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육아의 마음 유산

by 글맘

서로의 사랑에 기대어 07_ 책육아의 마음 유산


학교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 온 아이가

먹고 싶은 간식을 챙기고 책장 앞을 서성이며 책을 고른다.


'무슨 책이 좋을까?' 고르는 시간이 길어지면 옆에서 괜스레 눈치를 보다가 "이 책 어때? 3편 나왔대. 오랜만에 이 책은 어때?"하며 옆에서 이런저런 말을 덧붙이다가 곧 후회하고야 만다.

나는 어떤 책이 읽고 싶은지, 왜 그 책을 떠올렸는지, 내가 좋아하는 책은 무엇이고 왜 좋아하는지 더욱 더 많이 고민하고 골똘히 몰입할 수 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도록 옆에서 지켜만 볼걸! 싶은 뒤늦은 후회.


'빨리 책 읽는 시간이 시작되면 좋겠다'는 엄마의 조급함을 들키는 건 언제나 매력이 없다. 그 다음으로 매력없는 건 책을 읽는 이유가 '아웃풋'이라 불리는 성과나 결과에만 매몰되는 것이나 그런 단어들 앞으로 마음이 기우는 것을 볼 때.


아이들이 학교 공부를 잘 따라가는 건 중요하다. 초등 아이들에게 학습이란 지식의 습득이나 학습 능력을 넘어 자존감과 자신감 형성에도 영향을 주곤 하기에 학교 공부에 뒤쳐지지 않도록 충분히 노력해야 한다.


하지만 아이들과 함께 매일 책을 읽는 이유가 학습 성과를 위한 공부에만 있진 않다. 차분히 앉아 책을 읽고, 이야기에 공감하고, 감정을 느끼고, 웃고 즐기는 과정에서 내가 누구인지, 무엇을 잘하는지, 책 속 주인공과 나는 무엇이 같고 다른 사람인지를 깊이 알고 받아들이며 탐구하길 바라는 마음이 가장 크다. 살아가는 수많은 과정의 첫 단추는 '나 자신을 아는 것'이 될 때가 많기에 이 바람은 언제나 옳다.


나 자신을 알고, 나의 호와 불호를 인식하는 순간은 앞으로 내가 나아가야 할 길이 그려진 지도를 얻는 것과 같다고 생각한다. 내가 나를 알면 늘 중심을 유지할 수 있고, 불호와는 슬기롭게 조화하며 호는 자주 취해나가는 방향으로 삶을 살아갈 수 있으니까.


책을 읽는다는 것은 재미있는 이야기를 읽으면서 그 이야기에 '나'를 비춰보는 과정이다. 아이들은 다양한 책을 읽으면서 '만약 나라면 어땠을까?' 스스로와 대화하게 되고, 이 과정을 통해 나 자신에 대해 깨닫고 알아가는 것이 자연스러워진다. 아마 이런 순간들이 내면에 차곡차곡 쌓이면 어떤 변화나 역경 앞에서 다른 길로 돌아가거나 새로운 길을 찾아낼 수 있는 유연한 사람이 될 것이다.


나 자신에 대한 '나만의 지도'가 언제나 마음 속 든든한 보루가 되어서 나의 실패를 인정해야 할 때, 나의 서툼과 미숙함을 마주할 때, 혹은 누군가가 쉽게 던진 돌멩이로 인한 파장을 다스려야 할 때도 좀 더 수월히 고비를 넘기는 유연한 사람이 되기를 도와주기도 하는 것 아닐까?


무엇보다 아이들이 자주 읽는 동화나 그림책 속 주인공들은 스스로 추구하는 이상향에 닿으려고 노력하는 존재들이다. 그들은 그 노력의 과정에서 쉽게 포기하지 않고, 좌절해도 다시 일어선다. 끊임없이 두려워하고 동시에 끊임없이 맞선다. 의지하거나 때로 의존하더라도 마지막에는 스스로가 스스로에게 주는 응원을 원동력으로 삼곤한다. 꼭, 삶을 사는 우리들처럼. 결국 매일 조금씩 책을 읽는 것이 남기는 가장 자산은 좋은 성적이나 지식의 습득을 뛰어 넘는 이러한 '마음 유산'들이다.


"엄마, 쉬는 시간에 **가

나보고 비행기 못 접는다고 또 놀렸어.

근데 나는 괜찮아.

나는 내 비행기가 젤 마음에 들거든.

앞으로도 나는 이 모양으로 접을거야.

나는 어린이도 새로운 비행기의 모양을

개발할 수 있다고 믿으니까.

비행기 책에도 그렇게 나왔었어!”


학교를 다녀 온 어느날 문득 아이가 해주는 말에 번뜩 깨닫는다. 엄마로서 부모로서 아이에게 주고 싶은 '마음 유산'은 바로 이런 모양으로 매일매일 조금씩 쌓이고 있다는 걸. 책장에 책이 차곡차곡 쌓이듯 아이들 마음 안에 그렇게 스며들고 있다는 걸.


하루 한 권의 책을 읽자는 약속은 때로 아이들이 아닌 엄마인 나와 나 자신이 지켜야 할 약속이 될 때가 있다. 피곤해서, 바빠서, 여행중이라서, 명절이라서 등등의 이유들로 그 약속을 쉽게 깨고 싶어하는 사람도 아이들보다 내가 될 때가 더 많다는 걸 인정한다.


가끔은 휘청대고 자주 다짐하며 원래의 궤도를 찾아 우리만의 밸런스를 맞춰야 하는 일들이 육아라는 세계 안에는 참 많은 것 같다. 요즘처럼 방학이 끝나고 새학기가 시작될 때면 더더욱 팔랑귀가 되버린다. 학원 전단지, 다양한 교육 프로그램, 입시 전략, 선행, 심화, 학군지와 비학군지의 비교와 학원가의 소식들까지. 사실 이 흔들림은 낯설지 않다. 아이가 태어나는 그 순간부터 끊임없는 밀려오는 정보의 파도 속에서 우리는 늘 위태롭기 마련이니까. 프뢰벨과 몬테소리를 고민하고, 영어 유치원 여러개를 고민하고, 전집을 고민하면서.


많은 것들이 직선이 아닌 곡선으로 휘청이며 나아가기 마련이라지만 대한민국에서 엄마라는 사람들이 겪는 이 흔들림이 씁슬한 것은 이 뒤뚱거림이 주체적이지 않다는데 있다. '엄마'라는 이름표를 달고 살아가는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귀가 솔깃해질 법한 이야기들은 언제나 '불안'을 '정보와 꿀팁' 이라는 이상한 이름으로 가린 채 제 멋대로 내 마음 안으로 들어오곤 하니까. 허락도 없이.


"아직도 몰라? 여기 요즘 가장 유명한 학원이잖아."

"레테 대기 걸었어? 아직도? 지금 해도 한달 뒤야. 빨리 해."

"어머나, 어머니. 아직 모르셨구나! 요즘 애들 다 이거 해요."


마치 나란 엄마가 모르고, 늦고, 뒤쳐져서 내 아이에게 피해를 주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무언의 암시들. 그 불안함에 잔뜩 흔들리고 웅크리다가 문득 눈을 떠 옆을보면 아이들이 있다. 가장 든든한 지침서이자 우뚝 선 등대는 아이들 본연의 모습, 바로 그들 자신이다.

이 모습 앞에 우리가 엄마로서 부모로서 갖게 되는 마음은 무엇인가? 아이가 자기 자신을 잘 알고 그 온전한 모습으로 행복하게 살아가는 것 아닌가? 가끔, 남들이 하는대로 우루루루 뒤따르고 휩쓸리게 되더라도 적어도 자신이 '난 지금 휩쓸리고 있어' 라는 것을 알아차릴 수 있는 사람. 내 마음의 소리에 귀를 기울일 수 있는 사람. 그렇게 스스로 자신의 세계를 걸어가면서 함께 걷는 사람들과도 다정하게 지낼 수 있는 사람이 되길 바라는 게 엄마들 아닌가?


오늘 아이가 고른 책은 성인 ADHD를 앓는 아빠와

그런 아빠를 사랑으로 보듬어주는 가족의 이야기를 담은 감동적인 실화 동화였다. <아빠는 아홉 살>


저녁 상 앞에서 달결 프라이 대신 다른 반찬을 권하는 엄마에게 목젖이 보일 정도로 소리를 지르며 달걀을 던지고, 막히는 도로에서 끼어드는 차를 향해 화를 내는 아빠. 동화 속 주인공인 아홉 살 예은이는 아빠가 화를 낼 때마다 '우리 아빠는 혹시 괴물이 아닐까?' 걱정하곤 한다. 그러던 어느날 예은이는 아빠의 목구성 속으로 빨려 들어가 버리고! 아홉 살의 아빠가 다니는 학교에 도착하게 되면서 겪는 이야기가 담겨있다.


짧은 동화를 읽고 아이가 말했다.

"엄마, 이 책 속 아빠가 우리 반에 있는 **친구 같아.

그럼 그 친구도 나쁜 게 아니라 좀 아프다고 생각해줘야겠다."


책이 가진 힘은 참 크다. 사람을 사람답게 해 주는 힘!

학교에서 가정에서 아무리 '얘들아, 우린 모두 다르단다' 말해주어도 잘 받아들이기 어렵던 것들이 감동적인 책 한 권을 읽고나면 쉽게 받아들여지고 상대방을 이해하게 된다.


사랑은 마음에서 우러나 무한정 나누는 거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사랑은 결국 '이해'에서 시작된다는 걸 우리는 무수한 실패를 통해 안다. 누군가를 혹은 무언가를 '이해'할 때 비로소 '인정'하게 되고, 그 이해와 인정의 틈에서 사랑은 싹트기 마련이니까. 새학기를 시작하면서 이리저리 흔들리던 나의 두 발이 다시 내 아이 곁에 착 붙는 걸 느낀다. 이렇게 우리는 앞으로도 작은 책을 읽고, 몇 번의 대화를 주고 받으면서, 그렇게 나와 너의 모습으로 살아갈 것이다. 이 생각들을 바라보면 마음 깊은 곳에서 부터 '그래, 이것으로 충분할 것 같다'는 믿음이 샘솟는다.


우린 자주 우리가 얼마나 기적적인지 알지 못한 채로 산다. 매일 마주하고 부대끼는 우리를 당연하게 또 당연하다 여긴다. 하지만 이제사 생각해 보면 모든 것이 기적이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하나부터 열까지 다른 우리가 하나를 맹세하고 셋이 되고 넷이 된 것. 기적이라는 말이 딱 알맞는 유일한 존재들. 그 모습을 바라보며 허락없이 몰아치는 불안함은 잠재운다. 우리가 남겨 줄 유산은 바로 여기 이렇게 '마음'에 있으므로.


글 쓰는 엄마, 글맘



안녕하세요. 글 쓰는 엄마, 글맘입니다.

인스타그램에만 글을 올려보다가

브런치를 시작한지 2주 쯤 되었어요.

두 아이들을 키우면서 겪고 생각해 온

책육아에 대한 이야기들을 글로 적어보는 과정이

즐거운 요즘입니다 :)

서툰 글을 함께 읽어주셔서 감사한 마음이에요.


우연한 계기로 글쓰기를 시작해서,

2년 남짓 글을 써 보면서

책에 대한 서평, 매일 매일 보내는 필사 편지 등

1천여 편이 쌓여있는데

앞으로 여러 권의 브런치북 발행을 통해

나눠 보도록 할게요. 감사합니다!

토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