이 머릿속 지식으로 쌓여가는 모습을 눈으로 확인하길 노력하기 보단, 아이들 곁에 놓인 좋은 책이 선율처럼 흐르길 바라게 된다. 우리는 영원히 부족할지도 모를 부모이니까. 책과 함께 키운다면 조금 낫지 않을까? 이런 마음을 부풀리면서.
애쓴다는 말은 참 좋다.
애쓰다 : 마음과 힘을 다하여 무엇을 이루려고 힘쓰다.
'잘했다'라는 말보다 애정이 더욱 담긴 말 같아서 가끔은 뭉클하다. 육아는 키우느라 애쓰고 크느라 애쓰는 과정인 것 같다.
나도 아이들 덕분에 진짜 엄마로 커나가는 중이다. 서로의 사랑에 기대어서. 중요한 건 키우는 사람도 크는 사람도 그 누구보다 잘 해내고 싶은 마음이 가득하다는 데에 있다. 이걸 생각하면 고기 반찬 다 남기고 과자먹은, 숙제표 잘못보고 엉뚱한거 해놓은, 치약 뚜껑을 또 안닫은, 장난감 박스를 저리 뒹굴러 둔 채 잠든 아이들을 안아줄 수밖에 없다.
글 쓰는 엄마, 글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