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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트너 Aug 04. 2022

자동차운전면허단상自動車運轉免許斷想

시시콜콜한 이야기


삼십 육년 남성으로 사는 동안 운전면허가 없었다. 조작은 고사하고 브레이크에 발 올려본 경험 자체가 전무했다. 왜 그랬을까?



사실 왜 그랬을까를 생각한다는 것 자체가 별난 것일 수 도 있다. 하지만 나이 서른을 넘기면서 어느 집단에 있을 때, 저는 운전을 할 줄 몰라요. 면허도 없고 차도 없어요. 라고 하면 그냥 대수롭지 않게 넘어가기 보다는 진짜요? 정말요? 하고 되묻는 경우가 훨씬 많았던 것이 사실이다. 말하는 입장에서도 아침에 샌드위치 먹었어요. 처럼 아무렇지 않은 대답의 느낌이 아닌, 저는 커피를 전혀 마시지 않아요. 처럼 어딘지 별난 대답을 내놓는 것 같은 느낌. 전 군대 안 갔다 왔어요 처럼 어떤 식으로든 예상 밖의 지점을 건드린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꺼내놓게 되는 그런 말이랄까.



그만큼 운전은 전세계 사람들 모두에게 통속적인 행위 중 하나일 것이다. 그럼에도 삼십 육년 간 운전대를 잡지 않고 살았으니, 한 번쯤 스스로 왜 그랬을까를 생각해 보게 되는 순간이 찾아온다. 



오늘, 그러니까 2022년 8월 4일 목요일. 2종 보통 면허 도로주행 시험에 합격했다. 면허를 딴 것이다! 날짜 상으로는 열흘 걸렸고, 연수와 시험 본 날만 합치면 7일이 걸렸다. 나는 이 7일의 시간 동안 나의 삶과 운전에 대해 오만 잡스러운 생각들을 하게 되었다. 최종 합격을 하고 도장 찍힌 응시원서를 들고 학원 밖을 나오면서 푸른 하늘을 보는데 기분이 이상했다.



누가 왜 면허를 안 따느냐, 운전을 안하느냐고 물으면 글쎄, 바바라 월터스(Barbara Walters)도 운전 면허가 없다는데? 카스트로를 곁에서 직접 인터뷰 하고 모니카 르윈스키 인터뷰로 미국을 뒤흔들어놓은 그 분 마저도. 그 뿐이랴, 티나 페이(Tina Fey)도 운전 할 줄 모른단다. 리키 저베이스(Ricky Gervais)도 운전 못 한다는 말이 있다. 뭐, 사실 이런 건 스티븐 킹이 유혹하는 글쓰기에서 말한 '알코올 중독자들은 네덜란드인들이 제방을 쌓는 심정으로 변명을 준비한다.'류의 농담에 불과하다. 운전 못하는 게 흠은 아니지만 저 분들은 어차피 전용 드라이버가 있는 분들일텐데 라이센스가 문제 겠는가.



그 보다는 내가 자라는 동안 차가 없으니 불편하다던가 차 한 번 몰고 싶다 혹은 속도를 내 보고 싶다라는 생각을 단 한 번도 가져본 적이 없었고, 서울에서 나고 자라 버스 지하철 택시 등을 타고 다니면 불만스러울 게 전혀 없었기 때문에 관심이 가질 않았다는 게 좀 자연스러운 변명일 것 같다. 실제로 그랬다. 살면서 아, 차가 있고 운전을 하면 좋을 텐데 라는 생각을 해본 건, 밤 12시 쯤에 냉장고를 열었는데 먹고 싶은 쥬스가 다 떨어졌을 때? 차타고 10분쯤 가면 새벽까지 하는 심야 대형 마트가 있는데(거기서만 파는 것!), 걸어가자니 30분쯤 걸리는 상황이라 포기해야만 했을 때 정도. 실제로 그랬다. 



서른이 넘어가면서 부모님이 노쇠하시고, 또 주변인 친지 가운데 아픈 사람도 나타나고 하니까, 혹시 위급한 상황이라도 생기면 내가 운전을 해야 대처할 수 있겠다 하는 생각이 들긴 했다. 하지만 콜택시를 부르거나 정말 다급할 땐 경찰이나 구급대원에게 연락을 하면 된다는 생각도 동시에 했기 때문에 이후로도 오랫동안 뚜벅이의 삶을 살았다. 그렇다고 내게 자가용을 구매하거나 운용할 수 있을 만큼의 여력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무엇보다 가장 가슴 깊은 곳에 있는 변명 사항은, 내가 겁이 많고 기계 다루는 것에 영 서툰 사람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속도가 빠른 걸 절대 좋아하지 않는다. 빨리 달리는 거 무섭지 않은가? 남중 남고를 나오고 수많은 남자들과 어울리면서 관찰해 본 바, 물론 나처럼 속도감을 싫어하는 사람도 있긴 하지만 스피드 내는 것을 좋아하고 차를 좋아하며 기기 다루는 것에 별 거부감이 없는 사람들이 훨씬 많았다. 하지만 난 아니었다. 유아나 어린이 시절 남자아이라면 보통 공룡파와 자동차파가 있다고 하는데, 나는 공룡파 동물파였다. 아니 지나가는 자동차 보면 이름 외우고 디자인 외우는 것을 하긴 했는데 그렇다고 운전이 궁금하진 않았다. 고등학생이 되니까 3학년이 되서 운전을 하는 친구들이 꽤 많이 생겼고, 실제로 차를 타고 등교하거나 원동기 면허를 따서 오토바이를 타고 다니는 학생들이 여럿 있었는데, 나는 조금도 흥미라는 게 생기지 않았다. 필요한 상황도 안 생기고 흥미조차 전혀 없으니 드라이버 라이센스가 내 삶에 들어올 자리가 있을리 만무다. 



기계는 더욱 그렇다. 왜 그런 사람들이 있다. 모니터에 빨간 선을 꽂아야 하나? 하얀 선을 꽂아야 하나? 둘 다 꽂아야 하나? 어디에 꽂아야 하나? 하다가 시간 오래 걸리고 결국 틀리게 연결하는 사람. 그게 나다. 영화학과를 다니면(영화를 전공했다) 여러 기계들을 조작할 일이 있는데, 정말 아무리해도 익숙해지지 않았다. 잠깐만 배우면 간단한 촬영을 할 수 있는 카메라나 녹음장비도 다룰 줄 몰랐고 배워도 금세 잊어버렸다. 붐마이크 오래 들고 있는 일이나 차량 통제, 문서 출력 같은 것만 했고, 그런 일엔 자신 있었다. 이십대 때 만났던 내 친구 중 한 명이, 걔도 남자애였는데 나처럼 운전 면허에 조금도 관심 없다는 녀석이 있었다. 친구는 자기 표현이 좀 과격했는데 뭐라고 까지 했냐면 '난 운전 하는 일엔 쥐좆만큼도 관심 없어.'라고 했다. 비유가 상스러워서 지금까지도 그 문장을 기억한다. 몹시 웃긴 표현이라 생각했지만 한 편으로는 그 뻔뻔함이 부럽기도 했다. 나는 뭔가 모니터에 선 연결하는 거 매번 헷갈릴 때도 그렇고 운전할 줄 모르거나 관심 없는 내 상태를 떠올릴 때면 창피하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고(그렇다고 딸 마음이나 용기는 없다), 자격미달 남성이라는 생각도 하면서 스스로를 주눅들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내가 알기로 운전에 쥐좆 만큼도 관심 없다던 그 친구 지금까지도 면허 없다.



그러다가 갑자기 면허 학원에 등록을 했다. 알콜중독자들이 네덜란드 인이 제방을 쌓는 심정으로 술 마실 이유를 찾듯, 바바라 월터스가 면허 없다는 사실을 굳이 알아내 기억하는 나였지만, 어쨌든 등록을 했다. 학과 시험은 작년에 봐두었다. 사실 재작년에도 학과 시험을 봤었는데, 1년동안 기능시험을 보지 않아서 휴지 조각이 되는 바람에 작년에 재응시했다. 어플로 공부를 했고 좋은 성적으로 붙었다. 뭐, 드라마틱한 이유는 없었다. 이렇게까지 면허 없는 나에 대해 장황하게 늘어놓을 만큼 운전이라는 단어는 정말 애증의 것이었는데, 허무하게도 면허를 따야지, 하고 마음 먹은 것에 별 이유가 없다. 인생이 그런 것 같다. 뭐 대단한 거 있을 것 같아서 까보면 별 거 없는 경우가 더 많다. 그냥 이상하게 뭔가에 이끌리듯 이젠 면허증 좀 있으면 어떨까 생각을 했고, 다른 사람이 운전하는 차 뒷좌석이나 조수석에 타고 있는게 재미가 없기도 했고, 그냥 그랬기 때문이었다. 딸 때 됐지. 딱 그 정도 생각? 돌이켜 보면 아마도 요 몇 년 사이에 스트레스가 굉장히 심했는데 예전같지 않은 정신상태나 심리상태, 무의식의 어떤 것이 나를 이끌었을 수도 있다. 그럼 정말 딸 때 된 거라는 말 밖에 할 수 없는 거지 뭐. 내가 사주가 불이고 금도 많아서 약간 어지러운 형국이라는데, 그래서 쇠랑 그렇게 안 친했는지는 모르지만 어쨌든 이제 대운이 바뀌어서 그랬을 수도 있고, 뭐. 이렇게 저렇게 설명을 해도 결국은 딸 때 되서 그냥 등록했다, 뭐 그런 느낌이다.



면허 시험도 엄연한 국가고시다. 철저한 체계가 있고, 지독한 타성에 젖어 있다. 그리고 처음 경험하는 사람을 주눅들게 만든다. 국가고시 혹은 법에 의해 수행해야 하는 어떤 의무행동에는 특유의 분위기가 있다. 네모반듯한 것이 어딘지 모르게 지루한 느낌, 아니면 수시로 주변 눈치를 보게 되는 불안한 공기 같은 것. 사실 학원에 등록을 하고 연습을 할 때만 해도 강사와 나, 둘 만의 연수 시간이었기 때문에 나름 편안한 느낌 속에서 진행이 되었는데 기능 시험 보는 당일, 아 그래 이거 국가고시구나 하는 생각이 별안간 번개 치듯 찾아왔다. 모이라는 곳에 차례대로 모여 등록을 하고 순서를 기다리는 대기실의 공기. 자꾸만 먼저 시험을 보고 있는 사람들을 둘러보며 잘 하나 못 하나 나랑 비교하며 관심 가지게 되는 괜한 불안심리. 이름만 호명 되도 네! 하고 병아리처럼 반응하는 수험생 무리 속에서 열외 되지 않으려는 생존본능. 이건 나라에서 시키는 어떤 종류의 시험이나 의무를 수행할 때 날카롭게 찾아오는 심상들이다. 



기능시험을 치를 때 나는 해당 타임 사람들 가운데 꽤 뒷순서 였다. 대략 열 다섯명 정도 있으면 열 두번째 순서 정도. 앞 사람들이 잘했는지, 누가 붙었고 혹은 떨어졌는지를 어느 정도 바라보면서 대기를 했다. 학원에 올 때만 해도 눈에 보이는 다른 원생들이 대개 갓 열 아홉 스물 되어 보이거나 방학을 맞아 면허를 따려는 학생들 같은 느낌의 분들이 대부분이어서 거의 다 젊은 분들만 계실 거라고 생각했는데, 시험 대기 장소에 모인 수험생들은 저마다의 나이가 제각각으로 보였다. 그 가운데 가장 나이가 많아 보이는 아저씨 한 분이 계셨다. 시험을 보기 전에 자신의 생년월일을 호명하며 감독관에게 알려줘야 하는데 얼핏 들리기엔 60년대생이셨던 것 같다. 응시원서를 들고 계신 걸로 보아 재시험 보시는 분이었다. 이미 대기실에서부터 표정이 아주 굳어 계셔서 긴장이 많이 되시는 구나 싶었다. 조금 있다가 그 분이 시험을 보시는데 아니나 다를까 직각주차 코스에서 완전히 방향을 잘못 잡아 이내 실격이 되시고 말았다. 그 분은 대기실에 머리부터 목, 앞가슴 할 거 없이 상반신 전체가 비오듯 쏟아지는 땀으로 뒤범벅된 상태로 복귀하셨다. 안쓰럽기도 하고 나도 실수할 것 같아 걱정이 되고 참 많은 생각이 들었다. 



나는 기능시험만큼은 정말 한 번에 붙고 싶었다. 이 단순하고 기본적인 과정을 처음부터 다시해야 한다는 것 자체가 생각만 해도 스트레스 였다. 나중에 생각한 거지만 주행시험은 도로의 상태나 차의 상태가 그 때 그 때 다를 수 있고 돌발변수가 많아서 탈락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기능은 모든 게 정해진 것이라 떨어지면 상실감이 클 것 같았다. 마지막 모의 연습 때 직각주차 후 출발하는 코스에서 사이드 브레이크를 반 밖에 안 내려서 실격당한 적이 있었는데, 이렇듯 생각지도 못한 부분에서 실수를 할까봐 긴장을 참 많이 했다. 다행히 돌발 상황(급브레이크 밟고 비상등 켜야 하는)이 시작하자 마자 등장해서 경사코스 이후로는 오로지 해당 코스에 집중하며 진행할 수 있었다. 직각주차코스는 정말 누가 이렇게 악질적인 코스를 시험에 넣어놨는지는 모르겠지만 - 물론 예전에는 S자 코스나 평행주차 코스도 있었지만 - 공식대로 수행하면서 감점없이 통과를 했고, 교차로까지 문제없이 통과한 이후로는 긴장을 풀 수 있었다. 결국 만점으로 합격했다. 대단한 건 아니지만 뿌듯하기 그지 없었다. 난 빨간 선 하얀 선도 구분 못하는 사람이었고 빠른 것도 무서워하며 쇠와 친하지 않은 종자였기 때문에.



왜 인지는 모르겠는데 기능시험 합격한 날, 그러니까 뭔가 운전을 위한 최소한의 기술 어떤 것을 습득한 날, 군대 생각이 많이 났다. 특히 군대에서 총 쏘는 법 배웠던 날이 기억났다. 내가 다뤘던 총은 M-16이었는데, M-16 쏘는 법 배우고 사격을 처음 실시해 본 그 날은 정말 15년이 넘게 지났음에도 생생하게 기억난다. 그만큼 충격적인 경험이었다. 사람을 죽이기 위해 개발된 살상도구 사용법을 배운 것이니 그럴만 했다. 훈련병으로 사격장에 처음 모인 남자들은 그가 어디에서 무엇을 하다 온 사람이든지 간에 상관없이 거의 대부분 같은 표정을 짓고 앉아 있었다. 긴장된 채 모든 감각이 예민해져 있는 그 표정. 사격에 대한 설명을 듣고 머리로 익히는 그 퍼렇고 무거운 수 백개의 눈동자들. 산을 깎아 만들어 음습하게 패여 있는 사격장에는 다른 곳에서 절대 경험할 수 없는 기묘한 분위기가 있었다. 방아쇠를 당기는 사수와 발사를 확인하는 부사수 사이의 이상한 연대의식은 우리가 느낀 긴장감 만큼이나 강렬하게 형성되었다. 거대한 격발음에 먹먹해진 고막을 달래며 내무반으로 돌아오는 동안 기분이 참 이상했다. 정말 엄청난 것을 배웠구나 싶었고, 이제 내가 M-16 사격 방법을 알고 있고(마지막 실탄 훈련이 끝난지도 아주 오래 됐지만 지금도 총을 주면 쏠 수 있는데, 의무로 총을 쏴 본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가능할 것이다), 이게 사람을 죽이는 기술이라는 사실이 충격적이었다. 그 날 훈련일지에 나는 긴 일기를 썼다. 군대 오기 전에 봤던 우라사와 나오키의 만화 <마스터 키튼>에 보면 그런 장면이 나온다. 참고로 <마스터 키튼>의 주인공인 다이치 키튼은 SAS, 그러니까 영국 육군 최정예 특수부대에서도 에이스 였던 캐릭터이고 그의 생존능력과 전투에 대한 지식은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수준이다. 그런 키튼이 마지막 화에서 실전에 투입되는데 막상 실제상황 속에 놓인 키튼이 총으로 악당을 쏴야 하는 순간, 방아쇠를 당기지 못하는 것이다. 분명 다급한 상황 속에서 총을 쏴서 사람을 맞춰야 하고 그 일을 세상 누구보다 전문적으로 할 수 있는 사람이 쏘지를 못하는 것이다. 키튼이 왜 그랬을까? SAS에서도 최고의 솜씨를 자랑하던 그가 깨닫게 된 것은 무엇일까? 마스터 키튼이라는 작품 전체의 테마는, 말 그대로 마스터인 키튼이 총을 쏘지 못하는 그 이유 속에 모두 담겨 있다. 훈련소에서 처음 총을 쏘는 법을 배운날 나는 왜 인지 모르게 이런 키튼이 생각났다. 그래서 그 날 일지에 나는 사람 죽이는 법 한 가지를 배웠고, 키튼이 왜 마지막 순간에 총을 못 쏘는지 이제 조금 생각해 볼 수 있게 되었다는 내용의 글을 썼다. 그랬더니 다음 날 나랑 한 마디 말도 섞어 본 적 없던 무뚝뚝한 성격의 당시 소대장이, 아주 장문의 글을 특별히 내 일기 뒤에 덧붙여 써주셨다. 훌륭한 글이다. 라는 문장으로 시작하는 일종의 칭찬이었다. 최고의 공격은 최고로 방어하는 것이기 때문에 사격을 배웠다고 생각하라는 내용도 있었던 것 같다. 더불어 카와구치 카이지의 <침묵의 함대>라는 만화도 꼭 읽어보라는 말도 써 있었다. 나는 오 ... 소대장 이 사람 만화 좀 보나 본데 ... 생각보다 재밌는 사람이다, 라는 생각을 했었고 침묵의 함대는 제대 후에 읽어봤다. 그 때 그 훈련일지는 아직도 집에 보관하고 있다.



운전을 하면서 이 거대한 차를 다루게 되니 과거 생각이 났던 것 같다. 핸들 돌리면서 이런 생각하고 앉아 있었으니, 이래서 그 동안 면허를 안 따고 있었지 싶다. 하지만 알다시피 차는 너무 편리한 도구인 동시에 치명적인 흉기다. 자동차를 조작하니 신기하다는 생각과 동시에 무섭다는 생각을 아마 많이들 하지 않을까 싶은데, 참 보통 아닌 기술을 배운 건 틀림 없고 긴장한 채 순서를 기다리거나 다른 사람이 어떻게 하고 있는지 바라보는 짙푸른 눈동자들이 모인 공간에서 십 수년 전 사격장의 냄새를 맡은 건 과연 맥락이 있는 상황이었다고 말하고 싶다.



남자가 1종을 따야지 라는 말은 예전에 얼핏 들어본 적이 있긴 하지만 어쨌든 나는 가볍게 무시했다. 물론 아직도 스틱을 움직인다는 게 신기하기도 하고 무한도전 스피드 특집 때 수동차량을 운전하는 유재석님이 멋있어 보이기도 했고, 최근까지 연비가 좋다는 이유로 수동 차를 운전하시는 모 대학 교수님 차를 얻어타면서 신기했던 경험 같은 것이 1종을 따볼까 하는 생각을 잠시 하게 만들긴 했지만, 기계랑 내가 얼마나 사이가 나쁜지를 다시금 생각하며 자신 있게 2종 보통 자동에 도전했다. 옛날에 패리스 힐튼이 TV프로그램에 출연하며 유명해지기 시작하던 때, 그러니까 니콜 리치와 함께 아르바이트 경험하는 프로그램 속에서 블랙코미디스러운 시츄에이션으로 신선한 충격을 보여주던 시절, 내가 도무지 그녀에게 이해가 가지 않는 게 두 가지 있었다. 하나는 그녀가 배우 활동을 좋아한다는 것, 그래서 하우스 오브 왁스 같은 공포 영화에 출연하면서 힘든 촬영도 마다하지 않았다는 것. 아니, 같은 옷을 두 번 입지 않는다며, 이불 개는 것 빼고 자신이 직접하는 노동은 거의 없다며 이미지 메이킹을 한 그녀가 - 물론 언플이겠지만 어쨌든 다이아수저인 것은 맞으니 - 이토록 힘들고 지옥같은 영화 촬영 혹은 배우 활동은 왜 그렇게 하고 싶어할까. 이 모순이 꽤 지독하다고 생각했고, 다른 하나는 그녀가 스틱차량 모든 것을 좋아한다는 것이었는데, 역시 이해가 가지 않았다. 어느 인터뷰에서 그녀는 스틱 운전이 심심하지 않고 재밌다고 했는데 처음 운전을 접하는 단계에서 생각하면 이렇게 어렵고 번거로워 보이는 스틱 운전을 하필 세상에서 귀찮은 일 제일 싫어하는 사람이 재밌다고 하니까 참 이해가 안 갔던 거다. 언젠가, 나도 언젠가 클러치를 밟아볼 날이 올까? 그래서 개그맨 이진호 님이 어느 예능 프로에서 운전 재미있게 하는 어떤 분 썰을 풀면서 그 분이 과속 방지턱 넘으며 점프 상태에서 반클러치 밟고 기어 바꾼다고 하자 패널들이 다들 박장대소 했는데, 나도 그 말에 껄껄 웃을 수 있게 되는 상황이 올까? 아직도 가끔 이런 잡생각을 한다. 하지만 결론은 2종 보통 자동이다. 어쩔 수 없다. 



도로주행 연수를 3일 했는데 신기하게도 3일 내내 비가 왔다. 그것도 많이 왔다. 특히 마지막 날은 차선이 도무지 보이지 않아 답답한 마음에 내가 스스로 와이퍼를 3단에 놓고 운전을 했다. 규정 연수 시간 내내 비 맞으며 연습한 사람은 아마 드물 것이다. 또한 최대한 빨리 끝내고 싶은 마음에 제일 빠르게 진행할 수 있는 시간을 신청했더니 3일 동안 새벽 5시 45분에 시작하는 타임으로 연수를 진행했다. 그러니까 그 동안 나는 새벽 4시 몇 분에 일어나 겨우 잠을 깨가며 학원에 도착해 아직 해도 제대로 안 뜬 시간에 운전을 시작한 것이다. 날까지 흐렸으니 무조건 전조등 키고 드라이빙 해야 했다. 사실 기능시험 연습도 이틀 동안 아침 6시에 진행했기 때문에 어느 정도 새벽이 익숙해지던 참이긴 했다. 놀라운 것은 내가 다녔던 학원에 5시 40분쯤 도착하면 이미 그 시간에 연수 받으려고 나온 학생들이 대여섯명씩은 꼭 있었다는 점이다. 새벽 연습은 도로에 차가 별로 없다는 장점이 있어서 의외로 신청하는 사람들이 종종 보였다.



하지만 도로주행 시험 당시에는 새벽에 연수를 한 게 단점으로 작용한 부분도 있었는데, 대개 시험은 빨리 진행해도 9시, 10시 이므로 새벽과는 도로 상태가 판이하게 달라 적응을 빨리 해야 한다는 부담이 존재했던 것이다. 실제 시험에서 또 하나 나를 괴롭게 했던 것은 3일 동안 연습했던 차량과 검정 때 몰고 나간 차량의 엑셀 유격 차이가 상당히 많이 났다는 점이었다. 나는 검정 때 두 번째 순서였기 때문에 처음 시험 보는 분에 대한 참관을 먼저 한 뒤 시험을 보았다. 앞서 보신 분의 드라이빙을 찬찬히 보면서 나도 머리 속으로 이미지 트레이닝을 하는데, 이 분이 운전을 진짜 완벽하게 잘하셨다. 내가 봤을 때는 감점요소도 없고 안전하게 주행을 잘 마치셔서 복귀를 하셨는데, 너무 훌륭하게 하셔서 비교되면 어쩌나 나는 저렇게 잘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에 안 그래도 치솟던 긴장감이 넘쳐 흐를 정도였다. 그런데 오히려 검정해주시는 감독관님이 위반 혹은 실격 사항 없어 합격은 주지만 핸들링이나 이것저것 조작 미숙 지점이 많으니 연습을 많이 해야 한다고 잔소리를 하시는 게 아닌가. 아니 이렇게 잘했는데도 지적을 하시다니, 내 운명은 어찌될 것인가. 대단한 긴장 속에서 운전자 자리에 앉아 페달에 발을 얹어 보고 의자 조정을 한 뒤 시동을 걸었다. 출발 신호와 함께 브레이크에서 발을 떼는데, 이 때만 해도 별 문제는 없었다. 그런데 학원을 빠져나와 직선 주로에 접어들어 엑셀을 밟는 순간, 느낌이 너무 이상한 거다. 분명 연습한 차량은 이 정도 밟으면 20km/h가 나왔는데, 이 차는 그만큼 밟으면 아예 엔진이 돌지도 않는 느낌이 든다. 어디까지 밟아야 하나, 쭈뼛거리면서 더 깊게 밟아 보니 이제야 차의 속력이 올라간다. 너무 허공을 밟는 느낌으로 유격 상태가 달라서 초반에는 엑셀 위치를 더듬어 찾았을 정도로(안 밟은 줄 알고) 차의 컨디션이 상이했다. 게다가 도로 상태는 새벽과 완전히 달라서 차도 많고 보행자도 많았으며 자전거가 길막하는 상황도 발생하는 등 변수의 연속이었다. 이래서 어른들이 운전은 익숙한 차로 내가 아는 길을 타면누구나 편하게 가는데 처음 모는 차에 모르는 길이라면 베테랑도 어렵다고 하는 구나 싶었다. 최대한 잘한다고 했지만 방향 지시등을 우회전 목전에서 점등하거나 정지하고 기어를 중립에 놓은뒤 다시 출발할 때 기어를 안 바꿔서 차가 안 나가 당황하는 등 우스꽝스러운 순간을 몇 차례나 만들어냈다. 처참한 기분으로 어찌저찌 학원에 복귀를 했고, 주차를 마칠 때까지 감독관님이 너무 조용하셔서 얼마나 크게 혼날까 싶은 마음에 두근두근하기 짝이 없었다. 혹시나 감점 누적으로 탈락인가 하는 생각까지 하면서 모든 것이 혼돈의 무저갱으로 떨어지려던 그 때!


"뭐... 별로 얘기 할 게 없어요. 워낙 잘하시네요. 합격입니다."  


라는 감독관님의 말이 들렸다. 기분이 좋다 못해 어이가 없을 지경이었다. 나 망하지 않았나? 흠 ... 근데 뭐 아니라고 잘했다고 하니까 됐지! 그럼 된 거 아닌가? ... 이렇게 다 된 건가? 내가 면허를 땄나? 그랬다. 이렇게 끝이었다. 나는 2종 보통 자동 면허를 획득했다. 삼십 육년 간 면허가 없었으며 바바라 월터스가 면허가 없다는 사실을 꾸역꾸역 기억하던 겁 많은 기계치인 내가. 이렇게 자동차 운전면허를 따버렸다.



운전을 잘하시는 아버지는 어렸을 때 부터, 차는 기계 이므로 절대 백퍼센트 믿어서는 안된다는 것을 누누이 강조하셨다. 그러므로 모든 운전의 기본은 방어 운전이다 라는 말을 누나와 나는 초등학생 때부터 들어왔다. 그런데 이제 아주 많은 시간이 흘러서 이토록 거대한 쇳덩어리 다루는 기술을 터득하게 되었다. 그것도 국가가 인정한.



작고하신 이수인님의 동요 <목장의 노래> 2절을 보면 '하늘은 푸른 하늘 가슴이 뛴다'라는 구절이 있다. 이 동요는 가사를 따져보면 화자의 사랑 이야기인데, 너와 함께 옹달샘에서 같이 좋은 시간을 보내고 나니 하늘이 참 푸르렀다는 의미를 담은 부분이다. 나는 하늘은 푸른 하늘 이라는 이 간단한 표현을 참 좋아한다. 맑은 날 하늘은 무조건 푸른 하늘인데 이게 새삼스레 다시 보인다는 건 그만큼 가슴이 벅차고, 다시 태어난 기분을 느끼고 있다는 것의 방증이기 때문이다. 면허 따는 일이 뭐 이토록 긴 글을 쓸 만큼 별 일 이었던가. 어차피 실전 운전 하려면 하고많은 시간을 보내야하며 부친의 말대로 좋은 만큼 위험한 것이 운전일진대. 허나 스피드에 지질했던 한 사람이 몰랐던 것을 새로 배우고 잠재적으로 숙원해 왔던 단계를 하나 넘으니 이쯤 되면 학원문을 나와 하늘을 보니 푸른 하늘이었다 라는 문구 한 줄 적어보고자 목장의 노래 정도 끌어다 와도 괜찮지 않은가 싶기도 한 것이다.



따릉이를 타고 작업실로 오는 동안 이온음료 광고에 나오는 모델처럼 바람에 귀밑머리 날리며 미소지었다. 물론 마스크에 가려져 있었기 때문에 그렇게까지 정신 나간 자로 보이진 않았을 것이다. 십 년 전 촬영감독과 제주도 여행가서 우도까지 힘들게 도착해서는 면허 없다고 나 혼자 ATV 대여도 못하고 처량했던 그 설움이여 이제 안녕. 오늘은 사람 많은 대형 커피숍에서 누구보다 큰 목소리로 메뉴를 주문할 것이다. 저녁엔 비록 LDL 콜레스테롤이 꽤 높은 사람이지만 돈까스를 마음껏 먹고 말 것이다. 왜냐하면 오늘 빨간 선 흰 선도 구분 못하던 겁쟁이가 자동차 운전 면허 시험에 합격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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