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특권, 책육아

책육아와 사교육

by 글맘

서로의 사랑에 기대어 08_사랑의 특권, 책육아


지금처럼 '아이들과 책, 육아와 책' 이런 이야기들을 나누다 보면 늘상 받는 물음표가 있다.

"책만 읽히고 사교육은 안시키시나요?"

"학원은 안다니나요?" 같은 질문들.


책 읽는 것과 학원 혹은 사교육의 연결고리가 처음에는 조금 의아했는데

이때 쓰이는 '책육아'라는 말에는 육아를 책육아와 일반육아로 나누는 프레임이 있고, 이 프레임 속 책육아는 사교육 없이 오로지 책 읽기만을 통한 학습을 추구한다는 신념이 담겨있다는 것도 뒤늦게 알게 되었다. 조금 더 급진적인 면도 덧붙이자면 거실에는 티비를 없애고 책장을 놓고, 작은 오디오를 놓아 하루종일 영어 음원을 틀어두고, 엄마도 (스마트폰 절대 금지) 아이들 앞에서 책을 읽는 모습만을 보여주며, 신용카드 사용은 줄이고, 채식 위주의 식단을 준비하는 것.


이에 대해 알고 난 이후 한 동안 나는 입안이 좀 까끌했다. '난 오늘부터 책육아 할 거야!' 이런 비장한 각오로 시작하는 책 읽기 아니, '책 읽히기'라니! '책육아'라는 말이나 '책육아 방식'이란 것이 누가 무엇을 목적으로, 어떤 경로를 통해 만들어 낸 것인지 모르겠으나 나는, 이런 비장한 각오로 아이들과 책을 읽는 건 아니고 또 나 아닌 다른 사람들도 그러지 않았으면 좋겠다.


아침마다 상큼한 사과를 먹을 때 '나의 아침 루틴은 무조건 사과야! 이것으로 절대 병에 걸리지 않겠어!'라고 각오를 다지지 않듯. 사과의 향과 맛을 행복하게 즐기듯 그렇게 편안하게! 즐겁게! 맛있게! 책과 육아가 함께할 순 없는 걸까?


아이를 낳고 키우면서 얻게 되는 특권이란 엄마가 된 우리 안에 나 자신도 몰랐던 무한의 사랑이 숨쉬고 있음을 깨닫는 점이다. 나 자신만 중요했고, 나만을 위해 살았던 시기를 다 잊을 만큼의 사랑! 나 아닌 존재를 향한 이 거대한 책임과 사랑이야말로 엄마로서 누리는 특권이고, 우리가 함께하는 책 읽기는 이 사랑을 표현하는 또 하나의 방식일 뿐이다.


맛있는 걸 먹거나 좋은 걸 경험하면 아이들과 꼭 다시 먹거나 해보고 싶어지는 마음. 예쁜 옷을 보면 아이에게 입히고 싶은 그런 마음. 책육아는 딱 그 마음에서 시작하면 좋겠다. 좋은 책이 있으면 아이에게 꼭 읽히고 싶고 웃긴 책이 있으면 얼마나 신나할까 싶은 그런 마음.

무엇보다도 아이들에게 책을 읽어줄 때 혹은 아이가 책 읽는 모습을 볼 때면 우리들의 마음은 무장해제로 행복해지니까. 아이가 나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 들을 때, 오동통한 볼을 가까이 마주할 때면 정말이지 귀엽기도 하고 :)


인스타그램이나 블로그에 내가 겪은 책육아 기록을 작게작게 적어볼 때면 이런 문장들이 떠오르곤 했다.

'모든 육아에 책이 함께하길 바라요.

오늘도 아이들 곁에 엄마의 목소리를 타고 책의 선율이 흐르면 좋겠습니다'


어쩌면 내가 아이들과 책을 읽어오면서 누군가로부터 가장 듣고 싶었던 말일지도 모르겠다. 육아서 안에서는 언제나 '효율적으로 읽히는 법, 시기 별로 놓치면 큰일 나는 책 리스트'같은 것만 있었고 내가 필요로 했던 건 그런 말이 아닐 때가 많았기에.


곰곰이 생각해보면 책과 육아 사이에 사교육은 필요 없고, 전투적으로 책육아에 임하다보면 아이는 저절로 성장하게 된다는 말에는 아마도... 무조건적인 불필요함보다는 허투루 다니는 학원은 시간과 돈 낭비일뿐 남는 없을지도 모른다는 아찔한 경고와 냉혈한 사교육 시장에서 낭패보지 말라는 경험에서 우러난 선배 육아맘의 충고, 책이 가져다주는 넓고 깊은 지식에 대한 믿음이 담긴 것일테다.


현실적인 여건 때문에 학원을 다녀야 하는 상황도 생기고 아이가 원하지 않아서 완전한 엄마표로 해야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이런들 저런들 매일 30분 하루 한 권의 책 읽기가 곁들여지는 그런 순간을 두고 그 무엇도 책육아가 아니라고 말할 수 없다.


각자에게 주어진 환경 안에서 아이와 엄마가 어떤 도움을 필요로하는지 어떻게 해결해 나갈 것인지 주체적으로 고민할 필요가 있다. 여러가지 이유들로 아이가 학원이나 사교육을 병행하게 되었다면 주체성과 효율성을 꼭 생각해 보면 좋겠다. 학원이나 무리한 수업에 끌려다니지 않고 아이와 엄마가 함께 이끌고 나간다는 대전제를 잊지 않고서.


이 두가지를 마음에 담고 학습과 독서의 밸런스를 맞춰 나가야겠다는

생각이 바탕될 때 학원을 비롯한 여러 사교육이 '책육아의 방해' 요소가 아니라 긍정적인 도움이 되는 순간을 여럿 경험했고, 그래서 여럼풋 자신하게 되었다.


'전투적인 책육아'를 해나간다는 것은 아이의 독서, 학습, 환경 등을 모두 고려해 상황에 맞는 적절한 밸런스를 조절해 나가는 '기민한 민첩성'이 필요하는 것이지 신념을 넘어선 '금기'를 만들어두고 무조건 따라야 하는 건 아니라는 걸.


독서와 학습, 집 공부와 학원의 중심에 '아이와 나'를 두고 평온한 밸런스를 찾아내려 노력은 사실 계속 된다. 정답은 하나가 아니니까. 식물의 성장에 빛과 물이 고루 필요하고 식물마다 좋아하는 물의 양이 다르듯이 그 어떤 것으로도 획일화 할 수 없는 것이 '육아'이니까.


수많은 육아서에서 되풀이 되는 말 중 '아이를 나의 소유로 생각하지 마세요'가 있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더더욱 필요한 것은 '책육아'를 할 것이기에 '사교육은 금지' 같은 논리 보다는, 아이와 내가 함께 만들어가는 육아라는 시간을 어떤 태도로 임할 것인가 고민하는 것이 아닐까.


'책만으로 된다던데 학원 꼭 가야 할까?', '책육아 할거니까 사교육은 필요 없겠지?' 같은 생각들 보다는 '지금 아이와 나'에게 무엇이 필요한가?'라는 생각에 스스로 답을 찾아 나갈 때, 현명한 선택을 할 수 있고 '현명함'을 찾기 위해서는 책에 기댈 수 밖에 없으니까 결국 모든 육아에는 책이 필요해진다. 나 아닌 존재들이 나보다 먼저 겪고서 깨달은 것들이 담겨있는 책이라는 그릇을 우리는 가만히 들여다보면서 삶을 찬찬히 짚어보는 셈임을 다시 생각한다.


그런데 사실 나는 이 글의 제목을 '책육아와 사교육'이라는 멋 없는 것으로 지어두고서 글을 썼는데 쓰다보니 자꾸만 '모든 육아에 책의 선율이!'같은 계몽주의 포스터의 문구가 떠오른다. 아, 이건 또 아닌데. 아무렴 글쓰기는 내게 오롯한 자유에 머무는 순간이자 깊은 행복이나, 제목을 마련하는 건 어렵다. '사랑의 특권, 책육아' 이건 어떨까? 이러나 저러나 나는 촌스러움에서 벗어나기란 그른 것 같다.


글 쓰는 엄마, 글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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