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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 먹고 무슨 일을 해야 할까

by Papersync

추석 연휴, 오랜만에 절친을 만났다.

탄탄한 중견 회사인 자동차 부품 회사를 다니던 그 친구는 5개월가량 백수로 쉬면서 이직을 준비했고 최근 취업한 회사에 대해 이야기를 했다.


5월쯤 퇴사한 그 친구가 나에게 퇴사 이유를 말했던 적이 있다. 기존에 다니던 회사가 너무 레거시 사업이라 미래 전기차 시대에는 사장이 될 것 같다고 했다. 그리고 5년간 신입 사원이 없어서 5년 차에 대리임에도 아직도 막내 일을 하면서 사무실 문 앞에 앉아있는 본인의 모습이 처량했다고 한다. 위치도 멀었던 탓에 편도 1시간을 운전해서 다니는 것이 힘들었고 미래의 산업이 밝은 쪽으로 직장을 바꾸고 싶다고 하였다. 보통은 회사를 다니면서 이직을 하지만 친구는 휴식도 필요했다고 하면서 그냥 퇴사를 해버렸다.


친구가 말한 이번 회사는 정말 최악이라고 한다.

첫 번째, 연봉이 기존 회사 대비 1천만 원 깎여서 들어갔다. 백수는 협상할 수 없다.

두 번째, 출퇴근 시 상무님에게 보고해야 하고 그게 출석 체크의 기준이다.

세 번째, 무조건 9시까지 야근을 해라. 칼퇴할 경우, 인사 평가에 반영할 것이다. 연봉 삭감도 가능하다.

네 번째, 담배 시간은 10시부터 10분간, 3시부터 10분간이며 어길 시 징계다.

다섯 번째, 이전 회사보다 매출은 큰데 인원은 1/5 수준이라 일이 너무 많다.

여섯 번째, 상무님이 말도 안 되는 일을 하라 해도 팀장님과 그 외 모두 '예스'라고 한다. 그리고 앉아 있는다.


이전 회사에서 생각보다 높은 연봉을 받았고 9시 이전까지만 출근하면 문제없었고 인사 평가가 없었기에 야근 없이 칼퇴하고 담배 시간을 규정하는 사내 문화도 없었던 회사를 다니던 친구가 참 힘들어했다. "그리워는 하되, 후회는 하지 말자"라고 말하는 친구 눈에 눈물이 고인 것을 봤다. 분명 지금 친구가 이직한 회사는 이전 회사보다 규모가 큰 회사이다. 그런데 더 최악이라고 한다. 참 아이러니한 상황이다. 친구를 위로하면서 나의 경험과 생각을 이야기했다.




이직을 하면 늘 기존에 있었던 회사의 좋은 점은 미화되어 아쉬움이 많아진다. 아마 지금 회사로 바꾼 이유가 있을 것이고 그 부분이 부합된다면 이직은 성공했다고 봐도 된다. 하지만 지금 바꿔서 좋은 점들보다 늘 아쉬운 점이 크게 느껴진다. 그 부분을 머리로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것이 중요한 것 같다. 그렇지 않으면 변화를 선택하고 그 변화에 대한 후회나 아쉬움이 무서워서 다른 결정을 하지 못하게 된다. 그러니 좋은 면을 보려고 노력해야 한다. 경험상 회사가 그렇게 쉽게 망하지 않는다. 내가 없으면 회사 망할 것 같은 회사라 두렵다는 생각은 오만이다. 나라는 사람이 중요할 수 있겠지만 생각보다 미물이며 회사는 살아남기 위해 또 다른 사람을 뽑건 대체해서라도 돌아가게 하니 너무 회사 걱정을 하진 않는 것이 좋다. 걱정해야 할 것은 나 스스로의 경쟁력이다.


위 회사를 다녀본 적은 없지만 3개의 회사를 경험해 본 입장에서 회사 규모가 커질수록 사실 답답하다. 시스템적으로 사람을 관리해야 하기 때문에 사내 규정도 많아진다. 그리고 인사 평가라는 부분이 모든 사기업을 다니는 사람들의 스트레스 근원이 된다. 출석부터 보면, 친구는 출석 체크를 상무님에게 가서 하지만 회사가 커지고 경쟁이 치열해질수록 그럴 필요도 없다. 늦게 오고 일찍 가는 것을 위에 말해주는 사람들이 생기기 때문에 리더급들이 굳이 저렇게 보고하라고 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그들도 윗사람에게 어필하는 것이다.

업무 관점을 보면, 리스크가 크고 시간 투자 대비 얻는 것이 작다 하더라도 혹은 불가능한 일이라도 윗사람에게 '노'라고 말할 수 없다. 그런 사람은 노력하지 않았거나 할 생각이 없거나 해결할 마음이 없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런 경우 늘 옆에서 '저는 할 수 있습니다.'라고 말하는 이가 존재하고 리더나 매니저들은 그 사람에게 기회를 넘겨주게 되어있다. 만약 거기서 그 사람이 실패하더라도 그는 시도했고 노력한 사람이다. 그리고 잘못된 것을 수습하기 위해 엄청난 노력을 할 것이다. 원래 수습이 더 어렵다. 하지만 '노'라고 말한 사람은 시도조차 하지 않은 사람이다. 이런 상황에서 리더와 매니저들은 당연하게도 시도한 사람에게 좋은 평가를 주게 되어있다. 이 문화를 본 이들에게 '안된다'는 없다. 이제 모두 예스맨이 되고 안되더라도 된다 하고 야근하며 자리를 지키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규모가 더 커져도 인원은 적게 운영이 가능해진다. 이건 회사 생태계이다. 대기업이라고 다르지 않다. 오히려 더 치열한 경쟁의 연속이다.


이걸 들은 친구도 비슷한 말을 했다. 결국 본인조차도 위로 연차가 쌓일수록 승진하고 싶어서가 아니라 살아남기 위해서 예스맨이 될 것이고 그렇게 예스라고 한 것을 해오는 밑에 직원이 이쁠 것 같다고 하는 것이다. 그럼 결국 지금 야근을 해서 리더와 매니저에게 잘 보이는 것이 이성적으로 맞는 판단이고 나이를 먹어서도 똑같이 행동해야 한다. 내가 사장이 되지 않는 이상, 이러한 굴레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런 경쟁 속에서 살아남아 나이가 45세쯤 되어서 회사에서 임원으로 승진하지 못했을 때, 우리가 갈 곳이 있을까에 대한 확신이 없었다. 유능한 엔지니어로 사기업에서 잘 나가는 사람이어도 정말 특출 나거나 인적네트워크가 좋지 않은 이상 이직 문이 그렇게 크지 않다. 한국에서는 결국 나이가 중요하게 작용하고 내가 나이를 먹을수록 불편해하는 사람들이 많아지기 때문에 회사 채용 입장에서는 불리하게 작용할 것이다.


결국 나이 들어서도 할 수 있는 직업이 무엇이 있을까 하다가 친구랑 내린 결론은 공기업과 공무원이었다.

하지만 이미 높은 연봉을 받아버린 그 친구는 공무원 월급이 적응이 안 될 것 같다 했다.


나는 아직까지 답을 내리지 못했다. 신중하게 생각해봐야 하지 않을까 싶다.

하지만 나이가 더 많아지기 전에 결정을 해야 할 필요는 있다.

타이밍을 놓치면 어쩔 수 없이 회사에서 살아남기 위해 정말 열심히 살아야 한다.


안정적인 직업을 갖도록 노력할지, 회사에서 살아남기 위해 노력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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