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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식주의자 Sep 03. 2021

'연애'라는 이어달리기

가끔 커뮤니티에 ‘내가 본 역대급 맞춤법’이 베스트 토픽에 올라온다. 그럴 때면 저마다 목격한 황당한 맞춤법들이 댓글창에서 각축을 벌이는데, 소리 내서 발음해보면 그럴듯해서 더러 웃음을 짓게 한다. 내가 만약 성실하게 댓글을 다는 사람이라면 베플을 노릴 수도 있지만, 한 번도 댓글을 달진 않았다. 그런 식으로 한 사람을 추억하고 싶진 않다. (그러면서 지금은 이 글을 쓰고 있다…)

예전에 잠시 만났던 사람 중에 맞춤법을 아주 독창적으로 틀리는 사람이 있었다. ‘되’와 ‘돼’를 혼동한다거나 ‘할게’를 ‘할께’로 적는 흔한 실수가 아니었다. 그를 알게 된 지 얼마 안 돼 내가 받은 문자는 이런 것이었다.  


[잘 들어갔줘?]  


뭘 달라는 거지...? 한참 의미를 생각해야 했다. 오타이길 바랐지만, 슬픈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는 인생의 진리를 증명하듯 그는 ‘지요’의 줄임형인 ‘죠’를 매번 ‘줘’로 잘못 썼다. 친하지도 않은데 맞춤법 지적을 하기도 그렇고, 그에게 호감이 있던 터라 얼른 말을 놓기만을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말을 잘 놓는 성격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필사적으로 말을 놓았다. 가까스로 ‘-줘’의 충격에서는 벗어났지만,  그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그 후에도 한참 동안 의미를 생각해야 하는 말들이 퀘스트처럼 기다리고 있었다. 높임말의 오류는 반말을 하며 벗어날 수 있었지만, 날마다 저녁은 찾아오기에 ‘저녘’ 먹었는지를 묻는 인사에서는 벗어날 방법이 없었다. 바람이 시원하게 부는 날씨엔 그가 또 ‘쉬원’함을 느끼면 어쩌나 걱정했다. 며칠을 고민하다가 그깟 맞춤법 때문에 관계를 그르치고 싶진 않아서, 맞춤법을 정정해주었다. 내 딴엔 자존심이 상할까 싶어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는데, 그는 “내가 못 배워서 그래” 라며 노골적으로 싫은 티를 냈다. 결국 그와는 스쳐가는 인연으로 끝이 났다.


그 후 나의 이상형은 ‘맞춤법을 맞게 쓰는 사람’이 되었다. 대면 소통보다 텍스트를 통한 소통이 훨씬 더 큰 지분을 차지하는 시대인데 문자 한 줄 한 줄 볼 때마다 맞춤법을 검열하며 스트레스받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이상형과 결혼했냐고 묻는다면, ‘그렇기도 하고 아니기도 하다’.

소개로 만난 남편은 소개팅  무언가 얘기를 하다가 이런 문자를 , 하고 보냈는데 그게  마음에 ! 하고 동요를 일으켰다.


[(이어질 내용의 충격으로 앞 내용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제가 뒤치다꺼리를 해야 할 것 같아요.]


이럴 수가.  ‘뒤치닥거리 아닌, ‘뒤치닥꺼리 아닌 ‘뒤치다꺼리라니. 내가 만난 사람   단어를 제대로 쓰는 사람은 (출판사 동료들 외에는) 그가 처음이었다.  후에도 그는 무심하게 고난도 맞춤법  개를 정확히 구사하는 것으로 한껏 매력을 과시했다. 시간이 흐르며 허점을 드러내기도 했는데, 난도 높은 맞춤법에는 강한데 오히려 쉬운 맞춤법에서 오류를 보인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게  어떻단 말인가, 그는 ‘뒤치다꺼리 아는 남자인데! 물론 섬세함과 자상함  다른 장점도 많은 사람이었지만, ‘뒤치다꺼리에서 콩깍지가   분명하다.


연애란 이 사람한테 받은 걸 저 사람한테 주는 이어달리기와도 같은 것이어서 전에 사람에게 주지 못한 걸 이번 사람한테 주고 전에 사람한테 당한 걸 죄 없는 이번 사람한테 푸는 이상한 게임이다. 불공정하고 이치에 안 맞긴 하지만 이 특이한 이어달리기의 경향이 대체로 그렇다.  『보통의 존재』, 이석원


연애란 특이한 ‘이어달리기’ 같은 것이라, 전전 연애에서 전 연애로, 전 연애에서 현재의 연애까지 바통을 전한다. 평소 그리던 이상형은 온데간데없고, 무의식 중에 이전 연애에서 받은 상처를 달래 줄 수 있는 상대나 아쉬움을 채워줄 수 있는 상대를 찾게 되는지도 모른다. 만약 내가 전 연인에게 느낀 아쉬움이 맞춤법이 아니라, 사치나 도박 같은 문제였다면 내 이상형은 맞춤법 따윈 아무래도 상관없고 무조건 경제관념 있는 사람!이 되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러니, 아무리 전전전전 연애라 할지라도 나를 스쳐간 연인들이 지금의 연애에 어느 정도 관여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현재의 연인은 전 연인들에게 느낀 아쉬움의 총합은 아닐까?


 매번 내 짧은 몸에 아쉬움을 토로하던 전남친이 새로 생긴 여자친구와 걷는 걸 봤다는 제보를 친구에게 전해들었다. 친구는 덧붙였다.  ‘그 여자 엄청 키 크고 늘씬하던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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