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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써머 Oct 20. 2020

글쓰기의 기쁨과 슬픔

'개나소나' 책을 내는 세상이라 '나무야미안해'

일주일에 하나씩은 무언가를 쓰겠다고 정한 후부터 신기하게도 눈앞에 모든 것이 달라졌다. 같은 집에서 살고, 같은 회사에 다니지만 꼭 이사나 이직을 한 것처럼 하루하루가 새롭게 느껴진다. 출퇴근길도 처음 가보는 길처럼 이리저리 둘러보며 걷게 되고, 다를 바 없는 일상도 영화를 보는 것처럼 한 발 떨어져서 바라본다. 뭘 써야 할까 걱정하다 보니 찾아온 변화지만 멀리 여행을 떠난 것도 아니고 돈 한 푼 쓴 것도 아닌데 얻게 된 오묘한 즐거움이라 일단 좋다.


또 뭐가 달라졌을까 생각해보니 몇 가지 더 있다. 먼저, 모든 책을 '전투적으로' 보게 됐다. 어릴 때부터 책을 좋아했다는 자소서 단골 레퍼토리의 진짜진짜 주인공이었던 나는 출판사 입사까지 하고 말았다. 매일 인터넷 서점 사이트 들어가 는 게 진짜진짜 일이다. 어떻게 이런 일을 하게 된 걸까 한번씩 웃기도 한다. 더 놀라운 일은 십년 넘게 보는데도 제목이나 표지, 카피가 좋은 책은 그냥 넘길 수가 없다. 그중 절반은 속는 걸 알면서도 속아주고 싶어서 속아서 산다. 책을 읽는 속도가 사는 속도를 따라 잡은 적이 없다. 그렇게 쌓아둔 책을 드디어 요즘 - 읽기 위해서가 아니라 - 쓰기 위해서 본다. 그냥 읽는 게 아니라 '이 작가는 어떻게 썼나' 나름 분석하고 '그럼 나는 어떻게 써볼 수 있을까'를 고민한다. 아웃풋을 내려니 인풋이 필요해져버린 상황이다.


또 하나는 메모를 하게 된다. 오랜만에 펜을 쥐고 종이에 무언가를 '문장으로' 쓴다. 밥을 먹다가 빨래를 널다가 무언가 - 황당하고 어이 없는 - 생각이 떠오를 때가 있는데 전에는 혼자 피식 하고 흘려보냈을 사소한 것까먹기 전에 얼른 적어둔다. 아, 그래 이걸 야지! 하면서 말이다. 그런데 아주 기발하고 멋진 생각은 메모가 불가능할 때 가장 많이 찾아온다. 특히 머리를 감을 때는 정말 수백, 수천 가지가 마구 튀어오르는데 욕실 문을 나서면  까먹는다. 세상을 바꾸진 못해도 내 삶은 바꿨을 만한 번뜩이는 아이디어가 수없이 있었. 그저 유레카 외치며 알몸으로 뛰어나갈 급은 아니었거라고 위로해본다. 메모에 글씨가 괴발개발 되는 건 덤이다. 




OOO님은 글 안 쓰세요? 글을 쓰기 시작했다고 말해버린 게 민망하고 부끄러워 갑자기 상대에게 역으로 권해본다. '제가 대단해서 쓰는 게 아닙니다', '당신이 더 잘 쓰실 겁니다'를 압축해 에둘러 표현하는 것이다. 대개 지인들도 출판사에 다니고 있거나 다녔던 사람들이다 보니 돌아오는 답이 예전의 내 생각과 같다. '나까지 쓰레기를 만들고 싶지는 않아'라고. 지금도 격하게 공감한다. 물론 좋은 글을 쓰는 분들도 있지만 - 작가를 꿈꾸는 분들, 이미 책을 내 작가가 되었다고 생각하는 분들께는 죄송하지만 - 세상에는 글 같지 않은 글, 책 같지 않은 책 너무 많다. 출판사 이름이 '나무야미안해', '개나소나'라는 곳도 있다든데 참 잘 지었다 싶다.


대학 동기 중에 하나가 모교의 교수가 되었다. 어느 요즘 학생들이 독립출판에 관심이 많다며 나에게 강의를 요청한 적이 있었다. 독립출판이라니? 최근 책을 내는 일조차 유행처럼 번져 독립출판으로 누구나 책을 낸다. 그런데 사실 이게 예전의 자비출판과 뭐가 다른지 모르겠다. 제돈 내고 책 만든다 하는 건 매한가지인데 '나는 좀 달라'를 혼자 외치며 자존심 세우기 좋게 독립출판이라는 말로 포장한 것 아닌가. 그렇게 만든 책들을 받아 모아놓은 독립서점은 마이너한 감성과 비주류의 트렌드를 대변하는 곳으로 시대를 앞서 나가는 문화인이라면 다녀야 하는 요즘 시대의 '살롱'을 자처하는 것 같다.


출판사에서 일한다고 독립출판을 폄훼하는 건 아니다. 왜냐면 나는 애초에 자비출판을 돈만 있으면 '개나소나' 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하지 기 때문이다. 책 한 권 분량의 원고를 쓴다는 것 자체가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게다가 그 누구도 '나만의 쓰레기를 만들겠어!' 하면서 글을 쓰고 책을 내지는 않. 그래서 더욱 자기 객관화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물론 세상의 모든 글쓰기가 대단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지금 나도 쓰듯이 누구나 쓸 수는 있다. 다만 그것이 한 권의 책이 될 가치가 있느냐에 대해서는 냉정하게 생각해볼 일이다.




덧. 출판사에서 일한다고 말하면 꼭 몇 명은 '제가 언젠가 책을 내고 싶거든요' 한다. 그럼 나는 자신 있게 말한다. 그럼 원고 써오세요. 내드릴게요! 그런데 지금까지 단 한 명도 써온 사람이 없었다. 그만큼 책 한 권 분량 쓰기는 어렵다.


덧2. 투고 원고는 항상 넘친다. 다들 자신의 원고가 지금까지 나온 책 중에는 없다고, 유일무이 하다고 한다. 10년 넘게 일하면서 본 바로는 그런 투고 원고는 정말 일 년에 한두 개뿐이다. 출판사는 이전에 나온 책들과 90% 비슷한 원고를 조금 다른 10% 컨셉을 잡아 책을 만든다. 하늘 아래 완전히 새로운 건 없다. 작가가 인간이라면 편집자는 신이라고 하는 이유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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