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Holdovers>(2023, 알렉산더 페인)
<바튼 아카데미 The Holdovers>(2023)를 보면서 좀 귀한 영화라는 생각을 했다. 우선 작품이 필름 룩이다. 물론 진짜 필름으로 찍은 건 아니고 아리 알렉사로 찍고 빈티지 룩을 냈다고 나오지만, 디지털 카메라 세상이 오기 전 필름 영화를 큰 스크린에서 볼 때의 느낌이 나서 좋았다. 요즘은 아무래도 이런 기분이 좀 귀해진 시대다.
촬영도 음악도 군더더기 없이 클래식한데 무엇보다 각본 구성과 테마가 대단히 클래식이다. 정확히 예감대로의 전개가 펼쳐진다. 영화사 로고를 옛날 것으로 삽입한 것에서부터 세부적인 부분까지 헐리우드 클래식의 정서를 총체적으로 모방하고 있다. 시대극이라는 부분도 그렇고 아무래도 미국 사람이 보면 더 좋아할 요소가 많다고 볼 수 있다. 크리스마스 배경의 클래식이니만큼 프랭크 카프라도 생각나고 빌리 와일더도 생각나고 그 밖에 여러 스크루볼 코미디들의 잔상이 스크린에 감돈다. 근래들어 찾아보기 귀해진 경향이다.
폴 지아매티의 연기는 영화 전체를 이끌고 나가는 힘이 있다. 캐릭터 분석이 정확하고 무엇을 해야하는지 똑똑히 알며 앙상블 수준을 끌어올리고 있다. 킬리언 머피에게는 미안하지만 올해 오스카는 폴 지아매티가 차지할 것이다. 그는 로저 페데러가 테니스를 치는 것처럼 그렇게 연기를 한다.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괴물>을 보고 누가 당대에 이만큼 훌륭히 연출하는 감독이 있는가에 대한 말을 했고, 아키 카우리스마키의 <사랑은 낙엽을 타고>를 보고 나는 현재 이 정도로 대단한 작가주의 감독이 있는가에 대해 말을 했다. 알렉산더 페인에게도 어느 정도 적용되는 말이다. 스크루볼 코미디의 적자, 프랭크 카프라의 현존. 이 정도로 자기 색이 선명하고 빼어난 작품을 뽑아내는 연출자가 있나.
물론 <바튼 아카데미>에는 공동체-연대의식에 대한 시의적인 고민이 담겨 있다. 가족주의 이데올로기의 한계와 대안을, 가족(그리고 계급)을 상실한 인물들이 끌고 나가는 이야기 속에서 제안한다는 점이 이 작품을 헐리우드 클래식의 답습이 아니라 21세기에 필요한 뉴 클래식의 진보적 태도를 드러내는 영화로 보이게 한다. 이 정도면 충분히 귀하다고 할 수 있지 않나.
+ 게다가 알렉산더 페인은 월드와이드 1억달러 이상 흥행작이 여러 편인 감독인데, 기사와 박스오피스모조 자료에 따르면 <바튼 아카데미>도 현재 약 3천5백만 달러 수익으로 영리하게 손익분기점을 넘은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이는 아카데미 시상식 이후 훨씬 더 늘어날 것이다. 그 점이 고무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