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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샬뮈 Nov 30. 2019

‘...그리고 남은 것은 침묵이지 않기를’

-<구일만 햄릿> 리뷰, 2013/11/08


‘단언컨대 이번 작업의 목적은 콜트콜텍 상황에 있고 노동자들에게 있다. 따라서 중요한 건 <햄릿> 이 아니라 <햄릿>을 연기하고 있는 노동자들이다.’ 진동젤리 팀의 글을 읽고 나서야, 조금은 이 연극에 대한 마음을 놓게 되었다. 사전 정보 없이 콜트콜텍 노동자들의 오롯한 연극만을 기대하고 간 사람들이라면, 약간의 실망은 감수해야했을지도 모르겠다. 그렇다 할지라도 구일만 햄릿은 그 자신의 의도대로 9일간의 뚜렷한 흔적을 남겼고, 연출의 의도대로 훌륭한 결과물로써 남겨졌음을 인정하게 될 것이다. 


이 작품의 특성은 연극 보다는 다큐멘터리에 가깝다. 극 중 배우들은 아직도 현장에서 7년째 콜트악기의 부당한 노동자 해고에 맞서 싸우고 있는 분들이고, 이들의 연습 공간 역시 농성 천막 안이거나, 시위를 하고 있는 현장이다. 이에 기묘하게 오버랩되는 것은 햄릿의 분노와 노동자들이 7년이라는 긴 시간동안 세상과 끊임없이 싸우며 쌓아온 아픔이다. 분노가 움직이는 힘이 된다면 아픈 것을 인정하는 순간 스스로를 치유할 수 있는 힘이 생긴다. 누군가의 분노를 이야기하는 연극이 세상에 맞서고 있는 이들에게는 치유가 되는 이 순환의 구조 또한 아이러니이지 않은가.

해서, 구일만 햄릿은 연극이기 보다는 무대에서 펼쳐지는 연극연습에 가깝다. 배우들의 발음도 부정확하고 연기도 어색하다. 무대에 선 배우들의 연기는 불안하고, 어색할 뿐만 아니라 연극에서 콜트콜텍 상황을 보여주는 장면전환도 매끄럽지 않다. 그러나 오히려 여느 잘 만들어진 연극에서의 감동에 비할 바 없이 배우들의 마지막 인사에 코끝이 짠해진다. 구일만 햄릿의 매력은 여기에 있다. 그것은 오롯하게 배우들의 진정성이라는 마음으로 전해지는 울림이었다. 완주가 어딘 지 골인지점을 알 수 없는데도 자신의 신념을 믿고 묵묵히 달리고 있는 사람들을 향해 마땅한 응원처럼, 묵직하고 거대한 울림으로 말이다. 그 투박함과 용기가 그렇지 못한 누군가를 꾸짖는 훈계가 아니라, 그래도 이 자리에 와준 게 고맙다는 환한 인사로 되갚아질 때의 순간이랄까. 


무대장치 중에서는 눈에 띄는 몇 가지 요소가 있었다. 죽은 왕의 망령이 콜트콜텍 기타로, 형을 죽여 왕좌에 오른 클로디어스의 망토는 투쟁의 현장에 있던 현수막으로 만들어졌다는 점 이 외에도 콜트콜텍 불매 서명 시 나눠주는 뱃지도 의상에 활용된 것도 주목할 만 했다.

연극이 명백하게 현실의 연장으로 이어지는 무대연출 또한 구일만 햄릿의 정체성은 명확하게 드러난다. 극 중간 중간 배치된 총 열 네 개의 영상을 통해서는 콜트콜텍의 현재와 과거부터 농성현장에서 연습을 하고 있는 배우들의 열정 넘치는 모습까지 만나볼 수 있었다. 무대에서보다 농성장 거리 한가운데나 텐트에서 연습하시는 모습이 한결 더 여유롭고 실제 극보다(?) 이야기에 몰입 되는 느낌이기도 했다. 이렇게 (다큐멘터리) 연극인 구일만 햄릿은 관객들을 치열한 현장으로 이끌기도 했다. 


잡초는 큰 나무들 사이에 틈으로 오는 미미한 빛으로도 살아간다. 콜트악기 노동자들도 아저씨들도 잡초처럼 그 적은 빛을 받아 연극을 만들고, 음악을 하면서 여전히 정의가 이길 수 있을 거라는 꿈을 꾸고 있었다. 콜트콜텍을 비롯해 재능교육, 쌍용자동차 말고도 많은 노동문제들은 쉽게 해결되지 않고 반복되고 있다. 노사문제가 자본주의가 끌어낸 인간의 극단적인 탐욕 때문이라 할지라도, 타인에 대한 최소의 예의가 있다면 해결의 실마리를 잡을 수 있지 않을까. 해결의 실마리를 잡기 위해서는, 그 최소의 예의라는 것조차 너무도 가혹하게 멀디 먼 세상에서 살아남기가 우선이 되어야 하는 현실이다.

어떡해든 살아남으라고 얘기하는 이 무서운 세상에서 예술이 자그마한 위로가 되어 줄 수 있는 것은 그나마 다행인 일일 것이다. 부디 이런 위로가 없어도 되는 날이 오기를 바란다. 9일만의 햄릿으로 끝난 이들의 시도가 다시 이어지지 않고, 더 이상 거리가 아닌 따듯한 가족의 품에서 쉴 수 있기를 바라고, 이 땅에 정의라는 게 있다는 걸 확인할 수 있기를 바란다. 그러기 위해서 남은 사람은 무엇을 해야 할까? 연극을 보고, 그들을 지지하고 하는 것 이외에 더 할 수 있는 것들은 무엇이 있을까? 남는 건 다시 몇 가지 질문들이다. ■ 



**사진출처_정택영 사진작가 제공                    

  필자_시티약국


  소개 _서울에서의 생활을 잠시 멈추고, 결혼과 미국생활을 준비하고 있는 생활형 기획자








*공연 개요


장소 - 혜화동 1번지 소극장 / 출연 - 김경봉, 이인근, 임재춘, 장석천, 최미경


제작 - 진동젤리 / 주관 - 콜트콜텍공동행동, 연극실험실 혜화동1번지 5기 동인


*프로그램 소개


하루아침에 해고 통보를 받고, 거리에서 7년! 안 해본 것도 없고, 못해볼 것도 없다! 이번엔 연극이다! “온통 꼬이고 휘어진 어지러운 세상. 저주받은 운명을 바로 잡기 위해” 콜트콜텍 해고노동자들이 배우고 변신한다. 단 9일 동안만. 『햄릿』과 콜트콜텍 해고노동자들이 서로의 몸을 빌려 못 다한 이야기를 무대 위에 펼쳐놓는다. 한 편의 연극을 올리기 위해 무수히 연습한 죽음이 9번의 공연 이후 더 많은 사람들과 함께 사는 삶으로 이어지길 바라며! 원작-윌리엄 셰익스피어 『햄릿』


*배우소개


클로디어스 (이인근) 덴마크왕


햄릿 (장석천) 덴마크 왕자, 선왕의 아들이며 현왕의 조카


폴로니우스 (김경봉) 재상


레어티즈 (임재춘) 폴로니어스의 아들


오필리어 (임재춘) 폴로니어스의 딸


거트루드 (최미경) 덴마크 왕비, 햄릿의 어머니


망령 (김경봉) 선왕의 망령


시종 (김경봉) 시종







<구일만 햄릿> 제작진


연출 : 권은영, 매운콩 / 각색*구성 : 전성현 / 영상 : 김성균 / 그래픽디자인 : 손희민


원화*의상디자인 : 치명타 / 조명디자인 : 윤해인 / 움직임 : 권영호 / 조연출 : 임영욱


기획 : 김은정 / 사진 : 김유미, 우에타 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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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무가내종합예술집단 '진동젤리'


우리는 진동젤리가 되고자 한다.


젤은 물처럼 어떤 압력에도 유연하게 대처하며 자신의 형태를 변화시킨다. 하지만 물처럼 흩어져 그 실체가 사라지지는 않는다. 무엇보다도 젤의 특이성은 그 운동성에 있다. 진동. 젤은 외부 힘에 민감하게 반응하면서 무한 방향으로 진동한다. 그것은 단순한 움직임이라기보다는 움직임의 전달에 가깝다. 우리는 우리 안에 끊임없는 운동성을 가짐과 동시에 명확한 실체를 갖기 원한다.


젤리들을 위한 행동지침


1. 우리는 진동하는 신체와 사유를 위하여, 신체와 사유를 젤리화 한다.


2. 우리는 진동을 만들어 냄으로써 우리의 삶을 질적으로 변화시킨다.


3. 우리는 우리뿐만 아니라 우리 주변에도 진동을 전달하는 진동젤리 게릴라가 된다.


진동젤리 연보 (2009~ 현재) _ 사회 곳곳에서 발생하는 작은 진동에 함께 공명하며, 젤리처럼 유연하게 진동을 전달하는 매질이 되고자 막무가내 종합예술집단 진동젤리 결성. 매 작업마다 하고 싶은 사람 모여 궁리, 모의, 제작.


- 2010년 8월 8월 서울경기인천이주노동자노동조합 농성장에서 이주노동자들과 함께 연극 워크샵 진행 후 이주노조 농성 해단식에서 공연.


- 2011년 10월 아트선재센터, 제2회 도시영화제 기획 - 명동성당 재개발 구역에서 오프닝 퍼포먼스


- 2012년 4월 ~ 현재 카페연극 진행 (헤롤드 핀터 “산말”, 창작극 "할말있어", 윤영선 "임차인" 등)


- 2012년 7월 변방연극제 참가작 “모래”


- 2012년 10월 장애인미디어아트 “자막을 끄겠습니다.”제작 참여(연출)


- 각종 세미나, 글쓰기, 연기 워크샵 진행


*** 진동젤리 웹페이지 바로가기 --> http://cafe.naver.com/vibratingjelly/






출처: https://indienbob.tistory.com/765 [독립예술웹진 인디언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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