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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풀씨 Jan 22. 2024

너에게_너에게 실망하지 않으려고 해

2024 01 22 월

너에게


너에게 실망하는 건 네가 나에게 실망하는 것과 같아서

너에게 실망할 수가 없어.

넌 여전히 나를 모르는구나 하는 마음에

다시 냉정한 나로 돌아갈까 싶기도 했어.

그러나 돌아보니

어느덧 돌아갈 수 없는 먼 곳까지 왔다는 걸 알고 체념해.


우리에게 시간이 그리 많지 않아, 친구야.

우리에게 시간이 그리 많지 않아, 이 바보야.

 

어른이 되면 같이 멀리 가자고 했으면서.

이 먼 시간을 각자 살아왔으면서, 

네 인생의 이쯤에서도 나를 만나보지 않는다면

너는 나중에 어쩌려고 그래?

그러다 나만큼 아파질까 네 걱정을 하는 나를

네가 어이없어한다고 해도 어쩔 수 없어.

지금 너는 내 말이 들리지 않으니까.

다만 네가 나보다 더 아파서는 안 돼.

또 아프지 않아서도 안 돼.


어린 너를 그렇게 아프게 한 나를 용서하기가 힘들어.

내가 그렇게나 사랑한 너한테 그렇게 한 나를 용서하는 게 안 돼.

그런데 이젠 네가 오늘의 나만큼 아프라고 해.

네가 너무 아파서도 안 되고 아프지 않아서도 안 되고.

꼭 나만큼 아파야 나를 만나줄 것 같아.

(만난다고 한들 내가 뭘 어쩔 건데...라고 묻곤 해.

널 붙잡고 울다가 보고 싶었다고 해? 그때 미안했다고?

지금이 내 모습이 부끄럽다고? 그것도 하겠지...)


너를 아프게 할까 말까 생각했어. 

일생에 한 번쯤 미친놈 소리 듣고 말자 하는 생각도 했어.

그렇지만 안 그럴 거야.

그러니까 네가 번복해야 해.

힘들더라도 번복해 줘.


너를 실망할 수 없어. 너에게 실망할 수 없어.

너는 나니까. 너를 아프라고 슬프라고 하는 게 마음 아파.

그런데 네가 사랑하는 것들은 다 거기에 있어.

아픈 걸 통과한 슬픔만이 아름다운 것 속에 깃들 수 있어.

넌 그걸 가져보았을 거야.

그리고 나는 다시 널 더러 아프라고 해. 

그게 나의 선물이 될 거라는 걸 아니까.

나만큼 아프라는 원망이 아니라 

네가 내가 겨우 준비한 아주 작은 아름다움을 받아주길 바라서.

네가 조금 아프길 바라. 슬프길 바라.

미안해.


그럼, 오늘도 너의 마음에게

내 인사를 전하며


잘 자.


2024 01 22 월


지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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