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부에서 글맘으로 나의 재편성에 대하여

프롤로그

by 글맘


프롤로그 – 주부에서 글맘으로 나의 재편성에 대하여


생각할 때마다 모든 것이 기적 같다.


2022년 여름, 우연하게 시작한 인스타그램 덕분에 나는 ‘글 쓰는 엄마, 글맘’이라는 이름으로 매일 글을 쓴다. 책을 읽고 나면 서평을 써서 게시글을 올리고 책 읽기나 글쓰기에 대한 짧은 단상을 나누기도 한다. 서툴게 쓴 이 글들이 흐르고 흘러 누군가에게 닿았고 35명이던 나의 인스타그램 ‘space 글맘’은 1만 6천명 팔로워의 공간이 되었다. 독서 모임 글맘리딩, 필사 모임 리추얼 필사, 시 읽기 모임 달밤과 꿈결을 만들었고 결이 맞는 사람들이 함께한다. 작은 월급을 벌게 된 셈이다. 하지만 나는 등단 작가도 아니고 출간 작가도 아니다. 퍼스널 브랜딩에 성공했다기에 여전히 나를 아는 사람은 없다. 길을 걷을 때 누군가가 “아줌마!”하고 부르면 반사적으로 뒤를 돌아보게 되는 평범한 아줌마이자, 두 아들의 엄마. 그리고 뒤늦게 글쓰기에 매료된, 평생 글을 쓰면서 살고 싶은 사람일 뿐이다. 이 바람에 ‘작가’라는 이름을 붙인다면 작가 지망생일 뿐일테고.


지금부터 쓰는 글은 작은 성과를 소개하거나 보여주거나 자랑하고 싶어서가 아니다. 자랑하거나 앞세우기는 거대한 인스타그램 세상 속 나의 성과란 별 볼 일 없는 초라한 것이기도 하지만 내가 진짜로 하고 싶은 말은 그것이 전혀 아니기 때문이다.


첫째 아이가 10살이던 2022년, 살림만 하던 주부인 내가 글맘이라는 이름을 갖게 되고 매일 책을 읽고 글을 쓰는 사람으로 재편성 된 이 시간들에는 성취나 성과 같은 결과론으로 말할 수 없는 ‘삶의 여정’이 있다. 육아맘, 아줌마, 프로살림러이던 나는 3년이 조금 넘는 이 시간들을 통해 수많은 것들을 느끼고 깨달으며 비소 진정한 ‘나’를 만날 수 있었다. ‘삶’이라는 이름 뒤로 나 스스로가 숨겨두었던 나, 나 조차도 몰랐던 나, 언제가 내가 진짜로 마주해야 했던 나, 그런 나를 세상 밖으로 꺼냈던 시간들이었다. 내가 진짜 말하고 싶은, 평범하기만 한 내게 일어난 ‘기적’이란 바로 이것이다. 나의 재발견! 아니 진정한 나 자신의 발견!


사실 그 무렵 내게는 작은 사건 하나가 있었다. 별 것 아닌 일이라 넘겼지만 그 일은 내 안에 금을 냈고, 나는 그 틈으로 오래된 상처를 보았다. 내가 오랫동안 '이해와 양보'를 미덕으라 여기며 나 자신을 억눌러 왔음을 깨달았다. ‘평화’라는 이유로 내 감정과 욕망을 묵살해 온 시간들이 내 안을 텅 비워버렸다는 걸 그제야 알았다. 많은 것들을 돌아보게 되던 날들이었다. 이 골똘한 시간들의 끝에 나를 돌볼 수 있는 사람은 오로지 나 자신밖에 없다는 결론에 도착했고, 수많은 밤들을 '나는 이제 '나'로 살고 싶다. 이 마음을 오래도록 지켜야지.' 다짐하며 잠들곤 했다.


하지만 나를 지키고 돌보는 걸 어떻게 해야 하는 건지 배워본 적이 없다. 간절한 마음과 달리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서 당혹감에 휩싸일 때마다 이끌리듯 낡은 노트북을 열었다. 그렇게 우연히 글과 닿아버렸다. 참 이상한 일이었다. 유년 시절부터 책 읽기를 좋아했고, 중학생 때부터 대학 진학은 국어국문학과에 할 거라고 결정한 나였지만 글쓰기에는 마음을 기울였던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어쩌면 내 안의 ‘나’가 이제는 자신을 좀 봐달라는 언어의 아우성을 친 것일까? 글을 쓰는 것은 매 순간이 신기했다. (돌이켜 보면 그때 쓴 것들을 ‘글’이라고 부르기에도 조악하지만 어쨌든) 서툴게 글을 쓰면서, 그러니까 내 안의 것들은 문자라는 형태로 꺼내어 보면서 나는 ‘내 안에 이런 생각들이 있었나?’ 놀라웠고 매 순간 회복했다.

인스타그램의 시작이라 부를만한 그 시기쯤에는 주부 생활의 짧은 단상, 두 아이들과 함께하는 육아 일상 같은 것들을 주로 기록했다. 처음이란 늘 그렇듯 할 수 있는 말이 많지 않았고 '지금, 바로, 여기, 내 눈 앞의 것'을 쓰는 것이 할 수 있는 전부였기 때문이다. 그래도 좋았다. 인스타그램이라는 낯선 뷰파인더로 일상을 바라보니 모든 것이 새로워 보이던 그 묘한 느낌들이 또렷이 기억난다. 기저귀 가방으로 쓰던 손가방에 물티슈와 함께 있던 소설책이 당연한 풍경이 아닌 사진에 담고픈 새로운 모습으로 보이고, 빌트인 화장대를 책상으로 사용하는 나의 오랜 습관도 익숙함이 아닌 귀여워 보이던 순간들.


값비싼 다이아몬드도 평생을 지니고 다니면 익숙함에 속아 소중함을 잠시 잊게 되듯이 오래도록 함께해서 크게 유달스럽지도 거창하지도 않아 보였던 일상들이 바라보는 눈이 달라지자 모두 특별해 보였다. 그렇게 신선함을 느끼면 그걸 글로 썼다. 아이들에게 매일 책을 읽어주던 나의 노력까지 꽤 기특한 모습으로 다가오면 ‘책육아’라는 주제로 글을 쓰고, 10살 6살이던 아이들이 읽는 책 중 유독 좋은 책을 만나면 그 책에 대한 글을 썼다. 책 읽기를 좋아하는 내가 읽은 책에 대해 쓰거나, 육아 일상, 여행 등 소소해 보이는 것들 속에서 발견하는 기분 좋은 감각들을 매일 썼고 매일 쓴다. 마치 이 순간만을 기다리면서 내 안에 차곡차곡 쌓아 왔던 것처럼 하고 싶은 말들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이런 기록들이 쌓이자 사람들이 모였고, “책공구 해보실래요?” 제안을 받아 새로운 도전을 하기도 했다. 나는 첫째 아이의 출산과 함께 퇴사했는데 그때 출판사에서 근무하던 출판 편집자였다. 내 생애 유일했던 내가 사랑했던 나의 직업. 그런 내게 ‘어린이책 책공구’는 단순한 돈벌이나 인스타그램 속 셀러 이상의 의미를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그것이 나의 종착점은 될 수 없었다. 내가 진짜 바라는 것은 진정한 ‘나’로 살아가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책공구를 하면서 나는 사람들과 책을 나누고, 대화하고, 누군가의 일상에 작은 영향을 주는 일에 보람을 느꼈다. 그런데도 마음 한편에서는 자꾸만 허전함이 남았다. 숫자와 반응, 판매 실적보다 더 본질적인 무언가가 나를 계속 불러내고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왜 이 일을 하고 있을까?’, ‘이 활동을 통해 무엇을 말하고 싶은 걸까?’ 이런 물음들이 내 안을 오래도록 떠돌았다.


그때 깨달았다. 나는 ‘가치’를 추구하는 사람이란 걸. 나는 나답게 나아가고 싶었고 내 삶에 대한 탐구를 멈추고 싶지 않았다. 나는 나를 돌보기 위해 매일 책을 읽고 짧든 길든, 제대로이든 아니든 글을 쓰고 싶었다. 나 자신과 삶, 세상과 나 이 모든 것에 대해 많은 물음표를 품으면서 나만의 답을 찾고 싶었다. 나의 읽고 쓰기와 글맘의 모임들은 이 열망의 동반자들이다. 내가 말하고 싶은 나의 여정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내 안에 존재하는 질문들이다. ‘어떻게 살아야 할까?’ 그 질문에 대한 나의 대답은 글쓰기였고, 글쓰기를 통해 비로소 ‘나’로 존재할 수 있음을 배웠다.


돌아보면 나는 ‘글쓰기’에게 참 고맙다. ‘나 찾기’가 유행이 되어버린 세상에서 그 무엇도 아닌 글쓰기를 만나 종종 먼 길을 우회할 수 있었다. 때론 한 자리에 오래도록 머물면서 발 밑을 깊이 파내려 갈 수 있었다. 손 안의 커다란 세상인 핸드폰을 켤 때마다 놀라고야 만다. 빠른 길을 알려주는 것이 넘쳐나서. 빨리 목적을 달성하는 법, 빨리 많이 책 읽는 법, 빨리 작가 되는 법 등 무수히 쏟아지는 정보와 꿀팁의 향연이다. 가끔은 나도 이 무자비한 대열에 녹아드는 것 아닌가 내가 쓴 글들을 검열하게 된다. 나는 누군가를 주눅들게 하는 정보보다는 좋은 기운을 나누고 싶다. 그 덕분에 마음이 움직이고, 마침내 변화를 겪는 과정이 비로소 가치롭다고 생각하는 사람, 바로 나, 여기 있고 싶다.


‘좋은 엄마’나 ‘성실한 주부’라는 이름보다, 그 모든 이름의 바탕이 되는 ‘나 자신’으로 존재하고 싶다. <주부에서 글맘으로> 이 이야기는 마이크로 인플루언서의 퍼스널 브랜딩, 모임의 리더 같은 결코 거창하거나 대단한 성공의 이야기가 아니라, 매일의 삶 속에서 나를 다시 발견하고, 평범한 일상에서도 의미를 새겨 넣으려는 한 사람의 여정이다.


더욱 단순하게는 30대 후반을 지나 40대의 출발 앞에선 한 여자가 진정한 ‘나’를 만나는 이야기이다. 여전히 식구들의 아침을 챙기느라 동분서주하고, 늦은 밤 아이의 등을 쓸어주며 육퇴를 꿈꾸는 애엄마. 동시에 매일 아침마다 내 안에 존재하는 언어의 우물 앞으로 사각사각 걸어가는 글쓰기를 꿈꾸는 글맘. 매일 글을 쓰고 책을 읽으며 때로는 내가 쓴 글로 돈도 벌지만 ‘작가’는 아닌 나. 그래서 나는 온전히 나를 설명하기 위해 늘 이렇게 말이 길어지고야 만다.


나는 여전히 작은 도전과 실패를 반복하며 산다. 내게 꿈같은 재능이 있다면 좋겠지만 없고 아마 앞으로도 그건 가지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내겐 글을 써 보면서 배운 반복의 힘이 있다. 글쓰기는 일상이라는 이름으로 나를 뒤흔드는 일들 앞에서 나를 빨리 회복하게 만들고, 꿈도 꾸게 한다. 이 모든 것이 내겐 기적 같고, 자꾸만 이 너머로 나아가고 싶어진다. 내가 생각하는 가치를 품고 건강하고 싱싱한 방향으로 나아가면 좋겠다.


주부이자 아줌마에서 글맘이라는 새로운 이름을 얻게 되면서 내 곁에는 나의 글을 매일 읽어주는 사람들이 있다. 내가 언어의 우물 앞으로 걸어갈 때, 그 앞에 머물 때, 머물면서 울때, 울면서 쓸 때, 그 모든 순간들에는 언제나 나의 글을 함께 읽어주는 사람들이 있었다.

'이 사람들은 어디에서 어떻게 내 곁으로 온 걸까?', '마치 나를 다시 살아나게 하려고 사랑을 품으며 온 사람들인가?' 늘 깊이 감사한 마음이다. 그래서 나는 자꾸만 더욱 나답게, 진정한 가치의 방향으로 나아가겠다 다짐하게 된다. 이 다짐을 오래도록 지켜나가고 싶다.


글 쓰는 엄마, 글맘


화, 목, 토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