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을 위한 리추얼 필사 편지 11
당신을 위한 리추얼 필사 편지 11 _ 흙 속에 숨은 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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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저 비터.
최후의 일격, 신의 한 수 등으로 바꿔볼 수 있을 말.
모두가 끝났다고 생각한 순간에도
이를 악물고 한 발 더 나아가는 것.
__<단어의 집> p.56
화원에 가는 것을 좋아합니다.
흙이 뿜어내는 향과 촉촉한 공기 사이에
초록 식물들과 색색의 꽃들이 자리하는 곳.
혼자 천천히 걸으면서 눈호강을 하기에는 이만한 곳이 없는데
식물원과는 또 다른 매력이에요.
식물원은 사람의 손길 하나하나로 다듬어진 편안함이 있지만
화원은 저마다의 에너지로 살아나가는 모습이 주는 미세한 에너지와 감동이 있거든요.
식물들을 바라보면
대단하다는 칭찬을 해주고 싶어져요.
어떻게 자라야 하고, 뻗어야 하고, 피워야 하는지
모든 것을 다 알고 있다는 듯 맹렬한 모습.
누가 내게 "이곳이 길이란다. 이것이 방법이란다."
알려주면 좋겠다는 나약한 마음이 들 때는
언제나
식물들이 버티며 나아가는 모습을 동경하게 됩니다.
신은 왜 식물들에게는 저절로 살아갈 지혜를 주고,
인간에게 한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암흑을 준걸까요?
하긴 모르긴 해도...
그렇기에 우리는 끊임없이 노력하는 것이겠죠.
바라보고, 깊이 사유하고, 문득 깨우치고
그렇게 다시 발걸음 옮길 밝음을 스스로 피워내는 것.
용기, 희망, 화이팅 같은 건
미소 앞에서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어둠 앞에서, 절망 앞에서
혹은 절벽 끝에서인 것 같아요.
그렇기에 인간은 인간다운 것일테죠.
식물들은 앞다투는 경쟁 보다
저마다의 속도로
저마다의 모습으로 나아가는 것 같아요.
한 화분 안에서도 키가 더 큰 녀석, 작은 녀석 있지만
슬퍼하는 기색없이 자기만이 윤을 뽐낼 뿐이죠.
사실 우리도 그럴진데 참 자주 잊는 것 아닐까요?
사람마다 모두 저마다의 속도가 있다고 생각해요.
'인간의 삶이 다양하게 파편화된 시대 속에 살고 있습니다.' 같은 어떤 책에서 본 사회학자의 말을 빌리거나 고려하지 않더라도,
어떤 근본적인 것을 생각하면 우리는 모두 저마다의
속도와 보폭이 있죠.
되려 문제는,
누가 만들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누군가가 만들어 놓은 어떤 기준들이에요.
20대에 이러이러해야 하고, 30대엔 이렇게,
40대 쯤엔 이런 모습이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기준들에 나의 속도를 무작정 끼우려고 하기에 발생하는 것 같아요.
다시 곰곰히 생각해 보아도 우리는 모두
저마다의 인생 안에서
각자의 속도로 나아갈 뿐이니까요.
누군가가 20대의 어느 날 도착한 어딘가에
나는 40대 어느 날에 도착할 수도 있고,
반대로 내가 20대에 겪은 일을
누군가는 40대에 겪을 수도 있죠.
이런 이야기는 너무 거대하니까,
'하루'라는 것에 시선을 두어도 사실 이치는 비슷해요.
모두 자신의 마음이
가장 잘 작동할 수 있는 시간들이 있기 마련이죠.
우리는 가끔,
목표를 세우고 그 목표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새벽에 일어나 책을 읽고,
운동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무언가를 이루기 위해서
무조건 새벽을 고집해야 하는 건 아니에요.
'나'에게 잘 맞는 시간을 찾는 것에 골똘해야 할 뿐이죠.
다만, 어떤 목표를 나보다 먼저 이뤄본 사람이
'새벽에 일어나서 이렇게 해보았더니 참 좋더라.
효율적이더라' 라는 조언이 존재할 뿐.
누구처럼 되는 것. 누구처럼 성공하는 것.
누구의 방법을 무작정 따라하는 것을 벗어나서
'나다운 삶'이 무엇인지 고민하다보면
온전히 나에게 충만한 기준이 보이게 되는 것 아닐까요.
낮에 피는 꽃이 있고 밤에 피는 꽃이 있는 것처럼,
이제 막 싹을 틔우는 잎과
제 에너지를 다 하고
누렇게 타들어가는 잎이 있을 뿐인것처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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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스스로 시련을 택해야 할 때가 있다.
그가 독립된 정신의 소유자라면
그 시기를 놓쳐서는 안 된다.
시련을 회피해서도 안 되며,
이 위험한 놀이를 즐길 줄 알아야 한다.
__<니체 아포리즘> p.230
오늘도 나답게 나아가는 하루 보내시길 바라요!
리추얼 필사, 글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