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당신을 위한 리추얼 편지 - 매일 나를 돌보는 시간

by 글맘

나를 돌보고 싶었다. 많은 것들이 채워진 내 삶에 정작 ‘나 자신’이 없다는 걸 알게 된 것은 3년 전이다. 2022년 여름, 늦은 오후가 드리운 노란 햇살 안에 앉아 빨래를 개키다가 문득 마음이 이상했다. 커다란 공허함이 나를 덮쳤다. 낯선 감각이었다. 도무지 이유를 알 수가 없었다. 가정적인 남편과 건강한 두 아들, 안정적인 가정과 내가 꾸려가는 살림. 모든 게 제 자리에 있는 듯 보였는데 마음이 자꾸 흔들렸다.

방황했다. 당혹감에 몇 달을 허깨비마냥 보내고서야 알았다. 많은 것들을 위해 쉼 없이 달려오느라 정작 ‘나’를 잃었다는 걸. 아이들과 남편의 아침을 준비하고, 등교와 출근을 돕고, 집을 정돈하고, 저녁거리를 위해 장을 보고, 좋아하는 간식을 준비하고, 옷을 반듯이 다려두고, 하루종일 바쁘게 보냈지만 내 삶의 중심에 내가 없었다. 나를 잃었다는 자각 앞에서 나는 무척 혼란스러웠다. 누구의 엄마이자 아내이기에 앞서 가장 소중한 나.


빗방울이 창문 곁을 스치는 소리에 잠이 깬 밤, 수많은 물음표가 떠올랐다. 지금의 나는 누구일까? 누구누구의 엄마이기 이전의 나는 되찾을 수 없는 걸까? 나는 그저 성실하게 순리대로 살았을 뿐인데 왜 이런 막막함을 겪는 걸까? 지금 나의 모습이 삶의 전부인 걸까? 앞으로 수십 년 남은 나의 인생, 지금처럼 가정을 돌보는 일만이 내게 허락된 전부일까?


나는 다시 나를 내 삶의 중심에 놓아보고 싶었다. 오롯이 나답게 존재하고 싶었다. 내 안의 목소리를 듣고 싶다는 바람을 외면하고 싶지 않았다, 이른 새벽 홀로 일어나 낡은 노트북을 열었다. 무작정 인스타그램을 켜고 지금의 내가 할 수 있는 이야기들을 썼다. 아이들에게 책을 읽어주던 책육아 경험담, 어릴적부터 나의 단짝인 책 읽기, 마음에 오래 남은 책에 대한 서평 쓰기 등 나의 목소리를 작은 여백 위로 꺼내면서 회복되어 갔고 내가 올려둔 글들에 마음 결이 맞는 사람들도 하나 둘 모이기 시작했다.

나에게는 ‘글 쓰는 엄마, 글맘’이라는 새로운 이름이, 인스타그램 계정에는 ‘space 글맘’이라는 이름도 생겼다. 나만의 공간, 내 목소리로 채워가는 공간인 만들어진 것이다. 나를 돌보고 싶고 나답게 살아가고 싶다는 나의 바람 곁에 또 다른 마음들이 모이면서 독서 모임과 필사 모임이 만들어졌고 나는 리더로 성장하기도 했다. 모두 기적 같은 순간들이다.

주부에서 글맘으로 나아가는 ‘나 찾기의 여정’에서 언제나 가장 든든한 버팀목은 ‘글쓰기’였다. 나답게 나아가고자 다짐하는 그 작은 발걸음들을 이어오면서 때로는 흔들리고 불안하기도 했는데 그럴때마다 글을 쓰면서 길을 잃지 않을 수 있었다. 글을 쓸 때는 마치 내가 길을 잃지 않길 바라는 고운 마음들이 저 먼 곳 어딘가에서 나를 향해 달려온 것 같은 기분이 마저 들곤 했다.


자기 계발이 유행인 요즘, 명상이나 새벽 기상, 운동 등 나를 돌보기 위한 다양한 방법들이 인기이다. 처음에는 막연하게 멋지고 좋아 보여서 무작정 따라 해 보기도 했는데 정작 내게는 버거웠다. 새벽 기상은 오래 유지하기가 어려웠고 운동은 고통의 감각이 먼저 다가왔기 때문이다. 몇 번의 시행착오 끝에 알게 된 것은 나를 돌보는 것에도 나만의 방식이 필요하다는 것. 나만의 고유한 리듬과 호흡을 중심에 두어야 한다는 것이다. 내게 그것은 '글쓰기'였다. 책을 읽다가 발견하는 좋은 문장을 노트에 적고, 그 문장이 내게 전해준 울림을 나만의 언어로 풀어내는 단순한 일. 그런데 그 단순한 일이 언제나 나를 구했다.


오로지 나 자신만을 위한 행위. 나의 마음과 정신, 의식의 성숙을 위한 아주 작은 것들이 내 삶에 몇 가지나 될까를 가늠해 보면 이내 자신에게 미안해진다. 나는 나의 주인이자, 내가 가장 잘 돌보아야 하는 존재임에도 그런 행위가 몇 없기 때문이다. 나의 든든한 언덕 같은 글쓰기, 나는 이것을 오래도록 이어가고 싶어서 '리추얼(Ritual, 규칙적인 의식)'이라는 이름을 붙여주기로 했다.


루틴이 성취를 위한 반복된 과업, 목적 지향적이라면 리추얼은 일상 속에 의미를 부여하는 나만의 행위를 만들고 그것을 반복하면서 나를 위한 시간, 나에게 몰입하는 순간을 만드는 것이다. 나에게 '리추얼'은 좋은 문장을 읽고, 나의 마음을 들여다보며, 나만의 언어로 하루를 정리하는 시간인 셈이다.


그러던 어느 날부터, 책에서 좋은 문장을 읽고 노트에 적을 때마다 나도 모르게 내 이야기가 덧붙여졌다. 필사하며 들었던 생각, 우연히 떠오른 기억, 위로가 되었던 마음 등을 쉽게 놓칠 수가 없어서 노트의 귀퉁이에 짧은 글을 끄적였다. 글을 쓰는 순간에는 온전한 나 자신으로 머물게 되고 무한히 자유로운데 그 감각이 좋아서 매일 썼다. 그렇게 쓴 글들을 오래도록 혼자 간직하다가 용기를 내어 필사 모임을 만들고 ‘리추얼 필사 편지’라는 이름으로 필사 모임 멤버들에게 글을 보냈다. 이것이 지금부터 보여줄 이 글들의 탄생기이다.

나는 좋은 문장을 읽고, 나만의 이야기를 써 나가는 서툰 반복들을 통해 비로소 ‘나’를 되찾았다. 이 편지들은 완벽한 구성의 에세이도 아니고, 대단한 교훈도 없다. 하지만 매일을 살아내며 흔들리고 깊어지고 솟아나고 넓어진 한 사람의 발걸음들이 담겨 있다. 매일 읽고 매일 쓰는 이 사소함들이 모여 진정한 성장과 성숙이 이뤄진다고 믿는다. ‘나아감’이란 자주 사소한 것 같다. 내 인생을 뒤엎을 거창하고 거대한 결심이나 결실일 것만 같지만 사실 지극히 작디작은 것들의 반복일 때가 많으니까.

매일 읽을 수 있는 ‘리추얼 편지’라는 한 편의 짧은 편지를 통해 일상을 살아내는 사람에게 따뜻한 응원과 공감을 건네고 싶다. ‘나’를 다시 반짝이는 빛 아래로 데려와 주길, 이 에너지가 나의 하루에 큰 변화이자 시도가 되길 바라게 된다.


<당신을 위한 리추얼 편지> 이 브런치북에 작은 편지들을 모아 본다. 호기심 어린 눈으로 이 글을 펼쳐 읽는 당신께 나는 이런 말을 건네고 싶다.

"매일, 나를 돌보는 작은 시간을 가져보세요. 내 마음을 챙기고 돌보면서 그렇게 내가 나를 중심에 놓고 나답게 살아갈 수 있는, 그런 시간을요."

나를 나답게 살아갈 수 있도록 격려하고 싶은 마음을 이 편지들에 담았다. 나의 노트에서 시작된 편지를 새로운 물결에 흘려보낸다. 아마도 이 편지는 우연히 당신의 손에 닿아 완성될 것이다. 어깨를 나란히 맞대고 보폭을 맞추며 함께 걷는 기분으로 읽어주면 좋겠다. 내가 그랬듯, 당신도 이 걸음을 통해 모두가 오롯한 회복의 시간을 보내길, 나 자신에 몰입하는 순간을 보내며 다시 자기 자신과 연결되는 시간을 만끽하길 바란다.

수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