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어있음

2부 쉼표

by 서지석

제목: [비어있음]



설 곳은 없는 데

갈 곳은 있는

아이러니


검은 하늘의

인공위성을 보고

장미가 살 거라고 믿던 때가 있었지


철은 무거워 들기 싫었어

빈손이 두려웠을 뿐이었지

중력은 아래 아닌 위인가 봐

자꾸자꾸 등만 굽어지잖아


여기 유리에 비친

네 얼굴에는

순진함이 남아 있니?


내 순진함은 짓궂은 장난기여서

가는 네 목저지를 향해

제목을 남겨뒀어


너는 그걸 과연 찾을 수 있을까?



제목: 미음



녹아내린 오후

한숨 쉬지 마라, 해야

더워 디지겠다


창문 열면

나무 위에

미음 한가득


ㅁㅁㅁㅁㅁ

ㅁㅁㅁㅁㅁ


그 소리

나를 평범하게 한다.


너도 드디어 나를 이해한다.


바람 불어

풀잎 흔들리고

사이 비치는 햇살

그 반짝임을

너는 뭐라고 했지?

아,

까먹었다.

한숨 좀 쉬지 마라, 해야.


살아나는 저녁

하늘은 피로 물들고

순간은 찰나적이다.


타는 밤 여전한

미음 한가득


ㅁㅁㅁㅁㅁ

ㅁㅁㅁㅁㅁ


우린 닮아간다.

나도 드디어 너를 이해한다.


ㅁㅁㅁㅁㅁ

ㅁㅁㅁㅁㅁ

ㅁㅁㅁㅁㅁ

ㅁㅁㅁㅁㅁ


제목: 하마가 입을 벌릴 때



허세로울 때가 가장

나답다고 했습니다.


연필을 칼로 깎고

잉크 찍어 글을 씁니다.


아름답게 사는 것

그게 유일한 반항이었고

그게 유일한 방향이었습니다.


뜬 눈앞에 겨우 본 건

짙은 그림자. 이해하시게씁니까.


호흡기 문 채 떠는 제 숨이 들리십니까. 뼈가 아파 떨며 그은 획은 세상 위였습니다. 바다는 제 눈입니다. 깊다기보다는 짜기 때문입니다. 이런 것입니다. 삶이라는 것. 시라는 것. 전부 전부 고작 이런 것입니다. 짙은 그림자. 이해하시게씁니까.


사 실 저 는 아 무 것 도 모 르 겠 고

사 실 저 는 아 무 것 도 모 르 고 씁 니 다 .


하품

,

사라지고전부흩어져버릴때

한뿌리 한줄기 슈르르 슈르

수많은 잎으로 입으로 기억되고 싶을 뿐입니다.


제목: 엇각



나는 여기 누워 있었고

너는 거기 타고 있었고


우린 역시 서로 너무 다른


벌어진 곳마다 보이지 않은 선이 있었어


지나가는 물리학자에게 말했다.

-빛보다 빠른 걸 발견했어

-뭐지?

-비밀이야.

그는 재밌다며 웃었다.

나도 그랬으면 좋겠다고 웃었다.


다시 나는 여기 서 있었고

다시 너는 거기 가 있었고


제목: 동전 던지기



위로 동전을 던진다.


앞면에는 숫자

뒷면에는 그림


공중에서 잡은 동전

공중에서 잡힌 운명


옆으로 뉘어 고른 숨


앞면이면 살기

뒤면이면 죽기


실눈으로 확인된 미래


100원짜리 긴 호흡.




목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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