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다페스트의 첫 번째 주일도 채 다 기록하지 못한 상태에서 나는 예정보다 일주일 정도 이른 출장 복귀를 했다. 사유는 물론 코로나 때문이었다. 그리고 지금 나는 자택에서 자가격리 중이다. 퇴근 후 그렇게 발에 불이 나도록 걸어 다니다가 이렇게 방구석에만 있노라니, 확실히 나의 소화기관부터 작동이 둔해졌다. 하루 종일 고작 두 끼만 먹었어도 뱃속은 늘 더부룩한 상태다. 11월의 촉촉한 저녁 공기를 들이키며 겔레르트 언덕을 힘차게 걸어 오르던 시간이 그립다.
자유의 다리에서 바라본 겔레르트 언덕
가능하리라 생각하진 않았지만, 4주 동안 걸었던 부다페스트의 곳곳에 대해 기록으로 남기고자 했다. 물론 한국에서도 부다페스트의 면면에 대해 쓰고, 그려볼 예정이다. 게다가, 불행인지 다행인지, 내년에도 짧지 않은 기간 헝가리 출장이 예정되어있으니, 뭐 방법이 있겠는가. 그냥 상황을 즐기는 수밖에.
마지막으로 쓴 글이 마치시 성당에 대한 글이었는데, 마치시 성당에 대해서는 아직 조금 더 하고픈 말이 남아있어서, 본격적인 글은 다음번으로 미루기로 하고(그게 언제가 될는지는 모르겠지만) 이번에는 가볍게, 내가 휴일 아침마다 가장 마음 편하게 걸었던 겔레르트 언덕과 그곳에서 바라본 시내 전경 사진을 위주로 올려보련다.
저기 금빛으로 빛나는 십자가를 든 자가 바로 성 겔레르트다.
겔레르트 언덕에 대한 역사적 배경은 지난번에 짧게 소개를 한 것 같다. 이 돌덩이 언덕 위에 서린 인간들의 잔혹사는 일단 뒤로 하더라도, 언덕 위에 있는 숲길과 공원은 참 아늑하고 걷기에 좋다. 한국에 있을 때 (지금도 한국에 있지만) 주말마다 집 앞 숲길을 걷는 것을 무척이나 좋아했는데, 마침 호텔에서 이 언덕이 멀리 떨어져 있지 않아, 주말 아침식사를 마치고 한적한 헝가리의 민가를 지나 천천히 언덕을 오르며 숲과 나무 사이로 내려다 보이는 시내 구경하는 맛이 참 좋았다.
아침 안개가 슬쩍 드리워진 풍경이 참 인상적이다.
해가 떨어진 늦은 저녁에도 두 번 겔레르트 언덕을 오른 적이 있다. 물론 산책로를 따라 가로등의 없어서, 낯선 나라의 어두운 숲 속을 걷는 것은 그렇게 만만하지는 않았다. 간혹 튀어나오는 사람(?)에게 '나는 너에게 적대감이 없어'라는 의미로 인사를 먼저 건넬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함께 언덕을 걸은 후배와 나는 걸어가는 곳곳 마다 탄성을 지르고, 마음속의 감정을 과장하며 어두운 길 속에서의 두려움을 떨쳐냈다.
아경은 마치 어반 스케치와 비슷하다. 선택과 집중의 경관이라고나 할까? 대낮 도시경관이 일종의 무한한 데이터의 홍수라면, 스케치는 그중 그림을 그리고 싶은 사람이 선별하여 강조할 수 있다. 야경도 마찬가지다. 강한 조명을 통해 특정한 대상만 강조된다. 나쁘게 말하면 보고싶은 것만 볼 수 있다고 할 수 있고, 달리 말하면 내가 보는 세상 그대로의 모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