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 저학년을 위한 어린이 문고
서로의 사랑에 기대어 10_아이들 마음에 차곡차곡 쌓고 싶은 책
"다녀왔습니다" 책가방을 휙, 신발주머니 툭- 쇼파에 풍덩 엎드리는 바쁜 뒷모습. 아이스크림 하나 먹으면서 책을 펼치는 매일 비슷한 이 풍경이 매일 예쁘다. 책장이 넘어가면서 일으키는 사각거리는 공기는 가볍지만 단단하게 아이들을 키워줄테지. 책 읽는 아이들을 바라보며 제자리 걸음이어도 나아가고 있는 순간은 책을 읽을 때구나, 생각하게 된다. 스며드는 햇살이 오늘 유독 예쁘다는 나의 혼잣말에도 꿈쩍하지 않더니 책장을 다 덮은 후에야 "엄마, 이 책! 재미있어!"하며 빙그레 웃으면 마음 가득 기쁨이 충전되는 기분.
좋아하는 영화나 드라마의 대사와 줄거리가 몇 년이 지나도 생생하게 기억나는 경험, 누구나 한 번 쯤 있다. '재미있는 이야기'가 가진 힘일테다. 서점이나 도서관을 서성일 때면 아이들은 재미있는 책을 읽을 권리가 있다는 생각에 닿을 때도 있다. 그만큼 '재미있는 책'이 주는 영향이 크기에 갖는 마음이다.
아이들의 호기심을 책으로 이끌어주고 싶고, 궁금하거나 더 알고 싶은 게 생겼을 때 책의 바다로 나아가기를 바라는 건 엄마들의 하나같은 마음일 것이다. 무엇보다 책은 학교에 입학해서 졸업할 때까지 싫든 좋든 책상 위에 두며 지내야 한다. 친하면 친할수록 해될 것 없다는 걸 잘 알기에 '책'을 대하는 마음에 걸림돌이 없기를, 부정적인 감정이 남기는 문턱이 생기지 않기를 바라게 된다. 이를 위해서는 우연한 만남이든 엄마의 부단함 노력이든 어떤 경로를 통해서든 아이의 취향에 맞는 재미있는 책이 필요하다.
우리 아이들에게 책을 읽혀오는 시간이 쌓이면 쌓일수록 아이들의 책 읽기에 재미있는 이야기가 담긴 책은 정말 중요하다는 생각이 굳건해 진다. 책과의 친분을 두텁게 해주는 건 당연하고, 유아기의 그림책 읽기에서 학년기 줄글책 읽기로 읽기가 향상되어 갈 때도, 그림보다 글자가 중심이 되는 글을 읽는 연습을 할 때에도 재미있는 이야기 책이 큰 도움이 된다. '재미'라는 매력에는 책이라는 물성이 가진 정적인 면을 쉽게 이겨낼 수 있게 도와주는 마력이 있다는 걸 실감한다.
아이들의 이야기 책, 줄글책을 '어린이 문고'라고 부르는데 다양한 시리즈의 전집도 단행본도 있다. 책 읽기에 크게 무게 중심을 두지 않은 가정에서도 어린이 문고 책은 몇 권 소장하고 있을만큼, 책 읽기를 즐기지 않는 아이들도 학교 도서관이나 서점에서 한 번 쯤 읽어봤을 만큼 기본이 되는 책이 어린이 문고일 것이다.
어린이 문고에 대한 웃픈 추억이 있다. 첫째 아이 8살, 초등 입학을 앞두고 줄글책 읽기를 연습하던 시기였다. 유명한 어린이 문고 시리즈가 단계별로 나이에 맞게 구성되어 있기에 큰 고민없이 구입했는데 무척 당황스러웠다. 출간된지 아주 오래된 책인데다가 재미의 여부를 넘어 외서의 어색한 번역으로 문화적인 차이가 해소되지 못한 책도 있었다. 같은 단계 책들 중에는 글밥도 길고, 페이지가 많은 책도 있어 결국 손이 가는 책은 몇 권 없었다. 유명세만 믿고 덜컥 '지른' 탕진잼의 쓴맛을 봐야했던 순간이었다.
이 책들이 나쁜 책이라는 말을 하고 싶은 건 아니다. 옳다 그르다 좋다 나쁘다를 논할 수 있는 이야기가 아닌, 아이와 내가 함께 책을 읽어오며 겪었던 좌충우돌에 가깝다. 이 경험으로 이런 생각들에게 한 발 더 가까워졌다. 아이들은 많은 것을 스폰지처럼 흡수하는 시기이니만큼 수려한 문장이 담긴 책을 골라주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 아이의 하루에 책을 읽을 수 있는 시간과 에너지가 한정적이니만큼 유익하고 재미있는 책을 꼼꼼히 가늠해서 구입하자는 생각!
이 생각들을 품으며 아이들이 읽을만한 이야기 책을 고르다보면 '가독성 좋은 책'이라는 두루뭉술한 타이틀이 어울릴 법한 책을 택하게 되지만, 사실 속속들이 들여다보면 특징적인 공통점들이 있다.
아이들의 일상 생활이 생생하게 담긴 줄거리, 적절한 호흡의 문장 길이, 한자어나 어려운 단어가 없는 것, 유쾌하고 재미있는 그림, 적당한 페이지!
사실 이 모든 것들 중에 가장 중요한 것은 '이야기' 그 자체이다.
궁금증을 일으켜서 한 번 펼치면 계속 읽게 되는 이야기들, 아이들에게 이런 이야기들이란 '어? 이거 우리 학교 이야기인데? 내 이야기인데?' 깜짝 놀랄만큼 공감할 수 있는 현실감인 것 같다. (사실 이건 어른도 마찬가지이긴 하지만) 학교나 학원, 놀이터나 편의점에서 겪어보았을법한 사건이나 일어날 법한 사건들에 상상력이 한 스푼 더 해지면 그 재미있는 이야기에 마음을 뺴앗긴다.
재미있는 이야기, 내 마음을 사로잡는 이야기를 만나면 아이들은 순식간에 빠져서 훅- 읽어버린다. 아이들만이 갖는 그 사랑스러운 열정들! 그렇게 책의 맛을 보게 되면 하루 한 권 읽기의 습관도 쉬워지기 마련이다.
요즘 가장 핫한 말이 '문해력'일 텐데, 그 어마무시하다는 문해력도 결국 다양한 이야기가 담긴 줄글책을 읽을 때 비로소 쌓고 쌓이는 것이 아닌가 싶다. 문해력은 문제집을 푼다고 길러지는 게 아니다. 문제집 속 짧은 지문 한 꼭지로는 절대 해결이 불가능하다. 앞 뒤 맥락과 흐름이 담긴 이야기 책을 읽으면서 인과 관계를 파악하고, 모르는 어휘도 내용을 토대로 유추하는 연습을 하게 될 때 비로소 쌓인다. 하나의 문장이 갖는 여러 층위의 복합적인 뜻을 경험하거나 전개될 방향을 예측하는 것 역시 이야기 책 읽기를 통해 키워지는 힘이다.
아이들과 나, 우리가 서로의 사랑에 기대어 하루씩 하루씩 채워나가는 책 읽기의 날들에 목표가 있다면 그건 무엇일까? 결국 앞으로 우리가 살아갈 '삶'을 위함이 될 것이다. 삶, 그 안에는 언어와 지식, 유머와 재미, 안락함과 불안, 용기와 성장까지 모든 것이 담겨있으니까! 이러한 삶의 모습 한 조각, 한 조각이 모여진 것이 어린이 문학, 이야기 책들이다.
매일 어디론가 조금씩 사라지는 소중한 포켓몬 카드를 귀신이 가져가는 것 아닌가? 잠들기 전마다 엉뚱한 걱정을 하는 유현이의 마음을 공감하고 위로해 주는 건 부모나 형제가 아닌 어린이 문학책 속 주인공일 때가 있다. 따끔한 훈계나 가르침 역시 마찬가지이고.
아이들의 세계와 책의 세계가 만날 때 확장이라는 말로는 단정지을 수 없는 폭발적인 시너지가 일어난다. 문해력이니 독해력이니 이런 거창한 목표를 살짝 지워보더라도 인간적인 성장을 위해 책을 읽어야 하는 건 당연한 과정이 아닌가 싶다. 이때의 읽기란, 영재원을 위해서도 레테를 위해서도 아닌 책에 담긴 재미있는 이야기 속에서 순수한 즐거움을 느낄 수 있는 책 읽기!
AI로 대체할 수 없는 유일한 것이 '인간의 마음'이고, 그 마음과 마음이 엮이는 '삶'에 문학적 상상력을 한 스푼 보탠 것이 '재미있는 이야기 책'이란 생각을 한다.
육아 10년, 내 나름 그 시간들에 몰입해 있다가 문득, '아 나도 이제 나를 조금 찾아볼 때가 되지 않았나?'생각했을 때, 타자를 향하던 시선을 나의 내부로 돌려보려 애쓸 때, 내 곁에 가장 든든하게 존재한 것이 있다면 책이었다. 책에 나 자신을 비추며 다시 온전한 나 자신의 모습 곁으로 다가갈 수 있었달까. 아이들의 책 읽기도 이런 모양이면 좋겠다. 오롯한 즐거움, 그 안에 머무는 온전한 나를 마주하는 것.
아이들의 마음이 항아리같다. 가득차기까지는 담겨야 할 양이 많고 그래서 언제나 인내를 필요로 하지만 한 번 넘치기 시작하면 그 무엇보다 예쁜 각각의 색들을 쏟아내는 항아리! 그 항아리엔 담긴 귀하디 귀한 씨앗들을 바라봐 주고 싶다. 씨앗에 가장 필요한 건 온기와 응원일거란 언제나 같은 결론에 우리가 닿아보면 좋겠다. 바람이 불면 이 확신도 휘청하는 순간도 있을테지만, 우리에게는 서로의 눈빛이라는 깊은 뿌리가 있다. 눈빛, 서툰 엄마의 어설픈 언어나 몸짓이 아닌 오로지 눈빛. 이것이 답이란 확신이 든다.
글 쓰는 엄마, 글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