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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풀씨 Aug 21. 2024

너에게_너에게 편지하고 싶지 않았어

2024 08 20 화

너에게


너에게 편지를 쓰기 시작하면 너무 오래 써야 할 것 같아서

매일매일 너에게 편지를 쓰지 않으려 노력했어.


그러다 조금 슬퍼졌지.

다 자란 너를 내가 모른다는 사실이 너무 슬퍼서.

나이 들어가는 너의 모습을 내가 모른다는 게 속상해서.

정말 많이 마음 아팠는데

지금은... 빙그레 웃으며 그저 조금 속상해.


네가 잘 지내는구나 믿게 됐으니까.


너는 언젠가 나의 그림책을 읽게 될까?

30년이 지난 나의 답장은 그림책이 되었어.

그 책을 언젠가 어디선가 네가 꼭 읽게 되길

예전의 너처럼 빌어본다. 

(기억해 봐. 나를 만나게 해달라고 세상 모든 신에게 빌었던 너를 말이야, 제발! : )


나는 네가 나를 반가워해줄 거라 믿었는데... : )

그동안 서로 어떻게 살았는지 말하고 말하게 될 줄 알았는데.

미안했다고. 내가 얼마나 어렸고 이기적이었고

또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서 그랬다고

실컷 변명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작년 11월에 너의 외가댁에도 다녀왔다고.

치앙마이에 가서는 너무나 즐거웠고.

거기에서도 네 생각이 너무 났다고 말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우리도 거기 같이 가보자고. 어디든 같이 가보자고 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우리가 자란 동네에서 1년 동안이나 전시 중이라고도.

말할 수 있을 줄 알았어... : )

다시 데미안을 읽으며 많이 울었다고도...

네가 부른 노래들, 네가 좋아하던 노래들이

나의 플레이리스트라고도...


아무것도 못했네.

나는 그저 아팠고.

엉망이 됐고.

일도 던지고 몸도 축나고 마음은 더 말할 것도 없이 되었다고... : )

그게 2024년의 나라고 : )


그래도 너를 하나도 미워하지 않아.

너를 어떻게 미워해...

너무나 고마운 너인데.


나는 너의 행복이 기뻐.

너라고 믿으며 네가 잘 살고 있구나 하며 웃어.


그거면 돼.

욕심을 내자면 

네가 꼭 나의 그림책을 어디선가 읽게 되는 것.

그리고 널 미소 짓게 해 주었으면...

(울지는 마. 우리는 오해가 조금 있었을 뿐이잖아 : )

너는 한순간도 나에게 소중하지 않았던 때가 없단다.

나는 여전히 그때처럼 철부지야.

어른도 되지 못했는데 할머니가 되어가는 중이야 : )

너를 보지 못하게 된 이후로도

쓸쓸한 날이면, 자신감이 바닥나는 날이면

네가 보내준 편지를 읽으며 힘을 냈어.

그것마저도 항상 떨려서 용기를 내서 

가끔만 펼쳐보았어.

나는 너의 편지를 한 번만 보고도 다 마음에 새긴 줄 알았어.

그런데 30년 뒤에 보니 아니었어.

나는 내가 만든 너의 문장이 아니라

너의 마음을 읽고 읽어야 했어.

하지만 나는 너무 소심해서

어떤 문을 통과할 과감함이 없었어.

그건 지금도 그래. 소심하지. 그런데 이젠 가끔... : )

그러다 너를 잊었고 다시 너를 만났어.

이제 그때의 너는 없겠지만

나는 그때 몰랐던 너의 진심을 이제야 한 자 한 자 알아차리고 있어.

고마워. 너여서 고맙고 그때여서 고맙고

행복해 보여서 고마워.


나에게 네가 있어 빛나고 빛났던 시절.


언제나 지금처럼 건강하고 행복하길.

나의 안녕도 바래줘 : )


너를 만난 걸 후회하지 않아.

너는 나의 축복이었고 동화지.

너는 내 전생애야.

고마워.


미루고 참았던 말이지만

늘 같은 말이지? ^^

언젠가 내 편지들을 읽게 된다면

너는 좀 지루할지 모르겠다.

미안해.


너의 동경도 무지개도 아니었던 것을 사과하고 싶고

물어보고 싶은 것도 있어.

더 할머니가 되면 만날 수 있을까? : )


내일 시사회를 네가 우연히 듣게 된다면 얼마나 행복할까... : )

그걸 듣고 네가 나를 용서해 준다면...

그런 우연은 없겠지?


잘 자.


2024 08 20  tu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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