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이를 더하는 책 읽기, 몰입 독서

by 글맘

서로의 사랑에 기대어 06_깊이를 더하는 책 읽기, 몰입 독서



후텁하고 찐득한 늦여름의 바람도 아이들의 볼을 스쳐오니 견딜만한 것이 되는 날이었다. 풀과 나무, 곤충과 이름모를 생명들이 이 여름이 끝나기 전에 제 모든 걸 이우려는 듯 이글거리를 풀숲을 아이들이 목소리가 "메뚜기야, 잠자리야, 개구리야" 보물찾기 하듯 파고 들었다.


유준이가 이제 막 알이 차오른 뱀딸기를 머리 위로 들어오리며 "엄마 예쁜 딸기 찾았어!" 나를 기쁘게 해주기로 작정한 표정으로 달려오다 훌쩍 놓쳤다. "아쉽다." 읖조리는 나의 탄식에 내 마음을 울리는 유준이의 대답. "엄마, 내가 다시 찾아볼게. 금방 찾을 수 있어." 너의 마음, 너의 언어.


무더위에도 아랑곳 없이 발자국을 되짚어가던 아이가 떨어진 것을 기어코 다시 찾아다 내 손 위에 올리고 "자, 여기!" 하며 저 멀리 나아간다. 애써 기억할 필요도 없다는 듯, 가볍게 나아가는 유준의 발걸음 뒤에 나의 모든 순간은 멈추고, '나는 너에게 얼마나 고마워해야 이 모든 고마움이 끝날까' 손을 모은다. 넘어가는 해가 마지막 힘을 짜내어 보내주는 특별한 빛이 준의 마음에 가득차 있는 것 같이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아이들을 키우며 종종 도무지 이론적으로 잘 설명할 수 없는 에너지를 느끼곤 한다. 쉽게 좌절하지 않고, 금방 지치지 않으며, 자기가 좋아하는 것에는 그 누구의 도움없이 푹 빠져들고, 궁금한 건 자꾸만 자꾸만 파고들어 깨우치고야마는 생명의 에너지!


이런 모습을 바라보다보면 엄마로서 나의 역할이 주방이나 세탁실에만 머무는 것이 아닌 아주 넓게 확장되는 기분이다. 단순히 의식주를 제공해주는 역할이 아니라, 우리 아이가 지금 무엇 앞에 호기심을 느끼고 있는지, 어떤 책이 아이의 흥미를 자극할 수 있는지, 무엇에 골똘해 보고 싶어 하는지 바라봐주는 넓고 든든한 존재가 되는 기분이 든달까.


방학, 방학이라는 이름표 때문일지도 모른다. 방학은 모든 일들 사이에 여유라는 틈을 만들고, 그 틈을 '몰입'이라는 것으로 채우고 싶어지는 시기이니까 말이다.


아이들이 책을 읽고 있는 모습은 보기만 해도 마음이 든든해지고 기분 좋지만, 책과 함게하는 '시간'이 무작정 길기만을 바라진 않는다. 간혹, "하루에 몇 시간 읽혀요?" 라는 질문을 받기도 하고, "인스타에서 유명한 그 집 애는 하루에 몇 몇 시간을 읽는 데"라는 이야기를 동네 친구 엄마를 통해 듣기도 하지만 '긴 시간'만으로 '몰입'이 완성된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아니, 어쩌면 시간만 채우는 건 더 쉽다. 아이가 좋아하는 책, 재미있는 책, 웃긴 책, 또래 아이들이 많이 읽는 책, 만화, 유튜브 채널의 주인공이 담긴 책들 위주로 읽다 보면 시간은 쉽게 훌쩍 흐르니까.


하지만 이런 책 읽기만으로 아이들의 시간을 채우는 건 되려 좀 걱정스럽다. 재미 위주의 책들은(마중물로서 필요하긴 하지만) 배경 지식과 어휘가 쌓일 틈도 없이, 하나의 문제에 대해서 골똘히 생각해 볼 겨를도 없이, 휙휙 읽고 지나가기 쉽상인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가끔은 정확한 우리말이 아닌 외래어나 인터넷 용어 같은 것들로 페이지를 채우는 책들도 있고.


무엇보다 진정한 책 읽기의 행복은 내가 몰랐던 것을 책을 통해 알아가고, 알게 되니까 더 궁금해지고, 궁금한 걸 해결하는 과정에서 즐거움과 카타르시스를 느끼며 자연스럽게 성장해 나가는 것이 아니던가.


아이들 방학때면 좋아하는 장르의 책을 조금 더 긴 호흡으로 천천히, 지속적으로 읽으며, 충분한 지식을 쌓을 수 있도록 신경을 써 주고 싶다는 다짐을 하곤 하는데 나는 이 다짐에 '깊이를 더 하는 책 읽기, 몰입 독서'라고 이름을 붙이고 싶다.


역사나, 경제 같은 분야를 책을 통해 배워나갈 때 이런 방법에 큰 도움을 받곤 했는데 사실 학습적인 주제들 뿐만 아니라, 아이들이 좋아하는 포켓몬, 축구, 야구 모두 같은 이치로 다가가게 된다.

좋아하는 주제가 생기면, 쉬운 그림책부터 여러 권 읽으면서 기본적인 지식을 쌓고, 그 다음으로는 저학년 줄글책으로 또 조금 더 탄탄한 정보가 담긴 고학년 책으로 나아가는 방법이랄까.


아이들은 정말 놀랍게도 스스로 관심있는 분야나 주제를 잘 찾아내지만, 그것을 읽기로 연결시키거나 확장 하는 건 엄마 몫일 때가 있다. 몸에 좋은 제철 식재료를 아이가 좋아하는 방식으로 요리해 주는 마음들처럼. 아이의 호기심 씨앗을 깊이 있는 독서를 통해 나무로 키워나가는 마음은 나무의 나이테처럼 한 겹 한 겹 쌓듯 다가가야 하는 순간들이 있는 법이다.


읽기에 깊이를 더 해 보는 '몰입 독서'는 아이들이 성장 시기에 맞춰 관심을 보이는 주제로 접근하면 참 좋다. 한 주제에 대해 다양한 장르로, 다각도의 책 자극을 경험해 보는 몰입 독서!


나이에 맞는 다양한 난이도, 같은 주제를 만화나 줄글처럼 다양한 구성, 사실에 입각한 정보 위주의 책이나 동화로 각색한 문학적인 책 등 다양한 언어적 변주를 느끼면서 다각도의 책 자극을 경험해 보는 '몰입 독서'는 생각 이상의 가치가 있다.


깊은 물에 빠져 본 사람이 다음에도 깊이 빠져볼 수 있듯 한 주제의 다양한 책을 길게 이어가는 호흡으로 읽으며 관심 주제에 깊이 빠져본 아이는 다른 주제를 파고들 때도 비슷한 깊이로 들어갈테니까.


'지식'이 아이들에게 암기가 아닌 '체득'으로 다가간다는 것도 몰입 독서의 또 다른 장점인 것 같다. 언젠가 아이 스스로 어떤 책을 읽어도 다 아는 내용만 만나는 순간이 왔음을 느끼면, 자연스레 좀 더 다양한 정보가 담긴(본인이 모르는 내용이 담김) 책을 찾거나, 다른 주제로 탐색을 넓히게 되는데 이렇게 한 주제를 폭 넓게 책으로 경험해보는 순간은 '엄마'외에는 같이할 사람이 없는 것 같다. 그 어떤 선생님도 엄마보다는 우리 아이에 대해 잘 알 수는 없고, 긴 시간을 함께할 수 없으니까.


가끔 아이를 키우는 일이 한 치 앞이 보이지 않는 어둠 속을 더듬거리며 나아가는 것 아닐까 싶다. 자주 후회하고, 더 자주 불안하니까. 하지만 책을 곁에 두면, 책과 고민을 함께 하면 작은 횃불 하나 정도는 들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아이와 나 사이에 빛나는 횃불.


언젠가 '적산 온도'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적이 있다. 사전적인 의미로는 '작물의 생육에 필요한 열량을 나타내기 위한 것으로서 생육 일수의 일평균기온을 적산한 것'으로 꽃이 피기 위해서는 필요한 온도가 있고, 식물들은 그 안에 온도를 모아둔다는 뜻인데,

육아와 전혀 상관없는 단어이지만 아이들이 자라는 모습을 보며 문득문득 '적산 온도'에 대한 생각을 자주 하곤 한다.


책을 가까이 하면 좋겠다는 마음이나, 책으로 앎의 기쁨을 느끼면 좋겠다는 마음, 깊이를 더 하는 책 읽기를 통해 몰입 독서를 경험해 보면 좋겠다는 바람 역시 모두 적산 온도에 빚지고 있다.


일주일만에 혹은 한달만에 무언가를 '섭렵해버리고 말겠다'는 계획보다는 식물들이 온도를 모아두는 것처럼, 아이들도 관심 있는 주제에 대한 다양한 앎을 모아두길 바라게 된다. 만화에서 얻은 앎, 그림책에서 얻은 앎, 지식과 정보가 한 눈에 잘 정돈된 책에서 얻은 앎은 그 모양과 빛깔들이 다를테고 이 다름이 아이들 마음에 켜켜이 쌓여 '앎의 줄기'를 튼튼하게 해 주면 좋겠다. 우리가 엄마로서 부모로서 그토록 바라는 '다양한 지식을 풍부히 알아가는 모습'은 이러한 과정에서 자연스레 쌓일거라 믿기에.


가끔 밤 산책 삼아 아파트 단지 안을 걷다 보면 엄마들의 목청 높은 잔소리와 아이들의 울음 소리가 창문 너머로 들리곤 하는데 그럴때면 나도 모르게 멋쩍은 웃음이 지어질 때가 있다. '저 집도 우리집도 별 반 다를 바 없구나. 육퇴만이 살길, 힘내요 그대.'라는 말이 절로 나오기도 한다. 육아란 언제나 총성없는 전쟁이니까. 잠든 아이의 발치에 앉아 남몰래 후회의 눈물을 흘리게 될지라도 샤우팅을 참기란 흐르는 콧물보다 주체하기 힘든 법이니까.


12살 첫째와 9살 둘째, 우리 셋이 이리저리 살을 부대끼며 책을 읽으면서 터득한 한 가지 비법이자 마법의 주문이 있다면, '아이들에게 당연한 모습은 하기 싫어함'이라고 되뇌이는 것이다. 책을 읽기 싫은 게 당연하고, 수학 숙제를 하기 싫은 게 당연하고, 연산 문제집 풀기 싫은게 당연하다고 생각하면 어쩐지 화가 좀 누구러지고 내 안에 존재하는 또 다른 어린 아이 한 명을 바라보게 된다.


신데렐라, 인어공주, 엄지공주를 읽느라 눈높이 수학 일주일치를 통째로 밀려두어 눈물을 뚝뚝 흘리면서 억지로 풀었던 어린 시절 나란 아이. 그런 아이가 멀리 있지 않다. 달밤 아래를 걸으며 메리 올리버의 문장들을 떠올리는 내 품 안에 있다.



"거대한 신비의 흰 불꽃을 들여다보고 있다고 믿고 싶어.

불완전함들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빛이 전부라고."

__메리 올리버, <기러기> 중



아이들은 어쩌면 신비의 흰 불꽃을 들여다보느라 엄마와의 약속을 자주 잊고, 알림장의 숙제를 자주 잊고, 실내화 주머니를 깜빡 놀이터에 두고 다니는 것 아닐까?

우리가 진짜 믿고 사랑해야 하는 모습은 완벽한 날들을 보내는 아이들의 모습이 아닌 바로 이 불완전함들로 반짝이는 빛일지도 모르겠다.


5학년과 2학년의 여름 방학 동안에는 바다에 자주 갔다. 쪽빛 바다, 고운 모래, 평온한 햇살, 사람들의 함성까지도 모두 선율로 들리는 아름다움 안에 우리 넷이 있었다. 이 모든 것들이 특별히 우리만을 위해 존재하는 것은 아니었으나 밀려오는 파도 위, 부서지는 물결과 물결 사이에 몸을 맡긴 채 오롯이 물들어가는 아이들을 지켜보는 것은 특별한 행운이었다.


가득가득 쌓으면 쉬이 무너지기 마련이고, 티끌만한 틈만 남기면 비집고 들어오는 햇살이 날카롭기 마련이다. 이번 방학은 멈추고, 덜어내어 넓은 틈으로 풍성한 햇살이 쏟아지는 시간이길 바랐다.


아이들은 물길만 내어주면 유연하게 흐른다. 어디인지도 모를 도착지만 내다보느라 반짝이며 흐르는 아이들을 놓치지 말고, 지금, 여기 우리의 발 끝과 손 끝에 집중하고 싶다. 늘 그렇듯 다가오는 날들도 우린 우리만의 속도로 잘 해낼 수 있을 것이다. 마음을 내리고 나란히, 나란히만 걷는다면 말이다.


글 쓰는 엄마, 글맘




토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