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의 일상과 20%의 나다움

당신을 위한 리추얼 필사 편지 13

by 글맘

당신을 위한 리추얼 필사 편지 13 _ 80%의 일상과 20%의 나다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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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오바브나무도 크기 전엔 작은 데서부터 시작해요.

__<어린왕자> p.28



온도나 습도에 민감한 게 커피라죠.

그 이야기를 듣고서부터는

아침에 커피를 내릴 때면 늘 코에 집중해요.

오늘의 향은 어떤지 깊이 숨을 들이마셔 보곤 합니다.


며칠 전에 오랜만에 좋아하는 카페에 갔어요.

발길이 뜸했던데에 달리 이유가 있었던 건 아닌데

몇 달 만의 방문이라 서로 반가웠죠.


가장 설레고 반가운 건

단정하게 내어주는 커피예요.

엉김없이 깔끔하고 부드럽게 넘어가는

아이스 카페라테.

이 카페 특유의 깊고 진한 맛과 깔끔함이 좋거든요.

한 모금 마시자마자

"아, 정말 맛있어요."라는 말이

저도 모르게 나와버릴 정도였죠.


“집에서는 마시는 라테는 왜 이런 맛을 낼 수 없을까요?”

순진한 질문에 카페 주인분은 정성껏 대답해 주셨는데

이 이야기가 마음에 오래 남아요.


“에스프레소가 우유를 이기는 힘이 단단하지 않으면 우유에 물탄듯 밍밍해져요.”

우유 80% 에스프레소 20%

섞어 만드는 카페라테이지만

에스프레소가 우유의 맛을 이겨야

비로소 맛있는 라테가 된다고요!

집에서는 그렇게

단단한 에스프레소를 추출할 수 없어서 그렇다고.

커피가 우유를 이기는 힘!


그날 오후 내내

'커피가 우유를 이기는 힘'이란 말을

몇 번이나 곱씹으며 지냈어요.

마치 이것은 제게 이렇게 들리곤 했거든요.

'80%의 일상과 20%의 나다움을 잘 지키는 밸런스가 필요해요'라고.


이 말은 단순히 커피에만 해당하는 게 아닌 것 같아요.

좋은 책을 읽고, 귀한 문장을 만나고

때로 어떤 글을 써 보려고 노력할 때도

내가 그 모든 언어를 이기거나,

감당할 수 있는 힘이 있어야 하죠.

읽은 것들에 휩쓸리지 않고

나만의 목소리로 말할 수 있는 힘.

그것이 바로 내 안의 에스프레소가 아닐까요?


우리 각각의 인생들은

단 하나도 같은 모양이 없어요.

같은 공간, 같은 시간을 공유한 형제자매라 하더라도

분명 우리는 같은 경험,

다른 인생을 살아가게 되니까요.

때문에 인생이란 늘 두렵고 불안하기 마련인 것 같아요.

그러니 의지해 보려고 많은 것들에 기대고 싶어지죠.

하지만 기대기만 하면 쉽게 휩쓸려 버리거나 나의 존재가 흔들려요.

우유만 가득한 라테처럼 밍밍해지는 거죠.

반대로 나의 개성만 강조하면 독불장군이 될 뿐이에요.

에스프레소만 진하게 마시는 것처럼 쓰디쓸 뿐이죠.

우린 내 삶 안에서 잘 살아야 하니까

결국 이 '밸런스'가 필요한 것 같아요.


그리고 밸런스를 잘 맞춘다는 건

나를 둘러싼 일상과

내가 내딛을 발걸음을

스스로 선택하는 과정의 조화이고,

그러려면 나 자신, 스스로의 확신이 필요하죠.


하지만 20%의 에스프레소를 품는다는 건...

제법 아픈 순간도 있더라구요.

혼란스럽기도 하고,

때론 평범함과 동떨어진 생각을 품는지라

외롭기도 하고, 방황처럼 느껴지기도 하고.

하지만,

이 시간만이 나만의 답에 닿는 유일한 방법이란 걸

이제 알 것 같아요.


오로지 나 홀로

어떤 혼돈의 소용돌이를

뚜벅뚜벅 걸어 나갈 수밖에 없죠.

마치 카페 주인이 수없이 많은 시행착오 끝에

완벽한 비율의 라테를 만들어내듯이요.

아프기 때문에 누군가 나타나 나를 안고 휘익,

날아올라 주길 바랄 때도 있지만

건너온 뒤에는 알게 되요.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아서 다행이라는 것을요.


온전히 나 스스로 나에게 주어진 이 혼란을

헤쳐나와서 참 다행이라고요.

마치 바오바브나무도

크기 전엔 작은 데서부터 시작하듯이요.

처음엔 작고 약해 보여도,

매일 조금씩 자라나는 그 과정이

결국 나를 단단하게 만들어주니까요.

그렇게 천천히,

하지만 확실하게 만들어진 나만의 에스프레소가

언젠가 80%의 일상을 이기는 힘이 되어 있을 거예요.

그리고 그때, 비로소 내 삶은 맛있는 라테처럼

깊고 진하면서도 부드러운 맛을 낼 수 있을 거라 믿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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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를 돌아보라.

내가 누구인지, 어떤 삶을 살고 있는지,

어떤 삶을 살고 싶은지 진짜 욕망을 보라.

그러면 희미하던 내가 점차 명확하게 보이기 시작할 것이고,

이것은 생각의 변화로 이어질 것이다.

__<거인의 노트> p.75



오늘도 나답게 나아가는 하루 보내시길 바라요!

리추얼 필사, 글맘

수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