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제집과 나란히 놓이는 사랑

by 글맘

서로의 사랑에 기대어 09_문제집과 나란히 놓이는 사랑


세상에서 가장 공평한 것은 무엇일까? 내가 생각하는 정답은 '책 읽기, 아이에게 책 읽어주기'이다. 세상에서 이보다 더 공평한 것은 없다. 책 그리고 나의 목소리만 있으면 되니까 :) 뛰어날 필요도 없고, 예쁠 필요도 없고, 날씬할 필요도 없고, 돈이 많을 필요도 없고, 집이 넓을 필요도 없고, 그냥, 읽어주는 나와 들어주는 너! 우리 둘만 있다면 언제 어디서든 얼마든 할 수 있으니까.


엄마가 되어 보고서야 알게 됐다. 엄마의 마음이 무너질 때가 내 아이에게 다른 집 아이만큼 못해준다는 생각이 들 때라는 걸. 더욱이 아이의 학습과 관련된 것이라면 나의 미흡함이 아이의 미래에 영향을 주진 않을까 걱정되는 순간도 많다. 그 걱정을 안고 사는 사람 바로, 여기, 나도 있고.


정보에 발빠른 옆집 엄마들이 각종 학원 레테 섭렵하며 의도치 않게 나를 불안하게 할 때면 나도 조용히 나만의 방패를 뽑아든다. 이름하야 '문제집', 새학기의 단짝!


이 글을 쓰는 이유는 문제집 추천이나 성적 향상에 도움이 되는 문제집 고르는 방법 같은 걸 이야기 하기 위함은 아니다. 내가 그 이야기를 할 수 있다면 참 좋겠았지만, 어리석게도 아직 터득하지 못했다. __하지만 이 글을 다 읽고나면 그런 추천쯤은 필요치 않다는 걸 느끼게 될지도__대신 매일매일 집공부를 하면서 문제집에 이리저리 치여보며 알게된 건 이런 것들이다.


진도보다는 '습관'에, 효율보다는 좋은 '인상'을 중심을 두자!


문제집의 가장 큰 역할은 '습관'이라고 생각한다. 매일 공부의 일정량을 해내면서 스스로 공부해야 한다는 것을 받아들이고 동시에 무엇을 얼마나 공부해야 하는지 인지하기 위해서! 아, 너무 두서없이 거창한가? 그렇다면 조금 간추려, 가장 중요한 건 이런 거라고 말하고 싶다.


자신의 공부량을 알고 스스로 매일 해내는 것!


아이들이 앞으로 10여 년은 더 해나가야 할 스스로 학습의 기초가 되어 주는 것이니까.


물론, 우리집 5학년과 2학년도 "이제 문제집 풀자! 숙제 하다" 내가 먼저 말을 꺼내야 자리에 앉는 날이 더 많지만 그럼에도 아이가 '당연한 하루 일과'임을 알기에 큰 불평 하지 않고 시작하곤 한다.


'문제집'이라 쓰고 넘어야 할 산, 헤치워야 할 과제라고 읽기 보다는 '공부는 매일매일 해야 하는 것'을 배워 나가는 도구로 생각해 보면 좋겠다.


문제집을 매일 푸는 가장 큰 이유를 '스스로 공부 습관'에 두면 엄마도 주변의 이런저런 말들에 크게 흔들리지 않을 여유가 생긴다. '습관'에 중심을 두면, 그제야 우리가 매일 조금씩 '성취'한 것의 귀한 모습들이 보이고, 우리도 우리만의 속도로 잘 해내고 있다는 튼튼한 믿음이 쌓인다. '진도를 빨리 빼기 위해서, 빨리 한 권을 떼기 위해서, 같은 반 아이가 이미 풀었다는 말에, 쫓아가기 위해서'라는 생각을 하다보면 마음이 조급해지고, 그 조급함이 결국은 아이에게도 영향을 주기 마련이다. 감정은 쉽게 전달되고 그 누구보다도 아이들은 엄마의 감정을 가장 빨리 느끼니까.


아이들과 매일 밤 문제집을 풀고, 동그라미 체점을 하고, 빗금으로 오답을 고치면서 알게된 건 아이들도 집 공부와 학교 공부의 차이점을 느낀다는 점이다. 학교를 가는 이유가 '배우기'위해서 라는 걸, 선생님이 시키는 것은 '의무'적으로 해야 한다는 것도 아이들은 이미 알고 있다. 반면 집에서 푸는 문제집은 의무보다는 '의지'와 '실천'을 더 필요한다는 것도.


그래서 진짜 중요한 건 따로 있다. '문제집을 푸는 건 내가 해낼 수 있는 것들이야. 오늘도 가뿐히 해내고 하고 싶은 놀이 빨리 해야지'처럼 공부에 대해 아이가 갖는 긍정적 감정과 공부의 조력자인 엄마에 대한 신뢰이다.


우리 집에는 매일 한 두 시간 정도는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오를만큼, 손흥민 유니폼이 축축하게 젖을만큼 달리고 달려야 원이 풀리는 12살과 그런 형의 뒤꽁무늬를 따라 공을 차야 하는 9살이 있다. 현관에 콩을 툭- 내려놓고 샤워를 마치고 거실 바닥에 턱-하니 누워 천장가 눈맞추는 아이들을 보면 종종 '이 녀석들 학교는 잘 다니고 있나?' 걱정이 되곤 한다. 새학기가 아이들에게는 방학의 끝일 뿐이겠지만, 엄마에게는 '새로운 공부의 시작점'으로 묵직하게 다가오기에.


불안한 마음에 선생님과 상담을 하고나면 종종 이런 대답을 듣는다. "어머니, 아이의 현재 학습 상황을 잘 알고 계시네요." 나는 이 말이 참 좋다. ‘잘한다 못한다.’의 이분법을 벗어나 지금 엄마로서, 아이 공부의 조력자로서의 나를 비추는 말!


아이의 공부 상황, 진도, 자주 틀리는 문제, 헷갈려하는 부분 같은 걸 잘 알고 있는 이유는 딱 한 가지. 집에서 함께 문제집을 풀기 때문일 것이다. 같이 공부를 할 때 좋은 점이 아이에게만 있는 건 아니다.


문제집을 풀다보면 우리 아이만이 갖고 있는 학습의 지도를 알 수 있게 된다. 독해 문제집을 풀 때 어떤 길로 잘못빠져서 오답이 되었는지, 수학 문제집을 풀 때 어떤 함정에 빠졌는지, 영어 문제집을 풀 때 어떤 단어를 놓친 건지, 쉬워하는 영역과 어려워하는 영역, 특별히 보충이 필요할 것 같은 부분 등등 많은 것들이 선명하게 그려진 우리 아이만의 학습 지도!


어떤 불안은 모르기 때문에 더욱 커지곤 한다. 경험해 본 적이 없어서,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를 때 더욱 당황스러운 법이니까. 그래서 아이의 학습에 대해 명확히 알면 어떤 외풍 앞에서도 우리만의 안정감을 유지할 수 있다.


아는 것, 안다는 것의 힘은 참으로 크다는 걸 자주 느낀다. 아이와 함께 어깨를 나란히 하고 앉아 머리를 맞대다 보면, 유명한 문제집, 선행 진도가 저 앞서가는 친구가 풀었다는 문제집, 누군가가 추천한 문제집 같은 것보다 지금 우리 아이에게 도움이 될 법한 아이 맞춤형 문제집을 찾는 눈이 생긴다. 알기에 얻게 되는 눈인 셈이다. 이 과정 덕분에 약점 부분만 모아놓은 문제집을 추가로 공부하고, 늘 쉬워하는 부분은 과감히 건너뛴다든지 하는 아이의 공부 밸런스를 조절을 해나가는 계획까지도 세울 수 있게 된다.


문제집을 아이가 다음 진도나 레벨로 넘어가기 위해 빨리 해결해버려야 할 것이라고 생각하지 말자. 우리 아이가 풀어내야 할 장애물이나 과제로 여기기 보단, 아이가 스스로 자신의 공부를 해나가기 위한 도구, 자기 공부의 강점을 발견하고 약점을 보완하는 도구로 생각하는 것. 이러한 관점은 오로지 엄마만이 가질 수 있다. 학교에서는 절대다수가 속한 학급에 맞춰 공부하고, 학원에서도 우리 아이만을 위해 해줄 수 있는 건 한계가 있다.


특별히 앞서나가지 않는 것이 부족은 아니다. 부족한 부분을 마주하게 된다고 해도 크게 좌절하지 않는다. 우리는 매일 해내고 있고, 앞으로도 지금처럼 해나갈 수 있다는 확신이 있으니까.


새학기가 시작되면 제법 많은 마음의 부침이 생기곤 한다. 그럼에도 우리는 또 잘 해낼테다. 하루 한 권의 책과 매일매일의 문제집 풀기를 이어나갈테니까 말이다.


어떤 물건에 함께한 장소와 시간, 우리의 이야기가 담기면 선물이 된다. 우리의 책 읽기도 혹은 함께하는 시시콜콜한 문제집 풀기도 그런 것 같다. 같이 공부할 때 아이가 했던 우스운 말 같은 것들, 틀렸다고 화내던 모습, 맞췄다고 기뻐하는 모습들이 책 한 권 책장 한 장에 더 해지면 추억이 선물처럼 남눈다.


며칠 전에 이런 질문을 만났다. "아이들을 품던 열달 동안 무엇을 바라셨나요?" 답을 하려 생각에 잠겼다가 이내 고개를 저어 털어냈다. 아이들은 존재 자체로 이미 모든 것을 이루었으니 아무것도 바라지 않길 바라겠다고 다짐하면서.


구름과 구름이 서로에게 스밀 때 하늘이 되길 소망하지 않는 것처럼, 꽃이 필 때 아름답기를 바라지 않는 것처럼. 스스로를 태워 빛내지 않아도 이미 빛의 중심에 있는 존재들. 아무것도 바라지 않길 바랄 것. 단지 매일매일 사랑할 것.

문제집의 끝에 사랑이 나란해질 줄이야! 엄마가 되고서야 깨닫게 되는 것은 참 많고 깊다.


글 쓰는 엄마, 글맘

토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