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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샬뮈 Nov 30. 2019

도서 '도시기획자들' 리뷰

-기획입문 워밍업, 2014/01/26



서울이라는 도시에서 10년을 살면서, 이 곳을 지독하게 벗어나고도 싶다가도 결국은 어쩔 수 없이 돌아오곤 했다. 돌이켜보니 여주라는 작은 도시에 살 때와 다른 현실에 부딪칠 때마다 상처받고, 조금씩 성장하면서 그 시간을 지나온 것 같다.

서울이라는 도시가 주는 조금이라도 뒤처지면 안될 것 같은 불안감과 결국은 너는 혼자야 -라고 말하는 듯한 무관심의 눈을 한 사람들 때문에 힘들다가도 기댈 수 있는 사람을 한 명씩 찾아가면서 서울은 내게 다른 의미로 다가오기 시작했다. 

▲"도시는 농부이다" 편을 집필한 천호균 기획자의 '2013 서울 농부의 시장' 포스터 

지금 내게 서울은 재미있는 지옥이다. 이 재미있는 지옥에는 성실하게 탐욕을 키우는 자들과 이를 좇으려는 사람들과 묵묵하게 자신의 삶을 만들어가는 사람들이 어지럽게 어울려 살아가고 있다. 이 글을 접하고 있는 독자들에게 살아왔던, 그리고 지금 살고 있는 도시의 모습은 어떠할까?

책 ‘도시기획자들’ 의 이야기를 꺼내기에 앞서 개인적인 이야기 더불어 독자들에게 질문을 던진 까닭에는 이 책의 이야기가 우리가 살아온 ‘도시’ 의 모습이고, 그 안에 우리가 오롯이 투영되어 있기 때문이다. 나아가 무엇을 더 할 수 있을지 어렴풋한 답도 찾아낼 수 있으리라 믿는다. 이 글을 읽게 될 독자들, 그리고 ‘도시기획자들’을 읽을 예정인 분들도 자신이 살아온 그리고 살아갈 도시에 대한 이야기를 먼저 써보면 좋을 것 같다. 

▲"도시는 욕망이다" 편을 집필한 최정한 기획자의 '2012년 선셋장항 페스티벌' 포스터 

대중들에게도 와우북페스티벌, 쌈지, 서울숲, 문전성시사업, 홍대클럽데이, 이음, 공공미술프리즘-열거한 일곱 개의 이름이 크게 낯설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이 빛나는 이름들을 만들어낸 기획자들 이채관, 천호균, 이강오, 오형은, 최정한, 김병수, 유다희라는 사람들은 조금 낯설지도 모르겠다. 이 책을 통해 기획 분야에서는 이미 내로라하는 인물들의 기획의 과정과 진통, 고민들까지 접할 수 있다.

일곱 명의 기획자가 들려주는 도시기획의 이야기는 흥미롭고 다채롭다. 도시와 (    ).이 빈 괄호는 무수한 단어와 문장으로 채워질 수 있다. 책, 숲, 농사와 예술, 욕망, 청년, 이야기. 외에도 이들이 만들어 갈 단어들은 더 많이 남아있다.            






이 책의 가장 흥미로운 부분은 도시를 소재로 기획에 접근하는 방식, 나아가 큰 견지에서 봤을 때 기획이란 무엇인지 깊이 있는 생각을 도와주는 것이었다. 스포일러로 예비 독자들에게 행여 독서의 재미를 반감 시킬까 우려되는 부분을 감수하고, 일곱 명의 기획자들의 기획에 대한 변을 정리해 보도록 하겠다.                              

   이채관曰 ‘기획자의 삶이라는 건 극도의 스트레스에 노출돼 있어요. 사람, 주제, 관계가 항상 바뀌니까 피곤한 인생이지만 재미는 있습니다….기획자에게 필요한 것은 문제의식- 무엇을 하고 싶은가 무엇을 해결하고 싶은가에 대한 물음을 가져야 하는 것입니다.’


  천호균曰 ‘저는 도시농부가 되면서 경제적인 쪼들림을 각오했습니다. 농사의 최고가치이며 절대적 가치는 자급자족입니다. 내가 먹을 것을 스스로 만들어서 먹을 수 있다는 것. 저만해도 자급자족이 50퍼센트 가능합니다. 나머지 50퍼센트는 웬만하면 덜 쓰거나 둘레에 있는 것을 얻어 씁니다. 라이프스타일이 바뀌니까 어떻게 먹고 사나 하는 걱정에서 벗어날 수 있었습니다.’


   이강오曰 ‘저는 지금 여러분에게 공공의 재구성을 꿈꾸자고 말하고자 합니다. (…) 공무원과 정치인은 우리가 만들어야 하는 (혹은 만들고 있는) 공공성의 대리인일 뿐입니다. 그것도 극히 일부를 맡고 있죠. 나머지 공공성은 우리가 만들어야 합니다.’


   오형은曰 ‘막연히 좋아 보여서 시작하면 백전백패입니다. 마음을 다 잡아야하죠. 주민들에게 상처받고, 되는 일보다 안 되는 일이 많습니다. 사람이 진절머리 날 때도 있고요. ‘이렇게까지 안 되는구나’ 실망하고 또 실망하고, 그럼에도 거기서 희망을 보고 꿈꾸는 일을 끊임없이 반복하는 겁니다. 사람한테 많이 기대하는 만큼 많이 지치고 많이 꿈꾸는 만큼 많이 흔들립니다. 내가 생각하는 만큼 성과가 잘 나오지도 않죠. 그런 과정을 버텨야 이 일을 잘할 수 있습니다.’


   최정한曰 ‘장소 안에 들어 있는 사람들의 삶 자체가 중요합니다. 도시기획자는 그들의 삶을 읽어 내고 그들을 위해서 뭔가 재회하는 게 아니라, 그곳에 직접 뛰어들어 삶의 흐름을 같이 타면서 프로세스를 만들어가는 사람입니다.’


   김병수曰 ‘도시기획자의 기본 자질은 인문학입니다. 세상에 대한 기본적 관심, 이해, 성찰적 태도 없이 도시기획은 있을 수 없습니다.’


   유다희曰 '세상에 나한테 맞지않는 일은 없습니다. 어떤 일이든 맞춰갈 수 있습니다. 이걸 이겨낼 수 있는 환경이나 아니냐가 관건이겠지요. 저는 ‘지금은 힘들지만 좀 더 해볼거야’ 하는 마음으로 여기까지 왔습니다.'







▲"도시는 이야기다" 편을 집필한 오형은 기획자의 '못골시장 문전성시 프로젝트' 히스토리북 

이들의 이야기를 종합해보면,

1. 기획의 핵심은 항상 바뀌는 데 적응을 해야 하는 피로가 따르지만 그만큼 재미가 있다는것이다. 즉, 피로와 재미의 균형을 맞추는 능력이 절실히 요구된다는 점.

2. 도시농부조차(!) 경제적인 쪼들림을 각오해야 하는 현실에서 자급자족이 힘든 기획자들은 삶이 더욱 팍팍하리라는 예측이 가능하다. (그리고 실제로 그러하다.) 기획을 위해서는 선택에 따라 라이프스타일에 대한 변화가 필요하다.

3. 기획이라는 것은 결국, 개인의 결과물이 아닌 다른 사람과 공유되었을 때 비로소 완성되는 분야다. 도시기획에 있어서공공성에대한고민은불가피한부분이지않을까? 도시 기획이 아닌 다른 장르의 분야 또한 더 널리 퍼질 수 있는 콘텐트로 접근의 방식을 바꿔야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이다.

4. 사람이 사람을 만나 하는 일에 일희일비하면서도희망을가지고버티는용기가필요하다.

5. 어떤 결론을 미리 세워두고 기획에 접근하는 방식은 알맹이 없는 기획으로 가는 지름길이다. 기획하고자 하는 사람, 현상, 공간과 맞물려 움직이는 것이 이야기의 시작일 것이다.

6. 기획자는 문학, 예술, 경제, 사회, 역사도 잘 알아야 한다.

7.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가보는 힘도 필요하다. 

▲"도시는 예술이다" 편을 집필한 유다희 기획자의 '공공미술 프리즘' 단체CI 

 정리하고 보니, 기획자 자질은 인내와 학문에 정진을 바탕으로 한 잡초 같은 생명력이라고 표현해도 무방할 것 같다. 또한 기획만큼 삶을 읽어내고 함께하는 일도 없을 것 같다는 생각마저 든다. 삶을 공유하고 있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기획에 입문할 준비가 되어있다. 자, 이제 우리 모두 우리 각자의 이야기로 기획을 시작해보자. ■ 


 필자_시티약국


 소개 _서울에서의 생활을 잠시 멈추고, 결혼과 미국생활을 준비하고 있는 생활형 기획자






출처: https://indienbob.tistory.com/788 [독립예술웹진 인디언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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