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가미에 매달려 자는 습관

2부 쉼표

by 서지석

제목: 올가미에 매달려 자는 습관



동백나무에 불이 붙었다.


-내일은 북쪽으로 가야 해, 거기에 민들레가 많데


점 점 이어지다 큰 원형의 검은 구덩이

살려달라 외쳤는데 말이 뒤로 돌았다.


컥 컥 컥 컥 컥 컥 컥


-민들레가 어디 있어?

-다시 남쪽에


투명한 유리잔에 담긴 어머니의 말

너는, 특별하지 않아.


숨을 종이 위에 옮기니 칠 획이었다.


심을 뽑아 피로 칠 획을 썼다.


-여기야?

-아니.

-그럼?

-하지만, 어쩌면.


제목: 등껍질이 부서진 달팽이



부서진 조각들

손끝에서 흩어진다

샤르르르 소리를 내며

바닥에 그림을 그린다


희망이 없는 세상

꿨던 꿈은 모두 악몽이었을까

전부 모아 유서의 글감이 되었다


불면증의 이명을 더하는

경적소리.

공간은 허무하게 무너지고


반사하지 못하는 검은색은

목을 조르기 시작했다

가파지는 숨

쉬고 싶다는 욕구


모두 나와 어울리지 않는 것들


버려진 사랑은 없을까

버려진 사랑을 주울 사람은 없을까


긴 꿈을 떠났다. 잠깐의 의식불명상태

계속 이어졌다면, 그녀에게는 행운이었을.


대낮인데- 빛이 없어요.


창문을 두들기던 빗방울

툭 툭

툭 툭


그녀에게 창문 좀 열어 달라고 부탁했다.


제목: 무명가수의 LP



밤하늘 아래 별자리

네온사인, 우리의 인사.

낡은 턴테이블 위로 빙그르르

돌아가던 LP 한 장에서 흐르던


너를 떠나가지 마

너를 떠나가지 마


잠깐, 시간이 멈추었다.


이내, 다시 시끄러워졌다.


내가 지금 먹고 싶은 음식은

꿀 잔뜩 발린 바닐라 아이스크림

네가 먹고 나서 키스하고 싶다 했던


떠나가지 마

떠나가지 마


이름 어려운 외국 맥주를 따고

벌컥 들이키며 생각했다.

네가 지금 나를 보면 꽤, 만족스럽겠다.


취해 비틀거리며 모르는 가로등을 잡고

길을 따라가며 생각했다.

네가 지금 내 앞에 있으면, 그냥 좋겠다.


가지 마

가지 마


가시지 않던 이명은 모두 꿈처럼

전부 꿈처럼 현실 같은 건 하나도 없었다.


제목: 컵 떡볶이를 나눠 먹던 사이



손끝이 스칠 때마다

잔을 부딪히며 웃던 순간들

그게 우리 사이 최고 스킨십이었어


사랑은 우정보다 연한 감정이지만

우정은 사랑보다 독한 감정이지


네가 나를 찾는다면, 거기가 어디든

묻지 않아

지금 가고 있는 중이야.


내가 너를 찾는다면, 여기가 어디든

묻지 않고

지금 오고 있는 중이지.


이건 지루한 규칙 같아

하나의 룰처럼

담배 한 대 나눠 핀 그날부터

우린 서로에게 일부를 태우고 있어


오늘은 맑은 하늘에 비가 오는 날이야

친구야, 혼자 울기는 좀 창피해

같이 울어주지 않을래?


엉 엉

엉 엉


제목: 정적



때로는 정적이

말보다 시끄러울 때가 있다.



예시 1)


시간: 새벽 한 시반

장소: 침실

관계: 연인

상황: 화해한 직후


너: …

나: …


예시 2)


시간: 오후 한 시 반

장소: 카페

관계: 아직은 연인

상황: …


너: ……

나: ……

너: ……

나: …미안해…

너: ………


제목: 누에 안 속



툴 툴 툴 죄 없는 흰 실이

주위를 돌 돌 돌 감싸고 있다

그런데도 이상하게 숨이 쉬어진다

죄 없는 너는 순해서 틈이 많은 걸까?


과거가 있었는데, 지금보다 더 먼 과거가

분명 내게 있었는데 눈을 감고 뜨니 사라지고 없다.

온통 하얘지고 있다.


문이 열리면 스르륵, 현재를 옮아매던 실들이

자연히 풀린다는 것을 어렴풋 느낀다

아래에서 느낀다


스르륵 풀리면 우린 자유로워질까?

그땐 아름다워질까?

쿰쿰한 점박이가 되는 것은 아닐까?

꿈과 현실을 구분하지 못해 도로 위로 달려들진 않을까?


아, 그런 생각을 하다 보니 여기 있고 싶다


이렇게 톨 톨 톨

돌 돌 돌

마냥 안겨 있고 싶다.



목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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