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렉스 호놀드의 프리솔로와 돌아버린 눈깔

시시콜콜한 이야기

by 레트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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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데미 다큐멘터리 상을 수상한 <프리솔로 Free Solo>(2018)는 요세미티 공원의 엘 캐피탄 880m 절벽 코스를 로프를 비롯한 안전장치 하나 없이 맨몸 등반하는 알렉스 호놀드의 이야기다. 다큐의 후반부에 알렉스가 절벽을 오르는 장면이 길게 나오는데 그것은 어떤 공포영화보다 무섭고 폭력적인 시퀀스였다.



그러나 정작 알렉스 호놀드는 전진을 두려워하지 않는 모습이었다. 실제로 작품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알렉스의 눈이다. 그의 눈빛은 그야말로 미친 사람의 것이었다. 속된말로 눈깔이 돌았다.

(그는 실제로도 정상은 아닌데, 다큐 초반에 병원에서 뇌검사를 받는 장면이 있고, 두려움을 느끼는 어떤 부분이 정상인과 다르다는 판정을 받는다.)



그런 그가 오늘 대만의 최고층 건물 프리 솔로에 성공했다. 심지어 넷플릭스에서 녹화-생중계를 했다!(법무팀이 바빴을 것같다..) 오늘 그 소식을 들으니 프리솔로 다큐 속 그의 돌아버린 눈깔이 다시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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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아카데미 장편 다큐멘터리 상을 수상한 제임스 마쉬 감독의 <맨 온 와이어>는 필립 쁘띠에 대한 이야기다. 필립 쁘띠는 70년대 월드트레이드센터 양 건물 옥상에 줄을 매달고 역시 안전장치 하나 없이 곡예하듯 그 줄을 타고 건넌 인물이다. 작고한 소설가 정미경은 자신의 소설 서문에서 필립 쁘띠와 그 행동의 경외감에 대한 단상을 기록한 적이 있는데, 나도 <맨 온 와이어>를 보고 그 광기에 압도당했던 경험이 있다.



필립 쁘띠의 가장 미친 점은 한 번 건넌 것이 아니라, 여러번 왕복하며 줄의 중간 쯤에서 여유있게 줄에 잠시 눕는 퍼포먼스를 했다는 점이다. 이 다큐를 보면 필립 쁘띠 역시 돌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 눈이 영락없는 광인의 것이다.



AI는 이런 눈깔을 가질 수 없다. 그들의 논리에는 이 돌아버린 눈깔이 끼어들 선택지와 자리가 없기 때문이다. AI는 직관에 따를 수 없고 비이성의 가치에 대해 논할 수 없고(그의 기반은 수학이므로) 시행착오는 더더욱 없으며 (<이야기의 탄생>에 따르면 인간은 모양 맞추기에 본능적으로 매력을 느끼지만, 알파고는 바둑을 '즐긴다'는 개념을 태생적으로 익힐 수 없다.) 직접 빌딩을 오르는 미친 짓을 '원한다'라는 태도도 가질 수 없다.



나는 알렉스가 대만의 건물 꼭대기에 올랐다는 소식을 듣고 바쁜 작업을 잠시 멈춘 뒤, 이 돌아버린 눈깔에 대해 생각해보기 시작한다. 어쩌면 정상 눈깔과 돌아버린 눈깔은 종이 한 장 차이이며, 사실 하나의 덩어리 속에 존재할 수도 있다. (우주 어딘가 뇌구조가 다른 민족이 산다면 그들은 빌딩에 올라가지 않는 것을 의아해 할지도 모른다.) 결국 인간의 모든 행위와 다가올 AI세상 속의 모든 행위는 유사한 가치 아래 작동해야 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래야 실사 영화와 AI 영화의 공존이 가능해질 것이며 더 많은 이들이 자아 실현의 욕구(매슬로우의 말처럼 그것이 높은 수준의 욕구라면)를 충족하는 사회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